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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ysu Oct 10. 2020

머피는 딸이어야 한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속에는 기발한 플롯만큼이나 캐릭터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상업 영화 초기에 여성 캐릭터는 비극적인 죽음으로 영화 내에 부재했다. 




-「메멘토」, 레너드 셀비(가이 피어스)는 아내가 살해당했고 복수하기 위해 추적한다. 

-「프레스티지」, 앤지어는 아내가 익사당하고 보든의 아내(레베카 홀)는 목매달아 자살한다. 

-「배트맨 시리즈」, 첫사랑이었던 레이첼 도스(매기 질렌할)는 조커에 의해 희생당한다. 8년간 외출도 하지 않을 만큼 브루스 웨인이 내적으로 붕괴한 원인이 된다.

-「인셉션」, 아내는 현실에서 부재한다. 꿈이라는 생각을 주입 당해 자살했다. 이후 코브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의 작품 속의 '아내'와 '연인'역의 여성 캐릭터는 사랑과 거리가 멀었다. 비극적인 죽음으로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식이다. 사랑을 잃은 비극적인 남자의 모습을 부각하기 위해 '죽음'이라는 결말을 맞이해야 하는 여성 캐릭터들이 못내 안타까웠다. 의문이 들었다. 정말 그들은 슬픈 '비극의 전유물'에 지나지 않은 걸까.   



  여성 캐릭터 자체에 대해선 편협하거나 차별적이진 않다. 레이첼 도스의 경우는 검사 출신에 조커에 대항할 정도로 용감하고 진취적인 캐릭터다. 미란다 테이트도 한 기업의 총수이자 당찬 여성으로 나온다. 후에 적의 보스이자 목적을 위해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다. 「인셉션」에서도 코브의 아내는 코브가 동반 자살할 수밖에 없도록 치밀한 계획을 세울 만큼 명석했다. 「메멘토」와 「인썸니아」에 비하면 능동적으로 변한 셈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죽는 장면이 없는 여성 캐릭터도 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셀리나 카일(앤 해서웨이)은 마지막에 브루스 웨인(크리스찬 베일)과 평온한 시간을 보낸다. 「인터스텔라」에서도 아멜리아 브랜드(앤 해서웨이)는 사랑하는 사람은 잃었으나 영화 내에서 죽음을 맞이하지 않고 신 인류 개척에 성공한 듯 보인다. 

  만족스럽진 않다. 셀리나 카일이 브루스와 함께 알프레드에게 웃음을 보내는 거나 아멜리아가 사랑하는 이의 동면을 깨웠으면 했다. 「덩케르크」 속엔 전쟁 영화의 특성상 여성은 간호사로 엑스트라의 존재가 되었다. 죽음조차 조명되지 않는다.  죽지 않아서 죽는 장면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예 영화 내에서 제거된다.



「인터스텔라」는 이런 남성 중심적 시점의 영화들 중에서 부각된다. 머피(제시카 차스테인, 맥켄지 포이)가 그동안의 영화 속 '비극적 서사의 전유물'에서 가장 크게 벗어나는 캐릭터로써 특이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영화들 속 '아이'의 역할은 중요한 '귀환'의 상징이 되었지만 '아이'의 나이가 극 중 어리기에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장면들은 없었다. 예를 들어 「프레스티지」과 「인셉션」에선 귀환의 완성으로 상징화된다. 하지만 내내 마술을 관람하기만 해야 하고, 아버지의 부름 후에 감옥에 면회를 갈 수 있는가 하면 내내 뒷모습만 보이며 애절함을 더 했다. 「인터스텔라」에서 머피는 '귀환'의 상징이 되는 동시에 아버지와 유기적으로 연대한다. 진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는 중요한 역할이다. 머피가 '딸'이라는 설정은 중요하다. 더 이상 아이와 여성에 대해 '비극적 전유물'로 여기지 않는다는 증거다. 머피는 딸이어야 했다. 


  SF 영화이며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뚫고 넘나든다는 설정이기에 가능한 캐릭터다. 앞으로도 그의 영화에 머피만큼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는 주체적 여성이자 딸인 캐릭터가 나올 수 있을까. 그건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그의 영화에 아이와 여성이 '피해자' 혹은 '수동적'이고 '비극'의 상징으로써 사용되질 않길 바라며, 그의 행보에 응원과 작은 기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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