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너의 카스트가 뭐야?
“너의 카스트가 뭐야?” 이 질문은 어떤 인도인에게도 무례하게 들릴 수 있는 질문이다. 같은 인도인끼리 이 질문을 한다면 걸러야 할 사람이고, 외국인이라면 단순한 궁금증에서 묻는 것이라 설명해 주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카스트’라는 단어는 인도인에게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한다. 나에게는 그 단어를 들으면 피가 떠오른다. 그만큼 끔찍한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인도 부모에게 태어난 아이들은 이름을 짓기 전부터 종교나 카스트가 정해진다. 부모의 카스트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 그것을 믿든 말든 상관없이 모두가 하나씩 가지고 있고 심지어 학교에도 카스트 증명서 제출해야 한다. 학교에서 카스트 증명서를 요구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혜택을 받지 못했던 낮은 카스트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려는 의도라 그건 이해할만한 법이다.
요즘은 학교나 회사에서 직접적으로 “너 카스트가 뭐야?”라고 묻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어떤 지역은 여전히 이름 뒤에 카스트를 붙여서 알 수 있게 한다. 다행히 내 지역은 이제 그런 문화가 사라지고 아버지 이름만 붙인다.
그렇지만 결혼 문제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부모들은 연애결혼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내 아이는 내 말을 잘 들어야 한다. 내 아이는 내가 정한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 “연애는 인성 문제 있는 사람이 하는 거야” 라는 생각을 심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도에서 연애는 기적 같은 일이고, 그 기적을 놓치지 않으려고 대부분의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진다. 그렇지만 부모의 허락을 받기까지는 피눈물을 흘려야 한다. 결국 부모의 반대를 피해 도망가 결혼하는 사람들도 있다.
부모들은 가족과 친척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카스트에 집착한다. 그래서 연애가 들통나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 왜 이렇게 우리 집을 부끄럽게 하는 거야?” “뭐가 급해서 벌써 남자를 찾았어?” “그 카스트 사람이랑 결혼할 거면 우리는 다 같이 자살한다” 와 같은 협박을 한다.
심한 경우 명예 살인까지 저지른다. 딸이나 아들이 다른 카스트와 결혼하려 하면, 그 배우자와 심지어 자식까지 죽여버린다.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5순위 카스트인데, 네가 감히 7순위 카스트로 태어나 우리 아이와 결혼하려 해?” 이런 미친 논리가 아직도 존재한다. 최근에도 IT 회사에 다니던 남성이 여자 쪽 가족에게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다. 이럴 때는 교육도 돈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시골 마을에서는 낮은 카스트 사람들에게 이상한 차별이 존재한다. 어떤 경우는 높은 카스트 집에서 일을 하다 물을 달라고 하면 그들에게만 따로 쓰는 컵이 있고, 밥은 주더라도 집 안에서는 먹을 수 없게 한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별종이라도 되는 듯 대하는 것이다. 이런 추악한 사고방식은 아직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교육받은 세대가 많아지면서 도시 생활에서 이런 차별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결혼 문제만큼은 여전히 쉽지 않다.
결국 인도인에게 카스트는 수많은 아픈 사건들을 기억하게 하는 단어다. 그런 사람들이 외국에 와서 또다시 “너 카스트가 뭐야?”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도 나는 카스트로만 인식되는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질문만큼은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