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법규는 잘 지키는데 무단횡단이 일상인 나라
영국 와서 놀란 점을 하나 꼽자면, 자동차가 생각보다 천천히 다닌다는 것과 대부분의 도로가 굉장히 좁다는 것이었다. 도로가 좁음에도 도로의 양쪽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이 불법주차가 아니라는 사실과 그 좁은 도로를 2층 버스가 다닌다는 것은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극악의 난이도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더욱 놀란 것은 신호등의 존재가 무색할 만큼 "무단횡단"이 일상적이었다.
교통법규를 잘 지킨다는 것은 자동차가 신호를 정말 잘 지키는 것과 같은 당연한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일단 횡단보도가 있든 없든 사람이 보이면 자동차가 무조건(?) 멈춘다는 것을 말한다. 도로가 좁든 넓든 "사람"이 보이면 멈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리나라는 사람이 먼저냐 자동차가 먼저냐라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사람과 자동차에 관계없이 내가 먼저라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런던에서는 "사람"이 무조건 먼저이다. 우리나라도 사람 보이면 멈추잖아요라고 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런던은 이와는 다르다.
자동차가 가까이 오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멈추고 지나가길 기다리지만, 런던에서는 가까이 오든 멀리서 오든 "사람"이 보이면 무조건 멈춘다. 가끔은 민망할 정도로 멈추는데, 이 말은 지나가길 기다렸다 가려고 하는 상황에서 차가 그냥 멈추다 보니 멋쩍어하며 건너는 일이 꽤 많았다. 가볍게 손으로 인사를 해주며 건너면 되지만 아무래도 이 상황이 익숙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도로의 폭과 관계없이 그냥 자동차가 안 온다 싶거나 약간의 거리를 두고(대략 10m) 오는 상황이면 아무렇지 않게 무단횡단 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뀔 때까지 기다리곤 했는데, 이런 기다림이 민망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그냥 건너고, 이 건너는 사람들을 따라 다른 사람들도 건너기에 당황스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녔다. 게다가 경찰이 버젓이 보고 있어도 아주 잘 건넌다. 이쯤 되면 무단횡단은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여도 되는 정도가 아닌가 싶다.
무단횡단 외에는 정말 교통법규를 잘 준수하고, 양보와 배려도 잘하는 편이다. 주차는 뭐 말할 것도 없이 잘 지킨다. 결국 위반 시 "금융치료"가 확실하기에 가능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무단횡단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긴 하다.
이렇게까지 무단횡단을 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도로의 폭이 좁고 자동차들이 천천히 다녀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성격이 급한 건가?라는 생각도 하지만 서울에 서울태생의 사람이 적듯이, 런던에는 영국사람보다 다른 나라의 사람이 많은지(?)라 섣불리 이야기할 건 아닌 거 같다.
런던에 와서 "무단횡단"의 모습을 보며 당황하지 마시고, 무단횡단을 하는 그들과 함께 건너가면 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