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raosha Jan 24. 2023

프롤로그

  해외살이를 시작하기 전, 우리는 어느 나라에서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은 필요 없었다. 그것은 이미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아내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내는 석사과정을 밟고 싶었으며, 1년이라는 기간 안에 석사를 받을 수 있는 곳은 적어도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영국"이 유일했다. 아내는 결혼하기 전부터 해외에서 석사를 받고 싶어 했고, 2014년 우리가 영국을 여행차 방문했을 때도 석사과정을 밟을 학교에 가 볼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이후로 아이가 태어나고,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아내의 버킷리스트는 장바구니에 담긴 물건처럼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있었다. 그 장바구니의 물건을 결제할 순간이 온 것은 내 한마디였다. "어차피 코로나도 답 없는 상황인데, 지금(2021년)쯤이면 이제 나가도 되지 않을까?"라고 말이다.


  게다가 아내는 믿고 의지하던 부장님마저 이직을 하는 바람에 부장의 업무를 해야 되는 상황이 되자, 그냥 도망치기로 결정했다. 그때부터 영국행의 준비가 시작되었다. 나는 그냥 던진 말이었는데, 아내는 진지했고, 2022년 1월에 지원했던 대학으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았다. 


  나는 겉으로는 "축하해"라고 말하며, 한편으로는 "안 갈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했었다. 아내는 합격통보와 동시에 예전부터 가고 싶어 했던 회사로부터 같이 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서 선택의 문제가 남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내는 너무나도 간단하고 아름답게 거절했다. 거절이라기보다는 연봉을 못 맞춰주게끔 요청한 것이다. 결국 해당 회사는 연봉을 맞추지 못했고, 오히려 미안하다는 말을 들으며 챙길 것을 확실히 챙겼다. 


  아내는 마음을 다잡고, 5월부터 영국행 비자부터 살아야 될 집, 아이 학교까지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회사 업무를 핑계로 도와주지 않았다. 아내는 내가 영국에 가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 같다. 어차피 내가 회사의 노예이니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리고 대망의 8월 31일, 우리는 "영국"의 "런던"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렇게 아내와 아들은 학생으로, 나는 백수 생활이 시작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