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은 들끓고 있다. 한 명의 무고한 시민이 죽었다. 경찰의 무릎에 무자비하게 깔린 조지 프로이드(George Floyde). 그는 "숨을 못 쉬겠어요."라고 말하고, "살려주세요."라고 경찰에게 애원했다. 그의 목을 무릎으로 누른 경찰, 데릭 마이클 쇼빈(Derek Michael Chauvin)은 듣지 않았다. 조지 프로이드는 단 한 번의 저항도 하지 않았다. 9분의 압박. 결국 조지 프로이드는 숨졌다. 애달프게 "Mama..(어머니..)"를 부르며.
너무도 황망하다.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2020년이다. 질병의 위험이 닥쳐도 재택 근무가 가능하다. AI가 당연하게 핸드폰에 내장되어 있다. 로봇 청소기, 식기 세척기, 세탁기가 점점 더 발전한다. 에어컨도, 선풍기도, TV도, 인터넷도, 플랫폼도. 그런데도 더 발전시키고 싶어서 기술력을 외친다. 기술의 발전만 이뤄온 걸까. 휴머니즘은 어디 갔나. 조지 프로이드의 생명은 어디 갔나. 옛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대한 경찰차를 끌고 흑인의 목을 누르는 모습은 뭐 하나 변함이 없지 않은가.
옛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야했을 '인종 차별'과 '혐오'가 정치적 전략으로 이용되어 되살아나고, 시위는 폭력 진압된다. 폭력 진압과 차별 사회가 2020년에 반복된다니. 잘못된 과거를 돌이키지 않기 위해 역사를 배운다고 교육 받았다. 같은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평등'과 '평화'의 가치를 배웠을 우리는 퇴보하고 있는 걸까.
우리. 그렇다. 우리다. 코로나를 보라. '남'의 일이 아닌 '나'와 '우리'의 일이다. 2019년 9월. 지하철을 탔을 때 흑인 여성 분이 나에게 길을 물었다. 그녀는 영남대 병원을 갈려면 이대로 가는 것이 맞는지 물었다.
"Yeah. You just keep going on this train and about...after 30minutes later, will be announce 반월당 station. And then you have to go transfer. 설화명곡 direction. and then will announce again 영남 university hospital. If you forget, just ask anytime to anyone."
- 네, 그냥 30분 정도 쭉 가시다가, 반월당이라는 안내가 들리면 설화명곡 방면으로 환승하세요. 그럼 영남대 병원 안내가 또 나올거예요. 혹시 까먹으시면, 그냥 언제나 아무한테나 물어보세요."
그때 그녀는 망설였다. 정말 그래도 되냐는 눈빛이었다. 아, 내가 무심했구나. 아니, 무신경했다는 말이 더 맞다. 서울 여행을 갔을 때 길을 물어보면 사람들은 친절하게 가르쳐줬다.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구나. 그녀의 손엔 꾸깃한 약도가 들려있었다. 낯선 이국의 땅에서 얼마나 불안했을까. 서울 여행 때와는 달리 일본에서 기차를 탈 때마다 느꼈던 불안이 떠올랐다. 그녀의 약도를 건네 받았다. 부연 설명을 서툴게나마 추가하자 그녀는 안심했다. 그녀의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Don't sick." 아프지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이상한 영어가 나왔다. 그녀는 상냥한 눈빛으로 끄덕였다. 아무리 영어가 서투르고 피부색이 달라도 우리의 손은 똑같이 따뜻했다.
조지 프로이드의 애원을 보면서 작년 9월이 떠올랐다. 비척거리며 일어나 영화 「문라이트(Moonlight)」를 틀었다. 오랫동안 보기 두려워했던 영화였다. 오늘 봐야 했다.
「문라이트」에는 샤이론의 삶을 세 번 나눈다. 리틀(Little), 샤이론(Chiron), 블랙(Black). 세 타이틀 모두 샤이론이다. 샤이론이라는 개인은 작고, 섬세하고, 게이이며 흑인이다. 영화는 내내 샤이론이 샤이론으로 지내는 것이 괴롭다고 말한다. 그는 작아서 괴롭힘을 받고, 게이 혹은 샤이론 자체라서 학교 폭력의 타깃이 된다. 자신을 향한 혐오와 편견에 맞춰 그는 샤이론이 아닌 약을 파는 B. BLACK(흑인)이 되었다.
샤이론은 어릴 적 친구이자 첫 사랑인 케빈과 만나 자신으로 돌아간다. 샤이론이 긍정되는 엔딩이다. 푸른 달빛에 어린 샤이론의 검은 등은 파랗게 B. BLUE(블루)가 된다. 어린 샤이론이 돌아보며 타이틀인 「Moonlight」가 떠오른다.
리틀과 샤이론, 그리고 블랙이 합쳐져 문라이트라는 영화가 완성된 것 같다. 아니, 처음부터 샤이론은 수영을 좋아하고 달빛 아래 공평한 한 명의 사람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같은 성별인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샤이론은 샤이론이었다. 달빛은 공평하게 내리쬐어 샤이론에게도 비춘다. 그의 검은 피부는 편견과 혐오를 깨부수고 파랗게 빛난다. 샤이론이 돌아보는 순간. 달빛은 우리에게도 공평히 말을 건다. 너희도, 달빛 아래에서 파랗잖아. 우리 모두가 달빛 아래에선 공평해.
우린 연대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우린 기술력을 외치면서 기술에 끌려 다닐 것 인가? 기술을 선한 영향력을 위해 쓸 수 있다. 선택은 우리에게 달렸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영화 에세이며 코로나 관련 온라인 글쓰기며 자기 소개서까지. 나는 현실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렇다고 이 문제가 뒷전이 되길 원치 않는다.
유튜브에 들어가 <how to financially help BLM with NO MONEY/leaving your house (Invest in the future for FREE)>를 재생했다. 핸드폰이 열심히 스트리밍을 하면 흑인 인권 운동을 위한 모금이 광고로 충당된다. 기술을 좋은 곳에 쓸 수 있다. 좋은 방향으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이 글이 만약 불편했다면 미안하다. 세상을 바꾸는 중이라 써야 했다. 두서 없어도 써야 했다. 행동 해야 했기에. 알려야 했기에. 우리에게도 차별은 존재하니까. 나부터 차별하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