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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심플 Oct 05. 2020

지금 이대로, 그때 그대로

 오늘 보니 남편 머리가 허옅다. 신혼때만 해도 남편 머리를 내 다리에 눕혀 흰머리를 뽑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땐 머리를 휘휘 저어 너닷개쯤 발견하던 새치였다.

 그런데 어느날부턴가 흰머리를 뽑으면 안될 것 같았다. 그걸 다 뽑았다간 머리가 얼마 안남게 생긴것이다. 그래서 흰머리 뽑기를 관두었다.

 남편은 자신은 빨리 머리가 셀것이라 했다. 어머님 역시 머리가 빨리 세셨다고. 자신은 나중에 염색을 않고, 백발의 멋쟁이 신사가 될거라고 했다. 혹여 탈모가 생긴다면 삭발을 한 멋쟁이 신사가 될 거라고했다. 그리곤 나에게 어떨것 같냐고 물었다.

 나는 그의 흰머리가 싫지도 좋지도 않다. 나는 누가 어쩌고 다니는 것에 큰 관심이 없는 편이다. 그게 남편이더라도. 기왕이면 남들도, 남편도 내게 그리 해주길 바라고.

 그런데 어느날부턴가 남편이 농담(정확히 말하면 쓸데없는 소리)을 않는다.
 연애때는 남편의 말장난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웃음기없는 얼굴로 냉소 어린 독설을 하는 스타일이었는데 그게 왠지 웃겨서 빵터지다가도, 내 약점을 건드리면 곧장 싸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13년여의 나의 지랄 때문이었을까.

그는 이제 쓰잘데기 없는 말을 잘 입에 담지 않는다. 지금 생각하니 그리 서운할 말들은 아니었다.

 내가 음식을 잘먹을 때 "푸드파이터네",

기분이 우울해서 달달한걸 먹고 싶다고 할때 "설탕중독 아니냐", 나만 밥을 못먹고 만난날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샀더니 "빵이 6000원이면 밥을 먹지그러냐."

뭐 그런 얘기들이었다.(그러고보니 내 약점은 먹는거였네.)

 어쨌거나 그간 남편은 많이 변했다. 아마 나도 그렇겠지. 그간의 세월 우리는 서로를 깎아내며 조각했을 것이다. 강하고 날카롭던 네가 옅은 빛으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모습이 새삼 낯설다.

 이것 역시 싫지 않다. 그때의 너를 그때의 내가 좋아했듯, 이때의 너는 이때의 내가 사랑한다.
 다만, 세월의 무게가 너의 소년같은 장난어린 얼굴을 완전히 앗아가진 않았음 한다. 가끔은 실없는 소리도 해주길 바란다. 그러면 나 또한 소녀같은 얼굴로 네게 까르르 웃어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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