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중요하다. 마음의 안식처이고, 회사나 학교 다음으로 시간을 많이 보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런던에서 지낼 곳을 알아볼 때 고민을 많이 했지만, 이 고민은 정말 쓸데없는 것이라는 것을 금세 알게 되었다.
영국의 물가가 높다는 사실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만, 돈만 내면 다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영국의 집주인과 계약한다는 것은 서류부터 면접까지 흡사 채용과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마음을 졸이게 만들었다. 우리는 9월부터 살 곳을 7월부터 알아보기 시작했으니 더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조건이 맞으면 그 집은 이미 나갔거나, 집주인으로부터 승낙이 떨어지지 않기 일쑤였다.
보통 영국 현지가 아닌 한국에서 "영국에서 살 집"을 구한다는 것은 Rightmove나 Zoopla 같은 부동산중개플랫폼을 통해 방을 보고, 조건에 맞는 방이 있으면 Viewing(온라인)을 한 다음, 계약하고 싶어요로 진행된다. 이때 집주인은 "이 사람이 내 집에 어울리는가?"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확인한다. 그 여러 방법이라는 것이 공식적인 서류처럼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어이가 없는 것(개인적인 생각)이 많다. 그 어이없는 것은 나와 아내의 연봉, 세금납부확인서, 한국에서 소유하고 있는 재산목록(몇 년이나 소유했는지도...) 등이고, 심지어 여권사본과 보딩패스까지... 그리고 인터뷰도....
그렇게 집주인이 요구하는 서류를 "여기 있사옵니다. 제발 계약 좀 합시다."라는 을의 자세로 제출하고, 계약금을 넣어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취소해 버린다. 이게 웃을 일이 아닌 것이 영국이란 나라는 도저히 우리나라의 사고방식으로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많아서 그냥 헛웃음 지으며, "ㅆㅂ ㅇㅅㄲ들 또 이러네"라고 욕이라도 한 바가지하며 지나쳐버려야지 안 그럼 "마음의 병"에 걸리기도 한다.
우리는 이 과정을 거쳐, Zone2에 역세권(역에서 5분), 치안(깨진 술병이 적고, 가로등도 꽤 있고, 인도가 깨끗하고, 관리사무소가 있는 등)이 좋고, 아내와 아들의 학교가 가까운 곳에 월 2,000파운드를 지불하며 20평 정도의 Flat(우리나라로 치면 아파트, 일본으로 치면 맨션)을 구했다. 다행인 것은 관리비와 난방비, 약간의 가구와 집기 등이 포함된 금액이다. 그러나 전기요금과 수도요금은 별도이다.
여기서 1년을 지내야 되니, 9월 1일부터 거의 2달 동안은 살기 위한 기반 마련에 시간을 많이 보냈던 것 같다. 해외살이 경험이 없던 나로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라는 막연한 고민이 많았지만, 아내는 어떤 것을 먼저, 어떤 것은 나중에를 잘 알고 행동에 옮겼다. 이러는 동안 아내와 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점점 늘었고, 즐거웠다.
사실 별 건 없는데, 마음 편하게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거의 없다 보니, 이 시간이 나에게는 여러 가지로 새롭게 다가왔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는 가족과 함께 보내도 내심 마음 한 구석에 불편함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한국과는 낮과 밤이 다른 이 영국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가족과 보낸다는 것은 "내가 나중에 늙어서, 아니 이 휴직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가 회사를 다시 다닐 때, 영국에서 보냈던 이 시간을 추억 삼아 살아가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