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날씨라고 하면, "흐리다, 비가 많이 온다, 맑으면 일광욕한다" 등의 많은 수식어가 있다.
처음 영국에 왔을 때, 이 수식어들은 전부 거짓에 가까울 정도로 맑은 날이 연속되었다. 게다가 한국의 잿빛 하늘을 보다가 이곳의 파란 하늘을 보니 마음까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집 근처에 The Regent's Park, Primrose Hill 등 큰 공원이 많아서, 우리 가족은 매일 같이 들러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돗자리와 공 하나만 들고, 아들과 함께 해가 질 때까지 놀고 또 놀았다. 아들은 너무나 좋아했다. "엄마, 아빠가 학교 끝나고 같이 계속 놀아서 너무 좋아."라며...
한국에서는 나와 아내가 회사를 다녀야 했기에, 아들은 유치원이 끝나고 태권도 학원을 다니며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고, 집에 도착하더라도 저녁 식사 후 씻고 자기 바빴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등교와 하교를 엄마, 아빠와 같이하고, 학교 끝나면 잘 때까지 함께 시간을 보내니 너무나도 좋았나 보다. 수많은 장난감보다 결국 "같이 하는 시간"을 더 원했었나 보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있었지만 행동으로는 그러지 못했다.
원래도 긍정적이고 밝은 아들이었지만, 여기서는 눈썹과 눈이 웃는 모습으로 바뀌고 표정도 다양해졌다. 아들에게 이런 표정이 있었나 싶을 정도이다. 게다가 애교도 많아졌다. 아내도 회사를 벗어나서인지 평소에 웃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즐거운 표정인 것 같다. 잘 웃지만, 항상 근심 가득한 얼굴이었는데, 여기선 어쩐지 밝아 보인다.
난 잘 웃지도 않고, 항상 인상을 쓰고 있다며 우리 부모님에게도 한 소리 듣는 편이었다. 런던 생활이 2개월 정도 지나갈 때쯤, 페이스톡을 하던 어머니께서 "야! 너 얼굴 많이 좋아졌다. 표정도 예전보다 훨씬 좋아 보여!"라고 말씀하시면서, "거기 물이 좋은가보다야."라며 기뻐하셨다.
맞다! 우리 가족은 런던에 와서 한국보다는 심적으로 안정감을 더 느끼고 있다고 해야 되겠다. 그리고 나와 아내는 한국시간과 반대로 돌아가는 이곳에서 회사와 "緣"을 끊어가는 중이었고, 아들은 엄마, 아빠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 "緣"이 더 짙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한국에서도 할 수 있었지만, "회사"라는 핑계로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뿐이다. 돌이켜보면 "회사"에 몰입해서 다녔던 시간을 조금이라도 "가족"에게 썼더라면 지금의 아들과 아내의 표정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