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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ysu Oct 10. 2020

얼룩진 화장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 <다크나이트>

 메시지를 전하는 혁명가들에게는 중요한 ‘신념’이 필요하다. 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지와 왜 공평해졌으면 좋겠는지에 대한 WHY가 배트맨과 조커를 히어로와 악당의 위치에 각각 놓는다. 배트맨은 고담시의 평화를 위해, 조커는 고담시의 혼돈을 위해 행동한다.

  놀라운 점은, 조커의 말만 부분적으로 떼어놓고 보면 성공한 기업가의 마인드와 비슷한 점이다. “돈은 중요하지 않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혹은 “공평”이란 대사가 있다.이 악당의 신념이 보통 사람들이 추구하는 ‘좋은 방향’과 모든 것이 다르지는 않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이것은 괴물과 괴짜, 즉 “freak”와 “monster”의 이미지가 악당의 이미지로 굳혀져 있는 사회라는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다. 조커와 같은 악마는 누구나 될 수 있다. 

  조커는 세상이 불탔으면 한다. 아무도 남을 믿지 않았으면 한다. 조커는 증오와 의심을 먹고 자란다. 조커가 좋아하는 “다이너마이트와 화약 그리고 가솔린”과 같이 값이 싸다는 공통점이 있다. 증오와 의심은 1차적인 본능과도 같은 감정이기 때문이다. 소위 “문명사회의 사람들”도 조금 뒤흔들면 혼돈에 빠져 서로 배신하고, 의심하며, 증오한다. 조커는 모두가 그러길 바라고, 또 모두가 그렇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조커의 신념은 위험하다. 그럼에도 클로즈업 쇼트를 찍는 이유는 무엇인가.

  영화의 프레임에는 여러 가지 원근적 구도가 존재한다. 그중에서 머리부터 가슴께까지를 미디엄 쇼트라고 한다. 보통 대화할 때나 토론할 때 많이 쓰이는 거리감이다. 이 미디엄 쇼트에서 얼마나 피사체에 가깝나에 따라 미디엄 클로즈업, 클로즈업,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변화할 수 있다. 프레임 안에서 피사체에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행위는 영화의 내면 구조와 관련 있다.

  영화의 내면 구조라는 것은 예를 들어 등장인물의 심리나 관객에게 요구하는 감정 이입의 깊이와 같다. 우는 아이의 얼굴을 가까이서 찍으면 우리도 일순 아이의 감정에 몰입하게 되고, 아이의 슬픔이 더 효과적으로 다가온다. 아이는 그만큼 슬프다는 것도 의미한다. 

  그러나 「다크나이트」의 조커와 같이 범죄 사이코패스 유형의 등장인물에게 감정 이입을 하라는 요구는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도 「다크나이트」 는 미디엄 클로즈업으로 조커를 조명한다. 그의 얼룩진 화장과 혼돈에 대한 신념에 집중될수록 우린 빨려 들어간다.

  故 히스 레저의 뛰어난 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커는 갑작스럽고, 충격적이고, 사람들의 일상에 아무렇지 않게 숨어있다가 자기가 원할 때 등장하는 광대이다. 그에게 영화 속 인물들은 조종당한다. 그의 모든 말을 믿지 않아도 되지만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다. 처음엔 은행에서, 다음은 마피아에게, 차례로 배트맨에게, 하비 덴트에게, 병원에 가족이 있는 사람들에게, 고담시의 모든 국민에게 그의 “말(Word)”은 퍼져 나간다. 저항하던 이는 하비 덴트와 배트맨이었는데, 배트맨도 조커의 말을 믿고 레이첼이 있다는 장소로 달려갔고 하비 덴트도 조커의 말을 듣고 타락한다. 이때 모두 클로즈업으로 조커의 면면을 잡으면서 배트맨과 하비 덴트의 잘못된 믿음에 논리를 부여한다.

  조커는 곧잘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하고, 뱉은 말을 지킨다고 한다. 자신감 있고 당당한 모습에 거리낄 것 없는 행동이 그를 믿게 하면서, 관객들에게도 조커의 혼돈에 대한 열망은 깊이 전해진다. 

  하지만 조커가 초래한 혼돈 속에서도 단 한 명이라도 폭탄의 스위치를 누르지 않는다면, 그가 원하는 문명 사회의 파괴는 일어나지 않는다. 시민의 수많은 투표에도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는 양심과 테러리스트의 말 따위 신경쓰지 않는 죄수 단 한 명이 있으면 사회는 유지될 수 있다. 결국, 조커의 이론은 틀렸다. 그의 마지막 카드인 하비 덴트의 타락도 배트맨의 희생으로 무용지물이 될 수 있었다. 

  클로즈업 쇼트를 통해 그의 말에 힘과 믿음을 부여하는 듯하지만, 종래에는 조커가 매달려 위아래가 바뀐 숏으로 그의 신념은 타락과 파괴 원리며, 잘못된 신념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람에 대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배트맨을 단순한 히어로가 아닌 어둠의 기사, 다크나이트로 격상시킨다. 지금까지 조커에게 클로즈업 쇼트를 부여한 것은 모두 희생을 더욱 값지게 하기 위한 극의 밑거름이었다.

  우린 때론 조커와 같은 혼란을 맞이한다. 충격적이고도 누구나 될 수 있는 ‘악’은 사실 평범한 이도 될 수 있다. 조커처럼 입이 찢어지거나 얼룩진 화장을 하지 않아도 내면이 부서진 이들의 가솔린은 위험하다. 우린 「다크나이트」에서 파괴와 폭발이 아닌 희생을 보아야 한다. 조커가 말하는 혼돈의 공평함은 우릴 부술 수도 있으나 연대하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단순히 지배하고 밟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울고 있는 아이가 나의 아이가 될 수 있다는 공평한 위협은 우릴 분노케 하고, 연대하도록 한다. 

  클로즈업으로 얼룩진 화장과 찢어진 입을 조명할지라도 그들은 결국 거꾸로 매달린 광대일 뿐이며 그 클로즈업에서 벗어나는 것을 ‘용기’라고. 나는 감히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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