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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자인마케팅연구소 Oct 23. 2017

디자인 하나만 하면 안되겠니?(3)

디자인마케팅연구소를 차리고 운영하는 이유

아팠다.

과거를 회상한다것이 누구에겐 소소한 추억이지만 나는 그때로 돌아가면 그 당시의 아픔을 다시금 느낀다.

마음이 아프거나 몸이 아플땐 그림을 그린다. 감사를 하고 싶어 감을 그렸다.


화이트(생리대말고) 유영석의 "7년간의 사랑'이라는 노래가 있다.


7년을 만났죠 아무도 우리가 
이렇게 쉽게 이별 할줄은 몰랐죠 
그래도 우리는 헤어져 버렸죠 
긴 시간 쌓아왔던 기억을 남긴채 

우린 어쩜 너무 어린 나이에 
서로를 만나 기댔는지 몰라 
변해가는 우리 모습들을 감당하기 어려웠는지도 
이별하면 아프다고 하던데 그런것도 느낄수가 없었죠 
그저 그냥 그런가봐 하며 담담했는데 

울었죠 우우우 시간이 가면서 내게 준 
아쉬움에 그리움에 내뜻과는 다른 나의 맘을 보면서 
처음엔 친구로 다음에는 연인 사이로 
헤어지면 가까스로 친구 사이라는 그말 정말 맞는데 

그후로 삼년을 보내는 동안에도 
가끔씩 서로에게 연락을 했었죠 

다른 한사람을 만나 또다시 
사랑하게 되었으면서도 난 
슬플때면 항상 전활 걸어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고 
너도 좋은 사람 만나야 된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면서 
아직 나를 좋아하나 괜히 돌려 말했죠 

알아요 우우우 서로 가장 순수했었던 
그때 그런 사랑 다시 할 수 없다는 걸 
추억으로 남을뿐 
가끔씩 차가운 그앨 느낄때도 있어요 
하지만 이제는 아무 것도 요구할수 없다는걸 잘알죠 

나 이제 결혼해 그애의 말 듣고 
한참을 아무말도 할수가 없었죠 
그리고 울었죠 그애 마지막 말 
사랑해 듣고 싶던 그 한마디 때문에 


이 앨범은 지금도 가끔 꺼내서 듣는다. 

디자이너에게 곁에서 지적 영감과 사랑을 가르쳐준 건축학개론을 찍던 7년을 아프게 헤어졌다. 

그 후 1년간 난 다시 퇴행의 기간을 보낸다.

디자인도 안한다며 아는 선배가 같이 다녀보겠냐며 부른 영화쪽의 세계

장소섭외를 하는 일을 맡았는데 그 일 외에도 사진기를 들고다니는 날 유심히 지켜본 카메라 감독님이 이런저런 일을 시켰다. 나중에 안사실이었지만  영화 촬영스케치 컷으로 (메이드영상)쓰셨다고 했다.

행사 기획을 하기도 했다 무슨무슨 행사를 정부를 상대로 제안을 넣어 따내면 그 예산을 가지고 꾸리는 일

장소는 어디서 누구를 부르고 몇명을 어떻게 모으고 음향이며 무대며 홍보며...

병원마케팅일을 하기도 했다.  외과였는데 나중에는 가짜 교통사고 환자로 돈을 버는 통에 따로 마케팅이 필요없을 정도가 되어 스스로 그만두었다.


(주)일조각은 의학전문을 주로 내는 출판사인데 그곳에 사촌언니가 편집디자이너로 있었다.

내가 방황하는 것 같다고 느꼈는지 어느날은 내게 전화를 해서는 마포의 한 출력실에 딸려있는 편집실에서 디자이너를 뽑는데 면접보겠냐는 전화였다.  책...편집  안한지 오래됬는데...

불규칙한 생활에 술에 담배에 몸이 수척해진 난 그 전화가 고마운 손길이었다.




마포 구수동에 위치한 문형사라는 출력실은 마포의 이름있는 출판사들의 출력대행을 해주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거래하는 출판사의 외주 업무를 할 디자이너를 뽑는 것이었고 나는 뽑혔다.

(주)현암사의 단행본을 맨 처음으로 맡았다.

유리천장통과하기

책을 편집하다 보면 작가의 글의 눈에 들어온다.

이 책은 여성이 사회에서 얼마나 성공하기 힘든지에 관한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외국의 몇몇의 여성의 사례를 넣어놓은 책이었다.


(주)일조각의 의학서적을 편집했다.

스트레스와 정신신체의학

이 책을 편집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정신이 피폐되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그 외에도 성경바이블시리즈 표지디자인부터 많은 외주업무를 즐겁게 했다.

여기서 나는 지금의 신랑군을 만나게 되었다.


이후 역시 의학전문출판사 (주)군자출판사 편집부에서 디자인업무를 수행하다가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으며 프리랜서인지 양육인지 구분이 안가는 시절을 보냈다.

이렇게 일중독인 내가 아이에게 가만히 고요히 행복하게 집중하며 행복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집에 들어 앉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기저기서 일이 들어 오기 시작했다.


2007년 10월 
디자인마케팅연구소- 디자인이 세상을 바꾼다 첫 계약을 강남이익훈어학원 스타강사 두분을 온라인마케팅을 해주는 일로 계약서를 썼다.
3년간 그 두분을 안보이는 곳에서 네이버 지식인으로 블로거로 카페로 입소문 마케팅을 했다.

이후 나를 따라하는 YBM이니 시사...각종 영어 토익강사들의 유사 마케팅이 나오기 시작할무렵 내가 먼저 계약자인 갑에게 계약종료를 권했다.  

2007년 7월부터 역시 3년간 진행해 온 탑척추교정지압원도 내가 먼저 계약종료를 권한 경우다.

직장을 다니며 간단한 아르바이트 개념이 아니었던 이 두 경험은 내게 온라인마케팅의 네이버의 로직을 연구하게 하고 #아이보스커뮤니티 를 알게 했다.

온갖 온라인 마케팅의 고수들이 모여있는 그 곳

왼편에 있는 작업지시서는 의상디자인을 하는 이들의 작지 라 불리는 걸 내가 하고 있다.
이러다 건축디자인 인테리어디자인 자동차디자인....무기디자인 까지 할 기세다.

이왕 투잡을 쓰리잡을 하려면 나와 '갑'이 함께 클수 있는 일을 도모하라. 그리고 가치있는 일이면 더 좋다.


2007년 브랜드유니폼 유니세븐 런칭
신촌 스시앤쿡 BI 개발 / 간판디자인
육문선생 
연어발
홍실 호두과자 패키지 디자인
피카디리면세점 모바일 기획 및 디자인
피카디리면세점 CI 로고를 현재 디자인마케팅연구소 CI로 쓴다.


2015년 종로3가 피카디리극장자리에 면세점이 크게 들어온다고 내게 함께 일하자는 연락이 왔다.

기쁜 마음에 달려가 대표이사 면접도 보고 여러 이사들과도 인사를 했다

회사 CIP를 해달라고 해서 한달을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어서 보여줬다.

모바일 사이트도 만들었다.

그런데 그들은 내게 디자인 아이디어를 갈취하고자 했을뿐 고용계약서도 하물며 만들어서 보내주었던 명함값도 거저 받으려고 했던 사람들이었으며 매달 내는 호스팅비도 내지 않아 2016년 어느날은 호스팅업체에서 내게 연락이 오기까지 했다.


그래서 그 귀한 피 땀 눈물의 산실인 피카디리의 로고를 우리 연구소의 로고로 쓰게된 이유다.


유니폼회사 유니베이직코리아에서 8년

(주)더비엠 생활용품 식품 화장품 유통회사 MD 14개월

(주)가림토 - LG전자 미디어유통 MD - LG공식인증총판온라인대리점 

(주)씨앤아이컴퍼니 - LG전자 렌탈 MD / 기획/ 디자인/ 마케팅  (현재)


편집디자인으로 시작해서 지금 온라인 엠디가 되기까지 다양한 일을 경험하며 어느 작은 구멍가게 마져 마케팅이 빠진 디자인은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음을 알았고 제 아무리 브랜드가 있어도 역시 마케팅이 빠지면 아무도 클릭을 하지 않는 다는 사실과 잘나가는 회사, 강사, 병원, 정치인 마져도 온라인마케팅을 원하는 시대에 왔다.


디자인마케팅연구소- 디자인이 세상을 바꾼다  

페이스북에서 운영중인 나의 페이지이자 여러분의 페이지다.

이런 마음을 가진 디자이너들이 그리고 만들면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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