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raosha Jan 27. 2023

생각보다 높은 체감 물가

  영국은 물가가 비싸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월세부터 전기요금이니 수도요금은 한국과 비교할 수준이 아니다. 그냥 비싸다. 그래서인지 초반부터 전기나 수도를 적게 쓰는 방향으로 노력했다. 안 쓰는 전자제품은 전부 코드를 빼놨고, 콘센트로 사용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전부 OFF로 해놨었다. 심지어 청소기 돌리는 것도 아까워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이용해 집 청소를 했었다.

  

  전기요금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적게 나왔지만, 놀라운 것은 보조금을 받다 보니, 오히려 돈이 입금되었다. 전기 민영화인 이 나라에서 전기요금은 부르는 것이 값이고, 추정치로 돈을 받아갔다가 이야기하질 않으면 돌려주지도 않는다. 웃기는 곳이지만, 사람이라는 것이 금세 적응하기 마련이다. 한국에서 전기요금이 5만 원 정도였다면(생각 없이 그냥 쓰는 수준), 여기서는 아끼고 아껴도 100파운드(=150,000~160,000원) 정도는 나온다. 전기 쓰는 것이 무섭다.


  그리고 수도요금은 그야말로 다른 세상의 이야기이다. 우리 집은 미터기가 없다. 즉 우리 Flat에서 쓰는 수도요금을 1/N 해서 내는 것이다. 우리 가족이 10명이든 1명이든 한 가구당 내는 돈은 동일한 수준이다. 그 사실을 몰랐던 우리는 정말 아껴 썼다. 샤워하면서 양치하는 사치를 부리지도 않았고, 물을 쓸 때면 항상 잠그는데 익숙했다. 하지만 수도요금은 6개월에 한 번 내는데(물론 회사마다 다르다. 이곳은 거의 다 민영화되었다고 생각하면 쉽다.), 금액을 보고 어이가 없어서 따졌지만, 여긴 영국이라는 답변(우리는 해줄 게 없으니깐 돈이나 내세요.)을 받았다. 즉, 해 줄 건 없고, 그게 싫으면 미터기 설치해라였지만, 미터기 설치는 집주인의 승낙이 없으면 어렵다. 집주인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다. 그냥 이 수도요금을 내는 것이 미터기를 설치하는 비용보다 저렴하고(1년을 지낸다는 가정), 집주인은 미터기 설치를 우리가 돈을 낸다 하더라도 승낙해주지 않았다.


  교통비는 더욱 지옥이다. 여행 와서 튜브(=지하철)나 레일, 버스 타는 것이라면 충분히 낼 수도 있지만, 생활하는 우리에게는 교통비는 너무 비쌌다. 그리고 요즘이 피크타임(=혼잡시간), 요일(=레일의 경우) 등에 따라 다르고, 버스비는 우리가 있는 동안 10% 이상이 올라버렸다. 튜브 왕복으로 타면 기본 10,000원 이상 나온다고 봐야 된다. 그래서인지 웬만한 거리의 경우 걸었다. 하루에 보통 15,000~20,000보 정도였고, 심하면 25,000~30,000보까지도 걸었다.


  외식은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잠시나마 생각했었다. 그러나 한국에 있을 때 외식을 자주 했지만, 여기서는 그렇게 하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수백 파운드를 쓰게 된다. 쉽게 예를 들면, FiveGuys라는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 2개, 음료수 2개, 포테이토 2개 주문하면 30파운드 이상 나온다. 우리나라로 치면 햄버거 2개 세트 먹으면 최소 45,000원이라는 소리이다. 물론 이 FiveGuys라는 가게는 쉑쉑과 비슷한 수준의 가게이니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 그 정도는 낼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긴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정서상 햄버거 2개 세트에 45,000원 이상을 태운다고? 어쩌다 한 번이지 매일 같이 먹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럴듯해 보이는 음식도 막상 먹으면 맛이 없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해 먹는 경우가 많아졌다. 영국엔 피시 앤 칩스 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실감할 때가 많다. 맛있는 건 주로 이탈리아 음식이거나 아시안 기준으로 일본, 중국 음식 정도이다. 한국 음식점이 많아지긴 했지만, 기대했던 맛과 가격을 생각하면 결국 집에서 해 먹게 된다. 나는 연어베이글을 좋아하는데, 사 먹으면 7파운드 정도이지만, 재료를 사서 해 먹으면 7파운드로 최소 2번에서 3번은 해 먹을 수 있다. 즉, 이 동네는 무엇이든 사람 손을 거치면 수배 이상의 가격표가 붙는다. 그런데 내 입맛에 맞지 않은 경우가 많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먹을 것부터 집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처리까지 스스로 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외식은 정말 먹고 싶은 것이 생기면 꾹꾹 눌러놨다가 가서 먹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주변인들은 주 1회 또는 한 달에 2번 정도 외식을 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우리는 주에 2~3회를 하고 있었으니 입맛에 맞지도 않은 음식을 먹으며 돈을 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단편적으로 이것만 보면, 영국은 정말 사람 살 곳이 맞나 싶을 정도의 물가이지만, 고기(소, 돼지, 닭 등), 달걀, 우유, 치즈, 빵(디저트빵 말고), 과일, 야채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저렴하다. 특히 고기, 치즈, 과일, 야채는 정말 저렴하다. 보통 Waitrose, M&S, ALDI 등과 같은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립아이 스테이크(300~400g)가 비싸도 5~7파운드(7,500원~10,500원) 수준이다. 게다가 이 동네는 돼지고기를 잘 안 먹어서 그런지 돼지류는 더 저렴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삶에 필수적인 식품은 가격을 통제하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트별로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같은 돈으로 장을 본다면 훨씬 적게 산다고 보면 된다. 믿기 어렵겠지만 장바구니 물가는 오히려 런던이 더 낫다. 우리는 이곳에서 립아이와 서로인 스테이크를 밥 먹듯이 먹고 있다. 치킨은 사치스럽게도 항상 닭다리만 사 먹고....(닭다리 10개 6~7파운드 수준, 한화로 10,000원 수준)


  이러다 보니 여기 있는 동안 "평생 지어야 할 밥을 다 짓는다."라고 말할 정도로 집에서 해 먹게 되고, 어딜 가든, 뭘 하든 결국 "돈"을 생각할 수밖에 없게 한다. 처음에 우리 세 가족의 한 달 생활비를 1,000파운드 정도로 생각했는데, 살아보니 적어도 1,200파운드부터 시작이다. 여기 올 때 생각했던 예산이 크게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나와 아내가 열심히 모아둔 돈을 전부 까먹을 생각으로 왔지만, 체감하는 물가는 상당한 수준이고, 한국에 돌아가기 전까지 돈 관리에 신경을 많이 써야 되는 상황이 돼버렸다.


  그래도 일을 하지 않으니 즐겁다. 어차피 고민이라고 해봤자, 항상 "오늘 점심 뭐 먹지?"와 "오늘 저녁은?"과 같은 메뉴일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표정이 밝아져 가는 우리 가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