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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심플 Oct 14. 2020

미니멀라이프를 아십니까

 "도를 아십니까" 를 묻듯 그대에게 묻는다.
 미니멀라이프를 아느냐고.

 나는 어느 정도 안다.
 몇년 전 한창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이던 당시, 자석처럼 이끌려 사다 읽었다. 이 책을 읽고 내 인생은 적지 않게 변했다.
 사실, 내 삶을 바꾼 책이 되었다.

 어릴 적을 생각해보면 나는 분명 태생적 맥시멀리스트였다.

 우리 집에 있는 사전 비슷하게 생긴 책을 아무거나 하나 집어 스르륵 넘기면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내가 단풍잎을 주워 모았기 때문이다.

 단풍잎 이후로도 조개껍데기, 스티커, 편지지, 다이어리 등으로 대상만 옮아 갔을 뿐, 나의 수집하기는 계속되었다.
 엄마는 그런 날더러 할아버지를 닮은 것 같댔지만, 사실 엄마도 선물 상자나 쇼핑백 하나 쉽게 버리지 않으셨다.

 수집가적 기질은 취미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나는 일기, 다른 하나는 사진.
 나는 모든 순간을 수집하고 싶었다.
 느낀 것이 그냥 흘러가는 게 아까워 적었다.
 본 것들이 잊혀지는게 두려워 찍었다.


 그런 내게 미니멀라이프가 물었다.
 "So what? (모아서 뭐할건데?)"
 머리를 씨게 한대 얻어 맞은 것 같았다.
 그 동안은 모은다는 행위를 성향이자 취미로 생각해왔고 나름 자부심도 느꼈다.

 순수문학과 예술이 그러하듯, 실용성과는 별개로 그 자체로 의미있다 여겼다.

 사실, 맞는 말이다. 무언가를 수집한다는 건 그만의 의미를 가지는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나의 "모으기" 뒤에는 "불안함"이 숨어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무언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혹은 잊을지도 모른다는.

 종종, 즐거워서 모은다기보다, 모으지 않으면 불행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모았다. 일종의 강박처럼.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모호할 땐 그 행위가 자신을 이롭게 하느냐 해롭게 하느냐가 기준이 되어준다.
 손을 씻는 행동이 세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적당한 선에서 이루어지는지,

 아니면 일상을 방해할 정도로 과도한지를 보고 정상범위를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닌데, 어느새 나의 "모으기"는 하지 않으면 왠지 불안한 행위가 되어 있었다.
 주제를 가지고 간결하게 일기를 쓰기보다,

있었던 일과 들었던 생각을 빠짐없이 나열했다.
 인상적인 것을 기다렸다 담기 보다,

모든 순간을 기록하듯 찍어댔다.

 집은 "언젠가 필요할지 몰라서" 사둔 아이들 물건으로 가득 채워졌다.
 "모으기"의 강박이 오히려 내 취미를,

내 삶을 방해 하고 있었다.

 문제는 "진정한 수집가"로 살았다기 보다 "모으기 집착녀"로 살았다는 것이었다.

 온갖 잡동사니를 모으는 건 수집가의 일이 아니다.  

 그것들 중에서 가치있는 것을 알아보는 것이 수집가이다.

 미니멀라이프를 만나고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기 위해 노력했다.
 내 곁에 머무는 것들이 가치있는 것인지 쓸모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것인지를 구별해내려 고민했다.
 물건에서부터 시작해 식습관, 말하는 습관, 인간
관계까지. 삶의 전반을 "수집가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바라보니 생각보다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있어서 행복한 것도 있지만 없어서 행복한 것도 아주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없어도 괜찮다. 없는 게 더 나을 수 있다.

 고로, 모으기 위해 덜 애써도 된다.

 그것이 모으기 집착녀였던 나에게 자유선언이 되었다. 이름도 고고하고 다가가기 어려워보이는 그 삶의 방식이 내게 준 건 다름아닌 자유, 해방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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