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심플 Sep 24. 2020

커피를 사...좋아합니다

커피예찬

 커피를 좋아하는 건 요즘 사회에서 특별할 게 못된다. 그럼에도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고 고백할 참이다. 왜 좋냐고 물으신다면 대답해 드리는게 인지상정.

 난 본디 스무살이 되기 전까지 음료따위는 상종하지 않았다.
"음료를 살 돈으로 빵도 살 수 있고,

과자도 살 수 있는데!

어째서 물로도 대체 가능한 것을 마시는가!"
 대충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대학에 처음 들어가 학교 앞 이디야에서 화이트초콜릿 카페모카를 먹곤 알았다. 세상엔 (겁나) 맛있는 음료도 있단걸.

  대부분의 커피 초보자들이 그러하듯,

"단거"에서 시작해 "덜 단거" 쪽으로

취향이 이동했다. (그래도 가끔 당 떨어지는 날은 바닐라라떼를 마시곤 한다.)
 단맛이 사라져도 커피가 좋은 이유는 커피 본연의 맛을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커피의 "맛"을 사랑하지만, 커피에서 "카페인" 빼놓으면 거의 시체 아닌가 싶다.
 술을 마시지는 않지만, 알코올 없는 술이 무슨 의미겠는가. 흔히 술은 취하려고 마신다고 하던데, 커피는 깨려고 마신다.
 커피 한잔에 아침잠을 깨워 수업을 듣기도 했고,
점심잠을 깨워 업무를 이어가기도 했고,
저녁잠마저 깨워 육아를 해낼 힘을 얻었다.
 그때그때 좋아하던 커피메뉴는 미묘하게 달라졌지만 그안의 카페인이 그 모든 순간의 나에게 힘이 되어주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커피향, 좋은 음악, 예쁜 인테리어. 거기에 더해 사람들의 활기. 커피를 제공하는 "카페"라는 공간에 대한 애정도 한몫한다. 오랜만에 만나 밀린 수다를 떠는 친구들, 사랑의 언어를 나누는 연인들 모두 기분 좋아지는 풍경이다.
 셋째가 100일도 안되었을때 신랑이 급작스레 2주간 해외출장을 간 적이 있다. 사람도 못만나고, 집근방 500 미터를 벗어나지 못하던 시절이다. 남편마저 없으니 정말 혼자인 것 같았다.
 그때의 나는 매일 아침 집앞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카페에서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을 보며 커피를 기다리는 시간이 내가 바깥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확인시켜 주는 느낌이었다.

 그게 그 시절의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

 지금의 나에게 커피는 하나의 보상이 되었다.
 나의 아침루틴은 아이들에게 간단한 아침을 챙겨주고, 청소기를 돌리고, 세탁기를 돌리고, 건조기를 돌리고, 식기세척기를 돌리고......

 집안일은 기계가 다한다.

(기계가 좀 많아서 그렇지.)
 집안일 사이사이 아이들의 요구에 응하는 건 덤.
 쨌든, 돌릴걸 다 돌리고나면 앉아서 커피한잔을 마실 수 있다.

 원두를 직접 내려 마시는 것도 아닌데
 나의 커피를 마시기 전 의식은 성스럽기까지 하다.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옷을 갈아입고,
식탁을 닦고,
주방에서 내다보이는 거실은
장난감 없이 깨끗이 정돈하고,
하얀 속커튼을 쳐서
베란다의 미끄럼틀을 가리고,
지난 밤 꽁꽁 얼었을 얼음을
트레이에 비틀어 쏟아붓고,
맘에 드는 잔에 담는다.
 그리곤 오늘따라 땡기는

커피 캡슐을 하나 골라
커피머신에 넣은 후

에스프레소 추출버튼을 누르면 끝.
(특별히 맛있는 라떼가 마시고 싶은날은

옷을 갈아 입은 후 집 근처 카페로 가

테이크아웃을 한다)

 그러고서 식탁에 앉아 커피를 한모금 마시면
오전에 할 일을 잘 마쳤다는 만족감과
조금 쉬어가도 된다는 안정감,
오후엔 어떤 시간을 보낼지에 대한 기대감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오늘도 좋은 날이 될 것 같다.
  그대도 그러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발라드에 빠졌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