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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ysu Oct 10. 2020

허구임을 알면서도 현혹시키는 마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 「프레스티지」

영화 「프레스티지(THE PRESTIGE)」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2006년 작품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일명 ‘플롯의 마술사’로 불린다. 시공간의 서사를 자유자재로 배치해놓기 때문. 영화 「프레스티지」는 이 중에서도 마술사를 하는 두 남자의 질투와 경쟁 그리고 집착과 비극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단순히 마술사들의 격렬한 경쟁과 비극의 스토리만을 전달하는 영화가 아니다. 마술이라는 매개체로 영화는 우리들마저 마술쇼의 관객처럼 만들고 있다. 우린 영화를 보면서 일순 속기도 하고 반전을 맞이하기도 하는데, 이는 영화의 특정한 기법들과 요소들로 관객이 그렇게 인지하는 것이다. 어떤 기법을 써야 관객이 그렇게 인지하는지 감독은 숙지하고 있어야 하며, 잘 이용할수록 관객도 따라 인지한다.

  「프레스티지」 에선 크게 핸드헬드 기법과 삼각대에 고정하는 기법을 번갈아 사용한다. 얼핏 과거와 미래 혹은 현재를 나누는 듯하나 그렇지 않다. 시간을 나누기 위한 기법이 아닌 관객에게 주관적 시선과 객관적 시선을 나누기 위한 영화적 장치이다.






핸드헬드 기법



  핸드헬드 기법은 말 그대로 카메라를 들고 찍는 것이다. 이때 줄 수 있는 효과는 카메라 시선을 흔들리도록 표현하며 현장감을 높이고 관객에게 주관적 시선을 부여한다. 예를 들어 인간극장과 같은 현장 다큐멘터리를 생각하면 된다. 「프레스티지」 에선 영화 관객인 우리를 마술쇼에서 무대로 초청한 격이다. 

  핸드헬드 기법이 사용된 장면은 주로 ‘솔직’할 때 쓰인다. 마술이 전부 가짜일 거라는 관객의 의심과 마찬가지로 영화를 보는 우리들도 어느 정도 영화가 허구의 세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영화는 핸드헬드 기법으로 오히려 진실을 자꾸 보여줌으로써 경계심을 무너뜨린다. 영화는 마술의 이면 혹은 진실 앞에 우릴 데려다 놓는다. 마술 트릭이 숨김 없이 알려지는 장면. 앤지어(휴 잭맨)와 보든(크리스찬 베일) 사이의 복수 씬. 앤지어와 보든이 서로를 질투하는 씬. 앤지어가 아내를 사랑하고 마술을 순수하게 사랑했던 씬. 앤지어의 아내가 죽는 극적인 씬. 보든이 손가락을 잃는 씬. 모두가 그렇다. 일순 우리는 무대 위로 올려져 어지러울 정도로 극적인 상황들을 연달아 마주한다. 마술사가 바로 옆에서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것처럼 넋을 놓고 앤지어와 보든에게 몰입한다. 우린 「프레스티지」 라는 마술에 빠지게 된다. 

고정 기법


 고정 기법은 말 그대로 카메라가 손에 들리지 않고 삼각대에 고정된 기법이다. 주로 기찻길처럼 레일을 깔아놓고 삼각대에 꽂힌 카메라를 부드럽게 이동시키는 기법을 달리 dolly 숏. 고정된 자리에서 카메라의 고개만을 돌리는 기법을 방향에 따라 패닝, 틸팅 숏이라고도 한다. 이 고정 기법은 안정된 이미지가 특징이다. 그럼 우린 현장감에서 벗어나서 관객석 의자에 앉아 편안히 스크린 혹은 무대를 바라보는 거리감을 가지게 된다.

  이 기법은 「프레스티지」 내에서 진실을 감출 때 주로 쓰였다. 앤지어가 보든의 일기를 읽거나 해독하는 장면은 그가 ‘모종의 이유’로 일기장을 가질 수 있었고, 이 일기장을 다 읽고 모두 해독하고 나면 밝혀지는 또 다른 진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일기장이 모든 진실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며 관객에게 영화라는 마술의 트릭을 숨기는 첫 번째 장면이다. 관객은 의아하다. 뭔가 숨겨진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앤지어가 마술에 대한 순수한 의도가 아님을 숨기는 장면, 보든이 더 이상 앤지어의 마술 트릭을 궁금해하지 않겠다는 장면 등도 고정 기법으로 각 캐릭터에 객관적 시선을 부여한다. 이것이 거짓말이라는 건 보든의 경우 명확히 보인다. 보든이 궁금해하지 않겠다는 고정 기법의 장면 바로 다음에 앤지어의 쇼를 보러간 보든의 모습은 핸드헬드 기법이다. 거짓말과 진심을 명확히 나누기 위한 기법이라는 건 이 점에선 분명해보였다.



잃게된 형제와 차가운 물탱크



  하지만 결말에 치달을수록 우린 감정의 하향 곡선을 그리면서 안심할 수 없다. 결말로 갈수록 기법을 반전시키기 때문이다. 점점 숨겨진 이면을 마주하게 되며 또 다른 진실을 마주한다. 이때부터 우린 강제적으로 관객석으로 돌려 보내진다. 그동안 이해되지 않았던 보든의 행동에 대한 진실이 모두 밝혀지며 보든과 앤지어가 대화하는 장면은 모두 고정 기법이다. 

  차분하고 냉혹한 시선. 보든과 앤지어의 얼굴에 드리워진 강한 명암 대비까지. 진정 앤지어의 이동 마술에 빠졌던 관객들에게 참혹하고 비정한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때 관객석으로 밀려 나간 우린 충격보단 오묘하고 스산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앤지어에 대한 배신감과 충격보단 아쿠아리움에서 진열된 물고기 표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페르소나이자 놀란 사단의 배우 중 한 명인 마이클 케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마치 「인터스텔라」처럼. 

"Now you're looking for the secret. But you won't find it because, of course, you're not really looking. you don't really want to work it out. You want to be... fooled."

-“여러분은 비법을 알아보려 해도 찾지 못합니다. 당연하게도 제대로 보지 않으니까요. 사실은 알고 싶지 않거든요. 속기를 원하죠.”

  우린 영화라는 허구에게 현혹당했다는 진실을 부정하게 된다. 그들의 비극의 무대에 올려졌다가 내려 보내지며 더 이상 가짜인지 진실인지는 중요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린 그렇게 허구로 만들어진 비극이라는 진실을 마주하고 관객석에서 일어난다. 복제되고 잊혀지고 물 속에서 익사한 허구들, 즉 모자들을 방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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