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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빨래터 이야기(스리랑카 Ep.4)

구김은 펴고 얼룩은 지우며, 삶을 다림질하는 고단한 하루

by 박모씨

시내를 오가며 꼭 한번 보고 싶었던 빨래터. 결국 나는 그곳을 찾았다.

빨래터 건너편에서 어정쩡하게 서서 그들의 손놀림을 지켜보고 있자니,

어느덧 50대쯤 되어 보이는 한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와서 한 번 들어와 보라"고 손짓하던 그 아저씨의 눈빛에 이끌려,

내가 걸음을 옮기기 전 이미 머릿속 계산은 끝나 있었다.

‘아마 나중에 돈을 달라고 하겠지.’

미리 마음을 다잡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저씨는 친절히 설명을 덧붙였다.

이 빨래는 어디에서 온 것이고, 저 빨래는 누구의 의뢰인지 하나하나 가르쳐 주었다.

하얗게 줄지어 널린 천들은 대부분 호텔의 침대 시트였다.

빨래터 역시 도시의 여러 호텔에서 의뢰를 받아

이 일을 지속하며 터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호텔에 몇 번 가봤어도

그곳에서 사용되는 침대 시트가 이렇게도 고단한 과정을 거쳐

깨끗해진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바람에 나부끼는 새하얀 시트를 바라보며

묘한 감정이 일었다.

빨래터에서 빨래를 돌에 내리치고 휘두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자들이었다.

물기를 머금어 무거워진 빨래를 처리하려면 힘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놀라운 점은, 이곳에서 전기를 사용하는 다리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숯불을 이용한 다리미로 구김을 펴고 있었다.


2평 남짓한 공간에서 하루 8시간을 쉼 없이 다리미질하는 한 아저씨가 있었다.

이곳에서 20년을 일해온 그는 다림질의 달인이었다.

그의 손끝에서 가지각색의 옷들이 새 옷처럼 태어나고 있었다.

그의 하루 소득은 1000루피, 한국 돈으로 약 5천 원 정도.

뜨거운 열기와 매캐한 숯 냄새 속에서 묵묵히 하루를 보내는 그의 모습이

묘하게도 경외감을 불러일으켰다.

빨래터 너머로는 높은 빌딩들과 호텔들, 화려한 아파트들이 보였다.

도시 한복판에 자리 잡은 어울리지 않는 이 빨래터는,

부와 빈이 한곳에 공존하는 스리랑카의 축소판 같았다.


아무리 고단해도 쉬지 않고 쏟아지는 빨래들,

아무리 힘껏 돌에 내리쳐도 빠지지 않는 오래된 얼룩들.

그럼에도 그들은 티를 없애고, 구김을 펴며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그 빨래터.

지금은 흔적조차 남지 않은 그곳이지만,

나는 그날의 기억을 통해 배운 것이 많았다.

낮은 곳에서만 보이는 진실이 있다는 것을.

그들의 노동은 단순히 빨래를 깨끗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그 자체로 묵은 때를 지우고, 구김진 삶을 펴내는 여정처럼 느껴졌다.

사라졌지만, 그 기억은 여전히 내 마음 어딘가에서 바람처럼 나부낀다.

스리랑카, 그곳의 빨래터가 내게 알려준 이야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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