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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ysu Sep 20. 2020

옥자에게

두번째 주말편지

   



  




  옥자야. 밤이 쌀쌀해져가. 나는 마침 저녁밥을 먹으려고 장을 보고 오는 길이야. 월남쌈에 먹을 채소와 파스타에 볶아 먹을 버섯과 입이 심심할 때 먹을 연두부를 샀지. 제법 장바구니가 무거웠어. 그런데도 만오천원 남짓 되지 않았지. 괜찮지? 이걸로 내일 아침과 점심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물론 오늘 저녁도. 콩국수 솔솔 뿌려먹을 콩가루도 샀으니까. 그 전에. 에피타이저를 먹고 있어. 인절미 떡이야.


   국산 찹쌀 86%, 콩가루 4.8%, 정백당 8%, 정제염 1.2%


  옥자야. 지금 내 입으로 들어가는 성분 중에 네가 없어. 당연하겠지. 넌 영화 <옥자> 속 가상의 슈퍼 돼지니까. 하지만 세상엔 차고 넘치고 있어. 너의 사촌들이. 소와 돼지들이지. 네 친구들도. 천산갑과 반달 가슴곰이. 젖소와 양이. 말과 닭과 개가.






  






  계산대 앞에서 인절미를 발견했. 작은 팩 안에 8조각으로 나뉜 인절미를 투명한 랩이 감쌌더라. 뭉퉁한 손톱 끝으로 조금만 힘주어도 금방 인절미에게 닿을 수 있었지. 포들포들했어. 아마 너도 좋아할거, 옥자야. 먹어왔던 채소의 씁쓸하고 달달한 맛을 알으니 분명 인절미도 좋아할거야. 콩의 고소함만 쏙 빼서 모아놨다면 분명 인절미가 될테니까. 쫀득함이 입 안 가득 채. 옥자야, 너도 분명 좋아할거야.


  옥자야. 옥자야. 난 분명 너의 친구들과 사촌들을 만날 때마다 네 이름으로 부를거야. 옥자, 안녕. 조금이라도 내 입 안으로 덜 씹혀 들어오도록 말이야. 씹혀 넘겨지지 않고 음성과 숨이 되어 세상에 나오도록. 옥자야, 옥자들아, 안녕. 얼마든지 그렇게 부를거야. 수 많은 옥자들을 만날 때마다 수 많은 과자들 중 가장 익숙하면서도 놀라운 비건 과자를 들고 말이야. 응? 그 과자가 뭐냐고? 꼬깔콘이야. 손가락이 열 손가락인 것이 아깝도록 만들었던 그 과자이지. 맞아, 그 과자가 젖소에서 나온 우유로 초콜릿과 섞이지 않고, 달아지기 위해 착취 당하지 않고, 베이컨이 되기 위해 돼지들이 갈리지 않은 멋진 과자였던거지. 굳이 비건이다, 말하지 않아도 굳건히 사랑을 받아온 과자를 손에 들고 옥자, 너의 이름을 모든 동물들을 만날 때마다 부를거다. 안녕, 양아. 안녕, 돼지야. 하지 않고. 안녕, 옥자야. 몇 번이고 꼬깔콘을 먹으면서. 꼬깔콘을 애들에게 던져도 주면서. 인절미를 던져주면서. 방울 토마토를 던져주면서.






 






 옥자야. 인절미가 참 고소하고 맛있어. 너도 맛보고 싶을거야. 추석날 밥상 가득 너로 채우지 않고 네가 좋아할 음식으로 채우고 싶어. 네가 밥상 옆에 앉아도 전혀 부끄럽지 않도록. 그래. 영화 마지막에 나왔지. 미자가 할아버지와 밥상에 앉아 네 눈치를 보지 않고 편하게 밥을 먹던 것처럼.


  밥상 앞에 주저앉더라도 다른 곳에선 주저앉지 않기 위해 오늘도 긴 편지를 썼어. 입가에 묻은 인절미 가루를 마지막으로 혀로 낼름 핥아먹으면서. 소와 고양이와 강아지가 그렇듯이. 깔끔히 식사를 마치는 만족스러운 입가를 하면서 편지를 줄일게. 다음에 또 편지할게. 너도 맛있는 식사를 하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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