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집 대신 넓은 길, 목줄 대신 자유로운 바람
늘 더운 스리랑카 거리 한복판.
개 한 마리가 몸을 비틀어 눕더니 무심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왜 그리 serious 해?"
마치 그런 말을 던지는 듯한 눈빛이다.
순간 움찔했다. 사실 요즘 이런저런 고민이 많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지금 이 길이 맞는 건지,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 지조차 헷갈릴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머릿속은 복잡해지고, 마음은 무거워진다.
그런데 길을 침대 삼은 녀석들을 보니 조금은 부럽기도 하다.
스리랑카는 주인이 없는 개들이 많은 곳이다.
오랫동안 이곳에 사셨던 분이 해준 이야기가 떠오른다.
"20년 전엔 개가 발에 차였어. 개를 치우고 다녀야 걸을 수 있었어."
믿기 어려운 얘기지만, 그만큼 길거리 개들이 넘쳐났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스리랑카는 개들에게 천국일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은 개들이 이 세상의 진정한 주인인지도 모른다.
좁은 집도, 목줄도, 정해진 식사 시간도 없는 대신,
길이 곧 집이 되고, 바람이 친구가 된다.
어떤 녀석은 아스팔트 한가운데 드러누워 세상을 등지고,
어떤 녀석은 배수로 한편에서 둥글게 몸을 말고 잠든다.
주유소든, 백화점 입구든, 병원이든, 학교든 어디든 누워 있다.
배고프면 적당한 냄새를 따라가고,
심심하면 고양이 친구들과 나란히 앉아 세상을 구경한다.
때로는 뒷골목 싸움에서 생긴 작은 흉터를 핥으며
인생의 쓴맛을 곱씹기도 한다.
길거리 한복판에 늘어진 채로 자고 있는 스리랑카 개들.
이런 풍경을 볼 때마다 나는 늘 깜짝 놀란다.
"헉, 저 아이 죽은 거야? 아니면 자는 거야? 아, 불쌍해… 죽었나 봐."
언뜻 보면 정말 숨이 멈춘 것처럼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배가 천천히 오르내리고,
귀가 살짝 꿈틀거리는 걸 보고서야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그렇게 죽은 듯이 자는 녀석들을 볼 때마다 놀라면서도, 매번 속고 만다. 다행이다.
결국 살아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어쩌면 그 평화로운 모습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는지도 모른다.
"걱정하지 마. 그냥 자다가 해 뜨면 일어나면 되는 거야."
"인생 뭐 있어? 까이꺼. 오늘 잘 자고, 내일 해 뜨면 땡큐~하면 되는 거지."
그래, 눈 뜨면 '생일'이고, 눈 감으면 '장례'가 되는 거겠지.
어디선가 개 한 마리가 하품을 하며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잘 살아야 한다는 압박도, 미래에 대한 불안도,
남들과 비교하며 조급해지는 마음도—
이 녀석들 앞에서는 그저 사치처럼 느껴진다.
길 위에서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끝없는 모험과도 같다.
오늘은 굶을 수도 있지만, 내일은 누군가가 던진 빵 한 조각을 얻을지도.
오늘은 비를 맞으며 떠돌지만, 내일은 따뜻한 양지바른 곳을 찾을 수도.
언제 어디서든 삶은 계속되고, 그 속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행복을 찾는다.
그러고 보니, 길 위의 개들이야말로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지혜로운 철학자들이 아닌가.
그들은 오늘을 살고, 바람을 맘껏, 몸껏 느끼며,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 녀석들을 부러워할까, 안쓰러워할까? 고민하는 순간,
한 녀석이 내게 윙크하듯 눈을 찡그리며 속을 긁어놓는 말을 한다..
"너도 가끔은 나처럼 살아봐. 왜, 겁나?"
응. 겁.나.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