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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raosha Mar 01. 2023

험난한 Y1 적응기, 학교생활편

아들의 마음을 알 수 없지만 기특하고 존경스럽다.

  2022년 아들은 영국나이로 5세(한국나이 6세)였고, Y1(한국의 초등학교 1학년)을 다녀야 했다. 영어라곤 알파벳 대문자를 쓸 수 있었고, 할 수 있는 영어는 "Hello"와 "I'm 똥꾸멍(아들 애칭)"였다. 나와 아내는 이 정도라도 해 온 것이 어디냐며 아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런던에서 마주한 현실은 나와 아내를 슬프게 만들었다. 참고로 아들은 학교에서 유일한 한국인이다. 보통 1~2명은 있다고 하는데.... Admin Teacher에 따르면 몇 년 전에 한 명 있었다고 한다.


  아들에게 "똥꾸멍, 학교 어때?"라고 물으면 "재밌지, 영어가 한국어처럼 들려!"라며 답을 하니 정말 재밌나 싶었다. 아들은 원래부터 자신의 속내를 쉽게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라 수많은 대화를 통해 겨우 학교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학교를 다닌 지 3주 정도가 지났을 때, 아들은 자기 전 "엄마, 친구들이 자꾸 나를 치킨이라고 불러, 그거 놀리는 거지?"라며 말을 꺼냈다. 사실 애칭일 수도 있고, 별명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놀리는 것이라고 생각되면, 치킨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하라는 정도로 마무리했었다. 아들은 바로 다음날 하지 말라는 표현을 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치킨"이 계속되자 학교의 문을 두드렸다. Admin Teacher를 만났고, 선생님은 바로 "그런 일을 있어서도 안 된다."며 확인하고 바로 조치를 하겠다고 했다. 이건 놀리는 것이 맞았던 것이다. Admin Teacher는 공개적으로 할까요? 아님 비공개적으로 할까요?라고 우리에게 물었다. 아들의 이야기를 믿지만 제3자가 봤을 때는 다를 수 있기에, 우리는 비공개적으로 해달라고 요청했다.


  영국의 행정이 느리다고 욕했었지만, 이 건은 그날 바로 조치가 들어갔다. 조치라고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니라 수업 중에 "친구를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지"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고, 특히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는 것에 대해 강조했다고 한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신기하게도 치킨이라고 놀리는 친구는 없었다. 지금 시간이 지나서 하는 말이지만, 친구들은 한국인 친구가 와서 신기하고 친해지고 싶어서 말을 걸었지만 아들은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눈만 깜박깜박하니깐 말을 못 하나라고 생각하며 편하게(?) 불렀던 것 같다.


  인종차별이니 놀리는 것이니 일단 선생님 귀에 들어가면, 어떻게든 조치를 하는 것 같다. 좀 놀랐던 것은 계속 그렇게 부르는 친구가 있다면 1차적으로 따로 불러서 주의를 주고, 그래도 고쳐지지 않으면 해당 부모님에게 연락을 취해서 못 하게 하겠고 했다. 이런 일에는 많은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까지 했다. 그렇게까지 하면 부모들끼리 싸움 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


  이 놀림이 정리되어 갈 때즘, 학생복지 담당선생님이 아들을 하원하고 있던 나를 붙잡았다. 나는 일단 속사포 랩과 같은 이 영어를 알아들어야 했다. 머리에선 물이 쏟아져 내렸지만 정신 차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온 정신을 선생님의 말과 표정에 집중했다.


  아들이 "점심"을 너무 안 먹어서 걱정이라며, 도시락을 싸주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다. 원래 아들은 입이 짧은 데다가 한식파인데 여기서 빵과 스파게티 같은 평소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 나오니 당연히 깨작깨작 거렸을 것이다. 아내와 나는 정말 고민 또 고민했지만 결론은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였다. 


  다행히 아들은 피시 앤 칩스는 좋아했기에 나머지 스파게티나 다른 음식들이 나오는 날이 문제였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적응하는 것이 아들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아들에게  "먹기 싫은 건 안 먹어도 되지만 플레이타임(=체육시간과 비슷하지만 자율성이 많이 부여되는 시간)에 놀려면 먹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라며 노력해 보라고 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표정만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플레이 타임을 위해서라도 아들은 학교의 점심시간에 적응해 나갔다. 이 또한 다행이다.


  이후로 학교생활에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적응해 나갔다. 그 시간 동안 아들은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성인도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하루에 6시간씩 모르는 말을 들어가며 수업을 듣고, 처음 보는 사람들과 지내야 한다면 정말 지옥일 텐데, 아들은 버텼다. 영어학습편은 조만간 올리기로 하고....


  6개월이 지난 지금 아들은 자신을 놀리던 친구들과 절친이 되었고, 특히 이성 친구들은 아들의 무슨 매력에 빠졌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생일파티에도 초대되어 우리도 다양한 부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주말에 친구들과 논다며 플레이 데이트를 하는 것인데, 정말 나처럼 영어가 짧으면 이 시간만큼은 지옥이지만, 아들을 위해 나는 아들의 친구 부모들과 만나서 시답지 않은 질문을 던지며 지내고 있다. 모두 아들 덕분(?)이다.


  재밌는 것은 아들이 답답하면 한국어를 꽤나 썼는지, 친구들이 간단한 인사나 네, 아니오와 같은 것은 우리가 영어로 물어봐도 답을 하고, 아들의 이름이 꽤나 어려운 편(성부터 이름까지 받침 투성이임)인데 한국사람과 같은 발음을 들려준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이름 발음하면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겠지만, 그냥 한국인이 친구 이름 부르는 수준으로 말한다.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아들에 따르면 자기 이름 틀리면 그 친구들 이름도 틀리게 불렀다고 한다. 왜 그렇게 불러라고 하면, 그럼 내 이름을 똑바로 불러줘라고 했다니 아들도 보통은 아닌 것 같다. 선생님 조차 아들의 이름을 똑바로 말한다. 눈감고 들으면 한국인이다.


  학기마다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있다. 마지막 상담에서 "학교에 오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것" 같다며, 앞으로도 즐겁게 다녔으면 한다고 했다. 담임선생님은 아들의 표정이나 눈빛에서 그런 모습이 보인다며 본인이 더 좋아했다. 그냥 칭찬에 익숙한 나라이려니 하고 넘어가려고 했지만, 눈치챘는지 객관적인 설명을 구구절절해주신다. 


  나와 아내의 고민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아들의 멘탈이 "순두부"라고 생각했었는데, 여기서 "쿠크다스"정도까지 올라온 것 같다. 너무 고마웠고 대견스러웠다. 이 낯선 곳에서의 경험이 아직은 어린 아들의 기억에 얼마나 남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시각에서는 무엇을 하든 살아남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모든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기대와 같은 것이라고 할까?


  여하튼 아들은 학교에 잘 적응했다고 판단한다. 나는 이런 아들이 기특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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