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 <인터스텔라>
이동진 평론가는 영화 「인셉션」을 평론하며 “정서적 감흥”이 부족하다 말했다. 좋은 배우들의 기량을 끝까지 끌어내지 못했다는 평이다. 하지만 난 이번 인터스텔라에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조금은 “정서적 감흥”에 대한 카타르시스의 서사를 잘 이용했다고 여긴다. 「인셉션」에서 “불화가 클수록 카타르시스도 커.” 라는 대사와 “어떻게 화해시킬거야?”라는 대사가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인셉션」 에선 피셔에게 주입하려했던 영화적 장치로써 카타르시스를 사용했고, 「인터스텔라」 로 관객에게 선사하기 위해 서사로써 사용한다. 그럼 의문을 시작할 수 있다. 왜 지구를 떠나야 했는가. 지구를 떠나야 서사가 시작되니까. 카타르시스로 창조하고자 하는 정서는 무엇인가. 사랑이다.
거대한 사랑의 힘을 느끼기 위해서 큰 역경이 있어야 한다. 인터스텔라엔 어떤 역경과 고난이 있나.
첫 번째 역경과 고난.
인듀어런스 호의 대원들에겐 첫 번째 행성이 살 수 없는 행성이었다는 실패를 경험했다. 인명 손실과 시간 손실까지 이어졌다. 큰 타격이었다. 이들은 첫 실패 이후에 신중해져야 한다. 신중해져야 하기에 사랑은 잠시 뒤로 미뤄진다. 브랜드(앤 해서웨이)가 애드먼드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슴을 믿고 그의 행성으로 가야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는 얼핏 사람들에겐 무모해 보인다. 카메라는 그녀에게 미디엄 클로즈업으로 들어가며 무모한 주장임에도 그녀의 말에 마음이 가도록 한다. 하지만 결국 만 교수의 행성으로 가기로 한다.
지구에 남겨진 이들도 같다. 23년간 연락이 없었던 이들을 기다리기보다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객관적이다. 그래서 톰(케이시 애플랙)은 아버지가 죽었다고 믿기로 했다. 머피(제시카 차스테인)도 마찬가지. 아버지가 죽었다고 생각하자 무덤 앞 마지막 헌정사처럼 원망어린 메시지를 남긴다. 그들은 기다림이라는 고난 앞에서 점점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다.
두 번째 역경과 고난.
가혹한 진실에 직면한다. 진실을 직면하고 비겁해진 사람들이 있다. 브랜드 교수(마이클 케인)는 딸, 브랜드(앤 해서웨이)를 우주로 보낸다. 플랜 B를 위해서라곤 하지만 사실상 딸을 살리기 위한 행동이다. 브랜드 교수는 오로지 중력 방정식을 풀기 위한 집념을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블랙홀에 들어가야만 알 수 있는 특이점이 있어야 중력 방정식을 풀 수 있다. 지구에 남겨진 이들은, 방법이 없다.
만 교수(맷 데이먼)는 자신이 고른 행성이 살 수 없는 행성이라는 진실에 직면했다. 받아들이지 못하다 결국 임무에 대한 결의를 저버리고 비겁해진다. 살 수 없는 행성 임에도 잘못된 데이터를 보내고 구조대를 바란다. 대원들이 도착하자 거짓말을 하고 인듀어런스 호를 탈취한다. 인류를 위해서라는 말은 누가 봐도 거짓이다. 인류를 위해서라면 자신을 버리고 거짓 데이터를 보내지 말아야 했다. 홀로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만 교수를 집어삼켰다.
브랜드 교수도 만 교수도 같은 시를 읊는다. 딜런 토마스의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이다. 끝까지 저 밤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말고, 꺼지는 빛에 분노하라는 시 이다. 저항시인데, 브랜드 교수에겐 딸, 브랜드를 살리기 위한 이기심. 방정식을 풀고자 하는 집념이다. 만 교수에겐 자신의 생존을 위한 이기심이다. 이 이기심은 인간의 가장 강한 강점인 용기를 불살라 없앨 수 있었다. 용기를 상실한 이들의 비겁함은 머피와 쿠퍼 각자에게 큰 시련을 준다. 머피에겐 절망을, 쿠퍼에겐 생명의 위협을.
머피는 집으로 돌아갔다가 조카와 올케의 건강이 위독함을 알게 된다. 오빠, 톰과 절연하듯 싸우고 연구실로 돌아가려 하지만 차 트렁크에 타고 피난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본다. 이때 시를 읊는 만 교수의 목소리가 보이스 오버된다. 만 교수가 시를 읊으며 변명하는 동안, 머피에겐 조카와 올케라도 살리기 위한 발버둥을 뜻하는 시가 되었다. 그렇게 머피는 다시 오빠의 농장으로 돌아가 옥수수밭에 불을 지르고 올케와 조카를 구하려 한다.
모두 생존을 위해 저항하고 있다. 브랜드 교수는 딸의 생존을 위해, 만 교수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이다. 머피는 오빠 톰에게서 올케와 동생을 벗어나게 하기 위한 저항이고 쿠퍼는 만 교수으로 인해 죽음의 문턱 끝에서 저항하는 것이다. 하지만 고난을 이겨내는데 저항 그 이상이 필요하다. 믿음이다.
믿음과 희망으로, 사랑이라는 카타르시스를
쿠퍼는 딸이 시계를 다시 찾아주리라 믿고 시계에 블랙홀 안의 특이점을 모스부호로 남긴다. 머피는 어릴 적 기괴한 중력 현상에 조금이라도 답이 있으리라 믿고 집으로 갔다. 그곳에서 머피는 몇 번이고 유령을 믿으며 유령의 흔적을 분석한다. 집을 나가며 머피는 시계를 챙기고, 모스부호를 발견한다. 모두 쿠퍼의 메시지였다는 걸 머피는 깨닫는다. 서로를 향한 믿음은 머피와 쿠퍼를 극적으로 화해시켜주면서 인류의 탈출구마저 발견하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이후 인터스텔라에선 반짝이고 일순 몽환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카타르시스가 비주얼적으로 이어진다. 닫히는 큐브의 번쩍이는 섬광. 손을 잡는 미래의 쿠퍼와 과거의 브랜드. 완성된 우주 정거장이다. 이는 영화 내에서 이어져 오던 가장 큰 난제를 해결하는 카타르시스를 보여준다. 지구에 남겨진 인류를 구했다는 카타르시스다.
정서적으로도 카타르시스가 완성되는데, 사랑과 화해로써 완성된다. 머피와 쿠퍼가 만나 “Because my dad promise me.”라는 장면과 비록 애드먼드는 죽었지만 브랜드의 ‘사랑’이 맞았음을 보여주는 장면은 우리에게 사랑과 믿음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그리고 쿠퍼가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하는 장면에서 인류의 머나먼 미래에 대한 희망까지 보여준다. 영화 「인터스텔라」 는 “정서적 감흥”과 흥미진진한 외적 스토리까지 만족스럽게 꽉 채운 ‘인생 영화’가 되었다.
사람들에게 ‘내 인생 영화는 인터스텔라’라는 말을 들으면 공감한다. 그대들의 인생 영화는 어떤 영화인가? 어떤 저항을 하고 있는가?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가? 그대들의 삶에도 「인터스텔라」 속 시와 같은 밤과 빛이 있더라도 카타르시스라는 불꽃이 존재하길 바라며, 시를 남긴다.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written by Dylan Thomas(1914~1953)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Old age should burn and rave at close of day;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Though wise men at their end know dark is right,
Because their words had forked no lightning they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Good men, the last wave by, crying how bright
Their frail deeds might have danced in a green bay,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Wild men who caught and sang the sun in flight,
And learn, too late, they grieved it on its way,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Grave men, near death, who see with blinding sight
Blind eyes could blaze like meteors and be gay,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And you, my father, there on the sad height,
Curse, bless, me now with your fierce tears, I pray.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