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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 록 Apr 15. 2019

1.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그런데...

사는 게 여행이 될 수 있을까?

여행과 일상의 관계
Don't go there. Live there.
ⓒ 에어비앤비 광고 영상 

내가 한때 푹 빠졌던 에어비앤비의 광고 문구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현지에서 사는 로망을 품고 여행을 했을 거다. 언제부터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어린 시절부터 내 마음 한편에는 항상 새로운 문화와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틈틈이 기회를 노려왔다. 그렇게 기회가 닿을 때마다 외국인 친구들과 어울리고 그들의 문화를 접하고 즐겼다. 졸업 논문을 쓰고는 돈은 없지만 시간은 많은 반백수가 되어 여행에 푹 빠져 살았다. 성인이 한참 지나서야 처음 아시아를 벗어나 홀로 떠난 유럽 여행은 나의 오랜 꿈을 실현하는 벅찬 순간이었다. 사랑에 빠져버린 유럽을 연거푸 두 번 여행했고 중동과 동남아 그리고 아시아 국가에 짧게는 2주, 길게는 7달 동안 살다가 지난 10월에 한국에 들어왔다. 다들 말렸던 이란 여행도,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인도 여행도 막상 가려고 마음먹은 순간에는 그곳에서 접할 새로운 문화와 새롭게 만날 인연에 대한 기대만 남았다. 그리고 여행은 항상 내 기대 이상이었다. 여행으로 내 삶에 없던 그들의 삶이 점차 내게 스며들었다. 

 

여행이랑 사는 건 천지 차이야.

여행이 아니라 외국에서 실제로 살아보고 싶다는 말을 흘리면 여행이랑 사는 거랑은 천지차이라는 답변을 자주 듣곤 한다. 막상 가보면 네 환상과 다를 거라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나 자신도 해외에 산다는 건 확신이 서지 않아서 여행하는 삶을 이어가는 동안 여행하는 삶이 만족스러웠고 반대로 한국에 있는 순간은 여행을 위해 잠시 견뎌야 하는 순간이 되어버렸다. 지난 4년간 내 욕심대로 나는 그렇게 살았다. 마지막으로 중국에서 7개월을 찐하게 지낸 뒤 인도와 태국을 거쳐 10월에 한국에 돌아오자 이제는 더 이상 여행을 하고 싶지 않았다. 실제로 막상 살아보니 오래가지 않아 환상은 와장창 깨져버렸고 잦은 비행과 자주 변하는 환경에 몸과 마음이 지쳐버렸다. 물론 그곳에 있을 때는 더할 나위 없었지만 이제는 한 곳에 정착하고 싶었고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여행은 뒤로 하고 이제 그들의 말처럼 한국에서 내 나이에 맞는 자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여행만큼 내 마음을 흔드는 일자리가 생겨 돌아오자마자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인턴으로 일을 시작하고 베를린에 오기 전까지 나는 6개월 간 세 개의 다른 회사를 다녔다. 회사는 생각보다 즐거운 곳이었다. 일 자체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잘 맞았고 하나씩 배우는 재미가 있었다. 드라마 미생의 영향으로 막연히 회색빛으로 떠올렸던 회사 생활이 생각보다 컬러풀해서 살짝 놀라기도 했다.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몇 명의 좋은 사람들을 만나 감사한 마음도 있다. 확실히 회사가 싫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회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빠져있는 결핍이 느껴져 답답했다. 회사에서 견디면 안정적이고 인정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더 이상 떠돌아다니며 눈에 보이지도 않는 진정 원하는 걸 찾는 걸 그만둘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나이와 상황에 맞는 현실이 눈 앞에서 실현되고 있었지만 어디든 떠나고 싶은 마음이 다시금 고개를 쳐들어 외면하기가 어려웠다. 현실과 마음 사이에 큰 간극이 생겼고 퇴사를 결심했다. 퇴사를 하고 한동안 우울한 마음에 몸까지 병들었고 심각한 건 아니지만 여러 군데 검사를 받아야 할 만큼 상황이 좋지는 않았다. 주변에는 계속 아프다고 말하기가 미안해서 그냥 대화 자체를 피하게 되었다. 그때쯤 나는 떠나기로 했다. 해외에서 사는 건 여행처럼 마냥 달콤하지 않다는 걸 알지만 쓴 맛이라도 직접 깨물어 먹어보고 싶어서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살기 위해 베를린에 왔다.
비행기에서 설레지 않은 건 처음이다.

여행이 좋은 이유는 여행은 기본적으로 소비 활동이라서 그렇다. 삶이 힘든 이유는 생산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둘을 합치면 내가 지금 느끼는 결핍을 조금이라도 채울 수 있을까? 아, 아니라도 좋다! 여행지에서 삶을 살아보기로 한다. 여러 후보군을 고려한 후에 1년간 독일에서 거주하며 일을 할 수 있는 비자를 받았다. 여행도 좋지만 이제 나는 짧게 머물렀다 떠나는 여행객보다 옆에 있는 얽히고설킨 그들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처음에는 영어권 나라로만 생각했다가 첫사랑이었던 유럽을 잊을 수가 없었다. 만약 일을 구하지 못하면 돌아와야 하는데 그럴 거면 내가 좋아하고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한 도시로 가고 싶었다. 요가도 하고 채식 음식도 많이 먹기를 기대하며 베를린으로 결정했다. 나는 나의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아는 이 하나 없는 베를린으로 왔다. 

베를린에 도착한 날 


베를린으로 떠나기로 결정하고 한 달 동안은 안정된 일을 하며 친구들을 만났다. 친구들은 곧 독일에 가는 나를 위해 하나라도 더 주려고 했고 나는 금방 돌아올지도 몰라 받기가 민망하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꼭 이 말을 덧붙였다. 

그냥 짧은 여행이 될 수도 있어.

한국에서 한 달 동안 규칙적으로 일하고 친구들을 만나며 관계를 다져나가는 게 썩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독한 마음으로 가기보다 얼른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지고 있었다. 그래서 변명처럼 그냥 짧은 여행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말을 반복했다. 사실은 돌아오고 싶지 않지만 독일에서 날 받아줄지는 모르는 일이니까 비겁한 변명에 숨어버렸다. 이렇게 떠나기 싫었던 한국은 독일은 처음이다. 그래도 나는 지금 베를린에 삶을 살아보기 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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