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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심플 Sep 24. 2020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그런 순간을 경험한 적 있을거라 생각한다.
너무 좋아서, 너무 완벽하게 행복해서 이래도 되나 싶은 순간.

나는 오늘 오후 다섯시, 거실 구석에 앉아 빨래를 개다가 그랬다. 건조기에서 꺼낸 빨래더미 사이에서 수건을 구분해 내, 하나씩 개키고 있었다.
소일거리에 집중하는 사이 머리는 잠시 사고를 정리하며 멍해지고 있었다.

그런 나를 누가 불렀다. 새초롬한 목소리로.

아이들이 아니었다.
바람이었다. 처음 보는 바람이었다.
길고 축축했던 여름이 언제 다녀 갔었냐는 듯,
물기하나 머금지 않고 쾌활하게 웃더니
이내 내 검은 머릿칼을 쓸어넘기기 시작했다.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하늘하늘, 나부끼는 새하얀 속커튼 사이로
또 새하얀 구름, 그리고 파란 하늘, 하늘.
아마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불렀구나!'
내가 대답했다.

바람이 내게 말을 걸 때,
날씨가 내게 말을 걸때,
신이 내게 말을 걸 때.
나는 어쩔 도리가 없이 대답하고 만다. 
경탄과 감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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