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도난 사건과 툭툭이 추격전
스리랑카에서 총 12번의 이사를 한 나는 자와타 로드(Jawatta Rd)에 있는 아주 오래되고 3년 이상 사람이 살지 않았다는 집으로 이사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 집에 얽힌 좋지 않은 소문과 빈 집은 어떤 이유가 있다고 반대했지만,
우리는 "집은 사람이 들어와 살아야 집이 되는 거지!"라며 가족과 함께 이사를 했다.
누군가 살해당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나는 그저 옛날 얘기이거나 확인할 수 없는 뜬소문일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나 이 집에 들어오고 난 뒤,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연달아 벌어졌다.
이사한 지 몇 달 후 새벽, 도둑이 들었다.
집에 모기가 많아 각 방문에 모기장을 만들고 닫아 놓고 자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그날 새벽은 모기장 문이 열려 있었다. 그것도 각 방문 모기장이 모두 열려 있었던 것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한 번도 문을 열어 둔 적이 없었기에 더 섬뜩했다.
게다가 남편과 아들은 지방에 가 있었고, 집에는 나와 어린 딸만 있었다. 옆에서 자고 있는 딸을 조용히 깨웠다. “엄마 뒤에서 엄마 허리 꼭 잡고 있어. 아무 소리 내지 말고.” 딸이 무서워할까 봐 내 공포를 감추고 침착하게 말했지만, 심장은 쿵쾅거리며 터질 것만 같았다.
옆집 아저씨가 준 죽도가 생각났다. 그것을 양손에 꼭 쥐고 허리를 움켜 잡은 딸과 한 몸이 된 나는 화장실 문을 열자마자 외쳐댔다.
“야아 아아아아아아아아!” 내 평생 그렇게 큰 소리를 내본 적이 없었다.
소리를 질러 대면서 내 몸도, 목소리도 떨렸다. 무서웠다.
하지만 모든 방과 화장실을 뒤지며 허공에 죽도를 휘둘렀다.
그 소리에 도둑이 놀라 도망갔기를 바라며.
다행히 도둑은 이미 빠져나간 상태였고, 방바닥에는 어지럽게 남은 족적만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한동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지나가는 모든 낯선 사람이 도둑처럼 보였고, 집 앞을 지나치며 나를 쳐다보는, 우리 집 쪽을 쳐다보는 시선조차 의심스러웠다.
경찰서에서 진술서를 작성하던 중, 우리 동네가 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라진 물건은 별로 없었지만, 도둑이 딸아이 서랍에 오줌을 싸고 간 황당한 행동에 화가 났다.
딸의 책상 서랍에는 친구들과 주고받은 쪽지들로 차 있었고, 잠금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실로 서랍을 쉽게 열 수 없도록 동여매었다.
도둑은 그 서랍에 뭔가 귀중한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열어보니 ‘쪽지 더미’.
훔쳐 갈 물건이 없어서 그랬을까? 생각할수록 더 화가 났다. 딸에게는 귀중한 것이었었는데.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두 번째 도둑 사건은 한동안 잊지 못할 또 다른 일로 남았다. 친한 분이 자전거를 빌려주셨다. “정말 조심해야 돼요! 이건 비싼 거라서...” 그 당부가 어쩐지 무겁게 들렸다.
나는 자전거를 마당 한편에 두고 타볼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에서 온 손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일이 터졌다. 손님이 스리랑카 상황을 잘 모르고 대문을 살짝 열어둔 것이 문제였다.
삐쩍 마른 아저씨가 자전거를 끌고 나가고 있는 것을 본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가지 마! (얀네빠!)”라고 소리를 지르며 나는 맨발에 잠옷 차림으로 뛰쳐나갔다. 뛰어가면 그 아저씨를 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저씨는 자전거를 타고 여유 있게 탈탈거리며 골목을 내달렸다.
지나가는 툭툭이를 붙잡고 절박한 목소리로 외쳤다.
“도둑이! 도둑이! 자전거를 가져갔어요!”
툭툭이 기사는 놀라서 멈추더니 나를 태우고 그 자전거를 쫓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골목에 있던 동네 아저씨 두 명이 무슨 일이냐며 물었고, 상황을 듣자마자 그들도 툭툭이에 올라탔다. ‘즉석 추격 팀’이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의 추격은 마치 영화 같았다. 좁은 골목을 누비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이 자전거 본 적 있어?” " 이 자전거 봤어?"
마침내 한 아저씨가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갔어!”
하지만 도둑은 툭툭이가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길로 사라져 버렸다.
아쉬운 마음과 복잡한 심정을 안고 돌아가려던 순간, 경찰이 우리를 가로막았다.
왜! 왜? 왜! 왜~~ 경찰이 나를?? 화가 났다. 치솟았다.
맨발로 툭툭이에 올라탄 정신이 빠져버린 듯한 동양 여자와 허름한 차림의 스리랑카 남자들, 그리고 툭툭이 기사.
경찰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우리 넷 모두를 경찰서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경찰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이 사람들이 너를 납치하려 한 거야?”
나는 울분을 터뜨리며 설명했다.
“아니 아니! 도둑을 쫓고 있었을 뿐이야. 왜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아.. 정말…. 나는 그냥 이곳에서 좋은 일을 하고 있고, 하고 있는데, 왜 이런 일이 나한테 생기는 거야?” 진술서를 쓰며 화와 짜증과 어려운 상황으로 인한 분개의 눈물이 났다.
그때 경찰이 말했다. “너 뒤쪽을 한번 볼래?”
내가 고개를 돌리자, 내가 ‘추격 팀’으로 생각했던 스리랑카 아저씨 세 명이 얌전히 긴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죄지은 것도 없는 세 사람.
경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사람들도 당신을 돕고 있었던 거예요. 당신이 혼자 돕는다고 생각했어요? 스리랑카 사람도 당신을 돕고 있었잖아요.”
그 순간, 마음이 복잡해졌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자전거를 훔쳐 간 그 도둑을 떠올렸다.
내가 스리랑카에서 도움을 주고 있다고만 생각했지만, 사실 스리랑카도 나를 돕고 있었다는 것을.
스리랑카는 나를 실망시키는 도둑만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낯선 이의 외침에 툭툭이를 멈추고 도와준 기사님, 망설임 없이 동참해 준 동네 아저씨들처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나는 그동안 스리랑카를 너무 단편적으로만 바라봤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도둑도 있고, 돕고자 하는 사람도 있는 이곳. 내 편견을 말해 주는 경찰 아저씨도 있고.
나는 스리랑카를 더 자세히, 그리고 더 열린 마음으로 보고 싶어졌다.
내가 놓치고 있던 스리랑카의 따뜻함과 깊이를 알아가며, 이곳에서의 삶을 다시금 돌아보게 된 하루였다.
일주일 뒤,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내가 쓴 진술서를 잃어버렸으니 다시 와서 진술서를 쓰라고 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어이가 없었다. 헛웃음과 쓴웃음이 동시에 나왔다.
내가 아직 스리랑카를 이해하기 위해선 갈 길이 멀구나라고 생각했다.
두 달 뒤, 경찰서에서 연락이 또 왔다. 도둑을 잡았다고.
하지만 자전거를 가져간 날 자전거를 팔고 마약을 샀다는 것. 도둑을 보겠냐고 해서, 안 보겠다고 했다.
그날 밤, 나는 한참을 생각했다.
어쩌면 도둑도, 어수룩한 경찰도 스리랑카라는 복잡하고 따뜻한 퍼즐의 한 조각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잘잘못을 명확히 나누려는 내 시선이 얼마나 좁았는지를 깨달았다.
스리랑카는 단순히 내가 도와줘야 할 곳이 아니었다. 이곳은 나를 더 크고 깊게 바라보게 만드는 장소였다. 사람들 속에서 느껴지는 따뜻함, 그리고 그들의 진심 어린 손길은 내가 진정 이 땅에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무엇을 잃었는지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내가 얻은 것들, 그리고 이 땅에서 발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억하며, 나의 시선으로만 세상을 재단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언제 깨질지는 모를지언정)
이곳은 내게 스리랑카라는 이름으로 주어진 커다란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