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k 록 Dec 12. 2017

맛집의 정의

맛집 =? 

'맛있다'는 주관적인 감각이다. 고향과 식습관 등 개인 특성에 따른 요소부터 언제 어떻게 어떤 분위기에서 먹는지에 따른 그 날의 요소까지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가 '맛있다'에 개입한다. 그런데 이처럼 갈대 같은 맛의 차이를 우리는 점점 보편화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맛집은 의미가 없을까? 더 근본적으로 맛집이란 뭘까?


미디어에 따른 맛집의 보편화


음식 사진을 위한 카메라 앱 푸디 Foodie


요즘에는 SNS로 쉽게 사진과 글을 전달할 수 있다. 그 중심에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있다. 사진과 글을 올리고 해시태그를 달아서 전 세계 사람들과 소통한다. 이제는 영상까지 자유롭게 올리며 단편적인 사진이 아닌 전반적인 분위기도 알 수 있다. 


작년 여름에 방콕으로 한 달간 즉흥적인 여행을 떠났었다. 갑작스럽게 결정하고 간 여행이라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이 떠났고 편견 속의 태국만이 이미지로 흐릿하게 있을 뿐이었다. 도착하고 며칠 뒤, 나는 서울 신사동에서 느끼던 분위기 속에서 브런치를 먹고 있었다. #프랑스빵. 브런치를 먹으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냐고? "아니, 내가 태국까지 와서 이런 프랑스 빵을 먹고 있다니! 얼른 똠양꿍을 찾아봐야겠어" 아니었다, "헐, 태국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정말 태국 같지 않아. 대박" 이거였다. 이렇게 적고 보니 부끄럽지만 사실이었다. 나는 뭘 기대한 걸까. 물론 태국에서 먹은 가장 맛있는 음식을 꼽자면 노점상 아저씨가 즉석으로 만들어준 새우 팟타이다. 그러나 나는 유럽 어딘가에 있을 법한 그리고 이미 서울에서 익숙한 분위기와 비슷하다 못해 그곳이라고 착각이 드는 방콕 카페를 좋아하게 되었다. SNS에 더 잘 올리기 위해서 카메라 앱들이 줄지어 나오고 특히 음식 사진을 위한 카메라 앱인 푸디의 인기를 보면 SNS의 강력한 힘은 부정할 수 없다. 이 힘을 바탕으로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새로운 방법 또한 하나 더 생겼다. 요리가 아닌 사진 보정으로 음식을 더 맛있게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쯤 되면 문화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TV 프로그램에서는 어떠한가? VJ 특공대를 시작으로 요즘에는 맛있는 음식만을 찾아 떠나 여행하는 예능, 미식에 관해 진지하게 토론하는 예능, 핫한 맛집을 찾아다니며 예쁘게 먹는 예능 등 먹는 방송은 다양하다. 어딜 가든 TV에 나오지 않은 맛집을 찾기가 더 어렵다. 프랑스 타이어 회사에서 시작한 최고의 식당을 찾는 미슐랭 가이드나 한국 최초의 레스토랑 평가서인 블루리본 서베이를 통해서도 식당은 평가되고 우리는 그걸 기준 삼아 미식을 향유한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편

이러한 맛있는 음식에 대한 배경을 바탕으로 개인들도 맛집을 즐기는 문화를 형성했다. 더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개인 SNS와 앱을 이용하고 후기를 올린다. 맛집에는 줄이 즐비하고 매스컴을 타지 못한 식당은 한산한 풍경을 직접 본적이 적지 않다. 같은 위치에 있고 비슷한 맛을 내는 곳이라도 SNS에서 '핫'한지에 따라 선택을 받기도 하고 파리를 날리기도 한다. 


SNS에서 유명한 맛집을 가는 게 뭐가 문제가 될까?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 맛있다고 검증된 식당에서 분위기 잡고 싶을 수도 있고 일상이라도 한 끼를 소중하게 맛없는 음식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을 수도 있다. 그때 SNS에서 이미 소문나고 검증된 식당을 선택하면 '실패'할 확률이 낮아지니 소비자들은 선택할 뿐이다. 문제는 그걸 이용해서 일시적인 수익을 내는데 급급한 사람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맛보다는 돈, 서비스보다도 돈, 분위기는 개나 주고 나는 돈을 외치는 사람들은 그 돈을 이용해 광고를 내고 식당을 홍보한다. 물론 광고를 내어 식당을 홍보하는 건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요즘 네이버 검색어에 'OO맛집'이라고 검색하면 진짜 맛집이 나오지 않는 건 모두 아는 사실 아닌가? 그래서 그 뒤로는 '~오빠랑'이라는 검색어가 진짜 맛집을 가린다고 유행했고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니 이제는 '존맛탱'정도는 써야 한다는데 그것도 모를 일이다. 



선택이 넓어지면 보편적인 것보다 내가 원하는 걸 고를 수 있다.

그렇다면 보편화되는 맛집 추천은 의미가 없을까? 앞서 말했듯이 그것이 광고가 되고 아무런 주관 없이 남들이 맛있다고 해서 소비하는 것은 다양성을 해치게 된다. 선택받지 못한 식당들은 점점 없어지고 인터넷 세상에서 자본으로 자리를 선점한 식당들이 실제 거리를 채우다 보면 우리는 그때부터 능동적인 선택이 아닌 능동적으로 보이는 선택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의 주관이 들어간 음식을 추구하고 이를 선의로 나누는 행동이 모이면 그것이 건강한 식문화가 된다. 다양한 개개인의 개성만큼 다양한 식당들이 존재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이는 대기업은 따라 할 수 없다. 5개의 선택지가 있으면 틀리고 싶지 않아서 가장 정답에 가까운 선택을 하려 하지만 500개의 선택지가 있으면 그때부터는 문제가 달라진다. 500개 중에 자신이 선택한 것을 자신의 논리로 설명한 의미가 중요하게 된다. 맛집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특정 미디어에서 큰 목소리로 '치즈가 올라간 갈비가 짱이지!'라고 말한다면 시장은 그에 맞게 그 음식을 많이 팔고 싶어 할 것이고 소비자들도 그걸 맛보고 싶어 줄을 서고 '치즈가 올라간 갈비'가 유명하다는 식당을 찾으러 다닐 것이다. '치즈가 올라간 갈비' 말고도 먹거리는 많고 그걸 팔지 않는 식당은 더 많지만 보이지 않는다. 우리 눈 앞에 선택지가 줄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비자들이 각자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선택지는 다양해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맛집 검색 어플이 다양하게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은 반길 일이다. 어플 안에서 광고로 도배가 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좀 더 다양한 공간에서 여러 의견을 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맛집 검색 어플인 망고플레이트와 식신


내가 생각하는 맛집이란

나 또한 미디어에 나온 핫한 맛집만 찾아다니던 시절이 있었고 맛보다는 사진에 예쁘게 담기는 음식을 추구하던 시절도 있었다. 한 번쯤 들어본 식당이 아니면 맛이 없을까 봐 들어가기가 망설여질 때도 있었고 반대로 한 번이라도 들어본 식당이면 주저 없이 들어가 본 경험도 있다. 미디어에 나온 줄 서 먹는 맛집이라고 해서 항상 기대만큼 만족스러운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름만 맛집이겠지 하는 불신을 가지고 피할 필요 또한 없다. 진부한 말이지만 정답은 없다. 그런데 그 선택이 외부가 아닌 '나'에게 좀 더 귀를 기울인 결과라면 어떨까? 조금 맛이 없었지만 내가 고른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다면 혹은 그냥 끌려서라는 다소 즉흥적이지만 내 기분에 맞춘 선택이라면 나만의 맛집을 고르는 데이터가 쌓이는 것이 아닐까? 


맛집을 고르는 순간부터 음식에 대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분위기를 상상하고 메뉴를 기대하고 그곳에서 대화를 나눌 시간에 대한 설렘. 그걸 오로지 나의 선택에 의해 주도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나는 맛집의 의미를 충분히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누구나 가는 맛집이 나에게도 맛집이 될 수 있고 로컬만 아는 골목집 식당이 나에게는 맞지 않는 공간일 수 있다. 그 날의 분위기에 따라, 나의 기분에 따라 또는 그냥.


보버라운지


보버라운지는 명동에 위치한 SNS에서 핫한 맛집이다. 나는 2017년 상반기 best 메뉴를 꼽는다면 보버라운지에서 먹은 페스토 크림 치킨 캐서롤을 고르겠다. 이곳이 사람들이 맛있다는 곳이라서, SNS에서 인기가 많은 곳이라서가 아니다. 방문 당시 며칠 동안 한식과 일식만 먹었고 11시 30분에 오픈하는데 아침도 먹지 않고 11시에 도착해서 30분을 기다렸으며 명동에 위치해서 매우 시끌벅적할 줄 알았는데 매우 조용하고 서비스가 좋은 공간이라는 반전이 있어 놀란 와중에 따뜻한 한 입을 했기 때문이다. 


당신의 맛집은 어딘가요?

매거진의 이전글 빵, 그 이상의 의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