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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raosha Jan 29. 2023

"영어" 잘하고 싶다.

  나는 영어를 손에서 놓은 지 10년이 넘었다. 회사에서는 영어를 쓸 일이 없었고, 해외출장을 간다고 하더라도 통역이 붙었다. 그래서 더욱더 영어와 멀어져 있었다. 


  런던행이 결정되었을 때, 영어를 공부할까?라는 생각을 잠시나마 했었으나 회사원의 가장 강력한 무기 "회사일로 바빠서 영어 공부는..."으로 출국 전까지 영어를 공부하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나에겐 영어를 공부할 동기가 없었다. 아내와 아들은 학교를 다녀야 했지만, 나는 아들의 등교와 하교를 하는 것이 이곳에서 내가 해야 될 업무였기 때문이다. 나머지 시간은 취미생활을 하든, 잠을 자든 내 자유였다. 


  아내는 내가 영어를 잘 하진 못해도 어느 정도 할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는 커피를 주문하는 순간부터 머리가 하얘지면서 아내가 소환되었고, 나는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돈을 쓰는 영어가 쉽다고 했던 것은 그냥 몇 번 몇 번 주세요라든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Yes, Yes 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PRET(커피 전문점)에서 아메리카노 한잔을 주문하면서, 


  "아메리카노 please."라고 말하자, 샬라샬라 엄청 물어본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었고, "Pardon?"이라고 재차 물어보긴 하지만, 한 번 놓치면 그다음부터는 아예 들리지도 않았다. 게다가 "Do you need a bag?"은 내가 알고 있던 영어 듣기에서 많이 벗어나는 발음과 함께 당황케 했고, 마지막으로 "Do you need a receipt?"에 무너져 내렸다. 나는 이것을 좌석(Seat)이 필요하냐로 들어서 결국 아내를 소환했다.


  이러는 동안 나는 등이 흠뻑 젖었고, 빨갛게 상기된 얼굴을 보던 아들은 "아빠 화났어?"라고 물었다.


  결정적으로 아들의 학교에 하원하면서였다. 담임 선생님이 하교하러 갔던 나를 부르더니, 뭐라 뭐라 말을 한다. 그냥 아예 들리지 않고, 단어라도 캐취 해서 추정해보려고 해도 한 번 놓쳐버리니 답도 없다. 이제는 "Pardon"이라는 말도 안 나오고, 눈웃음을 지으며 "OK"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아내가 선생님에게 메일을 보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래도 나름 중고교부터 대학원까지 영어를 어느 정도 써오고, 10년을 놀아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나도 충격이었다. 그러다가 "그러고 보니 여행도 영어권으로 안 돌아다녔네"라는 구차한 말로 자기 합리화를 했다. 게다가 어느 정도 수준의 영어는 될 것이라고 자만했던 것도 크게 한몫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됐다.


  어차피 영국에서 영어 쓸 일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으나 물건을 살 때, 교환할 때, GP에 예약할 때, BETTER에 등록할 때, Council에 문의할 때, 아들 학교의 여러 가지 일 등 일상생활에서 쓸 일이 많았다. 그저 휴직과 동시에 아무 생각 없이 쉬려고 했던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결국 나는 영어학원을 다니기로 결정했다. 우리의 예산에는 영어학원은 없었고, 영국에서 사설학원과 같은 곳에서 영어를 배우는 금액은 상당했다. 그래서 ESOL(English for Speakers of Other Languages)을 선택했다. 


  5개월 정도가 지난 지금, 크게 어려움을 느끼진 못하지만 이제는 좀 잘하고 싶어 진다. 이래서 언어를 배우려면 그 나라에 가라고 하나보다. 처음엔 거의 들리지 않던 것이, 고작 몇 개월 있었다고 어느 정도 들리는 것을 보면 이 나이에도 신기할 따름이다. 


  지금은 기존에 알고 있던 영어보다는 정중하고 배려있는 영어를 하고 싶다. 


  예를 들어, 이곳에서 나는 "Where are you from?"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고, "Where did you live before?"라는 말을 더 자주 들었다. Where are you from?으로 배웠던 것이 무례한 것은 아니지만, 저 표현(너 어디에서 왔어?)은 외국인들 잔뜩 모아두고 이야기할 때나 쓰지, 실제로는 Where did you live before?(전에 어디서 지냈어?)와 같이 시작하며, Small Talk를 이어나간다. 훨씬 자연스럽고 할 이야기가 풍부해지는 느낌이다.


  아직까지는 문장을 갖추지 못하거나, 시제가 틀리거나, 여러 가지 이불킥하는 상황이 많지만, 정중하고 배려있는 영어를 어느 정도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남은 기간 동안의 작은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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