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k 록 Dec 25. 2017

비교는 나쁜 것일까?

부러워해도 된다

아버지는 말하셨지

비교는 친구를 적으로 만든다.


초등학교 시절에 TV에서 나와 비슷한 또래인 아이들이 나와서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나에 비해 몇 개 국어를 하고 교내 상으로 행복한 나에 비해 예술 부분에서 뛰어난 두각을 나타낸다고 하면 나는 감탄을 하면서도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어린 시절의 성공은 일반적인 성공보다 더 위대해 보였으며 내가 절대 해내지 못한 성취에 대한 동경과 질투였다. 그런 나의 행동과는 반대로 부모님은 비교하는 삶은 자신의 삶을 갉아먹는다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나는 비교를 억누르고 의식적으로 남과 비교를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어린 나는 부모님의 말씀을 깊고 지혜롭게 깨닫지 못하고 단편적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비교는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부정적인 단어로 다가왔다. 비교를 하는 건 시기와 질투를 하는 것과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부단히 비교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면 나는 시험을 보면 다른 친구들의 성적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아예 정보를 차단했다. 누구가의 점수가 사실 궁금하지 않았지만 비교를 막기 위해 미리 선수를 친 행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게 물어보지 않는데 누군가가 나의 점수를 궁금해하면 나는 매우 불편했다. 상대방이 비교를 하려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교를 억지로 부정하다 보니 비교를 하려 하는 나 자신이 감지될 때면 나 자신을 부정하게 되었다. 비교는 아버지 말씀대로 정말 친구를 적으로 만드는 것일까? 


비교하는 건 어쩌면 본능일 수 있다.

내가 비교를 하지 않으려고 정보를 차단하고 무시하는 행동은 두려움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비교를 받아들이기보다 차단하면서 내면에서는 자존감이 낮아졌다. 그런데 비교하려는 나의 찌질함을 겉으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비교하지 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를 비교라는 테두리에 갇히게 만들었다. 나는 비교로 인해 나 자신을 적으로 만들었다.


우리가 비교를 하는 이유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안철수보다 옆 집 철수한테 질투를 느낀다. (언어유희니 가볍게 해석해주시라!) 그러니 이러한 본능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필요하다. 그렇다고 비교하는 건 본능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한다면 나의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비교가 될 수 있고 그런 비교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나는 나를 부정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며칠 전에 친구와 함께 점심을 먹다가 취업 준비생인 우리는 자연스럽게 취업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년간 같은 직업에 꾸준히 도전하고 있는 친구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 정말 열심히 살았거든. 방학 때마다 남들 놀 때, 학원 다니면서 자격증 따고 토익 점수 올리고 중국어도 6급이야. 근데 왜 자꾸 불합격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내가 보아도 친구는 참 열심히 산 것 같았다. 그 말을 듣고 있으니 나는 친구에 비해 열심히 살지 않았다고 느껴졌다. 


비교를 잘 쓰기 위해서는 

나를 알고 기준이 내가 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도 나도 둘 다 불안하고 두려운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친구는 남들 놀 때라는 남들의 시간이 기준이 되었고 나는 그 말을 하는 친구의 노력이 기준이 되었다. 나만의 속도가 있다는 걸 인정하고 나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중요하다. 남들이 놀 때 내가 한 활동이 아니라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위해서 노력했다고 생각한다면 억울함은 좀 덜하지 않을까. 친구가 노력한 것에 비해 나는 뭘 했지 하는 생각보다는 그 시간을 채운 나의 노력을 부정하지 않고 친구의 노력을 인정해주면 그 사이 불안함이 사라지지 않을까. 실제로 나는 나의 성장의 속도를 이해하고 나니 불안함이 줄었다. 



비교를 할 수 있다는 사실과 나 자신의 길이 있다는 생각이 들자 두려움 또한 줄어들었다. 잘못된 비교를 하다 보면 질투가 되고 그것이 나를 두려움에 갇히게 만들었다. 내가 그들보다 못하면 어떡하지? 나보다 먼저 시작한 사람들보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재능이 있는 사람을 무슨 수로 이길까? 비교를 부정하면서도 스스로 던졌던 질문은 모두 잘못된 비교로 스스로 자존감을 바닥까지 긁고 있었다. 


삽질이라도 좋다

나의 목표를 위한 삽질은 그냥 삽질이 아니다. 목표를 위한 행동이 된다. 목표가 없다면 적어도 남들이 다 삽질을 하니까 나는 남들을 삽질에서 만큼은 이기도 싶어라는 의지의 삽질이라면 삽질은 또 하나의 목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삽질하고 있는 남과 비교하면서 무작정 깊게 파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내 무덤을 파는 격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 너무 깊게 파서 방향을 잃고 헤어 나올 수도 없는 상태에 이른다. 삽으로 흙을 파던지 금을 파던지는 나의 선택이다. 물론 삽질도 선택이다. 그러나 그 선택의 주체가 나인지는 곰곰이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남들은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데 나는 왜 자꾸 골골 거릴까에서 시작된 비교에 대한 생각이 글을 쓰게 만들었다. 비교를 하며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나만의 속도를 알고 나를 받아들이면 성장할 수 있지만 나를 부정하면 두려움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비교해도 괜찮다. 부러워해도 괜찮다. 그러한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야 괜찮다. 그러나 비교로 인해 친구를 적으로 만드는 실수는 피하자. 모든 건 사용하기 나름이다. 칼도 잘 사용하면 유용한 도구이지만 잘못 사용하면 흉기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비교를 잘 사용하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럽 바보인 내가 중국에 빠진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