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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 록 May 03. 2019

5. 베를린에서 방을 구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운명은 그냥 뚝 떨어지나요?

베를린에서 3주 동안 방을 구하면서 인생을 배웠다. 고작 3주 동안? 고작 방 한 칸 구하면서? 뭐 대단한 거 했다고 인생까지 운운해?라고 할 수도 있겠고 나와 다르게 베를린에서 운이 좋아 어렵지 않게 좋은 조건의 방을 금방 구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오로지 내 상황과 경험에서 보았을 때 나는 쉽지 않았다. 연고지 없는 베를린에서 독일어 한마디 못하고 심지어 베를린 지리도 몰라 이리저리 부딪히며 내 몸 하나 뉘일 방을 구한다는 건 나에게 꽤나 큰 깨달음을 주었다. 

이 많은 집들 중에 내 방 하나 없다니, 서글프다

운명도 노오력이다 

갈 곳이 없어서 호스텔을 전전하든 길거리에 나 앉든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운명처럼 방을 얻었다. 수많은 메시지를 보내고 인터뷰를 보고 거절당하고 거절하면서 베를린에서 방은 점점 멀어져 가는 듯 보였다. 좋은 조건의 방을 기다리면서 괜찮은 조건의 방을 포기하고 아쉬워하기도 했고 세입자로 맞이해줄 것 같던 주인한테 마지막에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받았을 때는 모든 걸 포기하고 서울로 돌아가고 싶기만 했다. 아무리 각박한 서울살이지만 거기에는 가족과 따뜻한 방이 있었는데 여기는 차가운 땅바닥뿐이었다. 하루에 두세 군데씩 방문하면서 끼니를 거르다 저녁에 돌아와 폭식을 하기 일쑤였고 길을 잃어 기차에서만 세 시간씩 보내다 보니 길까지 못 찾는 나를 자책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찾은 방은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 점 투성이었다. 위치에 비해 다소 비싼 월세, 음식 냄새가 배어있는 주방, 거실도 없는 좁은 공간, 고장 난 창문 등 뜯어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위치와 가격이 괜찮은 집이 올라왔고 나는 또다시 그곳으로 인터뷰를 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처럼 꼬이고 꼬여 갈 수 없게 되었고 그제야 나는 마지막 남은 기회를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운명처럼 다가온 마지막 방을 잡았고 들어왔다. 이 방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운명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꽤나 긍정적인 느낌이었다. 운명 같은 사랑처럼! 그런데 운명이 꼭 좋은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지 않은 점이 있어도 운명이니까 받아들여야 한다는 억압적인 느낌이 새롭게 생겼다. 다만 운명도 과거의 사건들이 모여 나에게 주어진 현실인 것 같아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에 집중하기로 했다. 운명을 받아들이고, 좋은 인연으로 만들기로! 


손해 보는 걸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 

운명처럼 방을 고르고 계약을 하는데 독일어로 된 계약서만 내 앞에 놓였다. 나는 독일어를 한마디도 모르는데 그게 자랑은 아니니까 설명해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독일에서 대학교를 나오고 그때부터 일을 하며 독일에 쭉 거주한 인도네시아 부부가 주인이었는데 남편이 모든 걸 관리하는지 남편이 계약을 진행했다. 영어가 서툰 남편에 비해 부인이 영어를 잘해서 중간중간 통역을 해주었다. 아무래도 나는 위치와 크기로 보아 내가 손해 보는 월세를 내고 있다고 생각해서 이 집의 전체 월세를 물어보았다. 남편이 당황하며 밝힐 의무는 없다고 한다. 그래, 밝힐 의무는 없지! 월세에 포함된 목록을 말해주며 부인이 방송 수신료 이야기를 꺼냈는데 나는 그게 뭔지 몰라서 바보같이 라디오를 안 듣는다고 했다. 찝찝한 기분에 자기 전에 찾아보니 독일은 의무적으로 방송 수신료를 매달 약 2만 원 정도 내야 한다. 이걸 어물쩡 넘어갔던 남편이 못 미더웠지만 별도리가 없었다. 손해 봐도 여기 말고는 갈 곳이 없는 걸 어떡하랴!


끝까지 해봐야 한다 

그래도 방송 수신료까지 따로 내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도 다 월세에 포함되어 있다고 했고 나는 월세가 다소 높았기 때문에 방송 수신료까지 내면 시내에 방을 구할 수 있을 만한 금액이었다. 마음이 쫄보라 밤에 잠을 설치다 오늘 오전 5시에 편치 않은 마음으로 일어났다. 남편도 빨리 일어나는 편인지 부엌에서 마주쳤다. 보자마자 계약서에 관한 사항을 물어봤더니 처음에는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더니 내가 다 포함되어 있는 줄 알았다며 친구는 다 포함되어있던데라고 말을 흘리니 자신이 부담하겠다고 한다. 그렇게 항목을 포함시켜줄 것을 요구했고 독일어로 된 계약서를 뮌헨에 거주하는 독일 친구에게 보여줬다. 그녀가 몇 가지 항목이 나에게 불리하다며 수정하라고 했고 무려 7개 항목을 수정해야 했다. 그렇게 부부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남편은 일을 가 있으니 집에 있는 부인이 나에게 와서 계약서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서로 입장을 밝히며 대화를 한 후 3개 항목을 수정해 준다는 약속을 받았다. 부인은 계속해서 남편은 변경하길 원치 않는다며 변경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을 거라고 했다. 나는 앞서 계약서 없이 거래를 했다가 나에게 불리한 상황을 몇 번 맞닥뜨렸었고 아무리 사람이 좋아 보여도 계약서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꼭 수정해줄 것을 부탁했다. 부인은 남편한테 상의해보겠다고 하였고 몇 시간이 지난 후 수정해주겠다고 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그래도 아직 계약서가 수정되지 않았으니 내일 오전에 변경된 계약서를 확인하고서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하고 들어갔던 단기 방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보증금과 나머지 금액이 남아있어 마음 한편이 편치 않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사실은 항상 긴장되고 불편하다. 그렇지만 불편하고 힘들다고 해서 포기하면 안 된다. 나의 권리니까! 

이런 집에는 누가 살까

이래서 다들 집 산다 

과거에는 내 집 마련의 꿈 따위는 없었다. 내 집이 없어도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집 없는 설움을 느끼면서 먹고 싶은 거 먹지 않고 사고 싶은 거 꾹꾹 참아가며 내 집 마련을 했던 이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주거에 관해서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3주간 베를린에서 집을 구하다 보니 어느 도시에서든 내 집이 있다면 난 거기 살련다. 그러려면 직업과 비자가 필요하니 그곳이 바로 내가 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전한 내 공간이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마음에 온전히 들지 않는 방이라도 일단 구하고 나니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다. 오히려 단점보다는 장점을 생각하게 되고 방을 꾸며서 나만의 공간으로 만들 생각을 하면서 점차 마음에 두려고 한다. 노동절 아침에 다른 방을 한 군데 보고 나서 갈 곳을 잃었다가 오후에 방을 계약하면서 마음이 편해져 노동절 축제도 다녀왔다. 만약 방을 구하지 못한 상태라면 축제 따위가 웬 말이냐. 

첫 술에 배부르랴!

처음에는 완벽한 방을 구하기 위해 지금보다 좋은 조건의 집도 몇 번이나 거절을 했었는데 나의 욕심 때문에 결국 좋은 기회를 놓친 셈이 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찰떡같은 조건을 찾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했으니 긍정적으로 바라보자, 내 방이여! 


음식과 사람이 넘치던 베를린 노동절 축제
활기찬 노동절 축제 
꽃도 사둘 수 있다니 감격스럽다

이사를 하고 나서야 글이 써지고 운동을 다시 갈 마음이 생긴다. 처음 며칠은 비건 음식을 탐방하고 요가 수업을 듣기도 했지만 아주 짧은 기간이었다. 방을 찾기 시작하면서 조급한 마음과 잦은 이동을 포함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기 때문에 글도 영상도 요가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삶의 질이 급속도록 하락하기 시작했는데 이제야 다시 내 일상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물건을 사둘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감사하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입장이라 계속 두고 써야 하는 조미료나 식재료를 사기 어려웠다. 그래도 가방에는 파스타면과 빵과 함께 먹을 발사믹 식초와 올리브유를 항상 지니고 다녔는데 생각보다 불편했다. 자전거도 사서 이제 곧 오는 여름에는 바람을 느끼며 달려야지. 이게 모두 내 방에 나의 터전을 잡아서 가능한 일이 아닌가. 아아, 감격스러워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좋은 점을 찾을 수밖에 없다

집을 구하는 기간 동안 여러 힘든 순간이 있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좋은 점이 더 많았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나쁜 점만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좋은 점을 찾을 수 있다. 이곳저곳 인터뷰를 다니면서 베를린 AB 구역은 거진 다 돌아보았다. 때로는 새로운 동네도 발견하고 어떤 동네가 어느 나라 음식을 주로 팔고 어떠란 분위기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내 취향이 가득한 동네를 종종 발견하면서 나중에 와봐야겠다 살아보고 싶다 같은 즐거운 마음도 생겼다. 또한 인터뷰를 하면서 다양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나와 함께 경쟁했던 터키 이민자 친구도 있었고 함께 살자고 했던 인도인 친구들, 내가 좋지만 다른 친구가 너무 안타깝다며 그를 세입자로 들여야 한다던 이란 친구 등등 그들과 대화하는 순간은 색다른 경험이었고 재미였다. 


그렇게 난 방에 드러눕는다 

노동절 축제를 가서 모든 베를린 사람들이 모인 것 같은 광경을 신나게 구경하고 방으로 돌아오니 그저 감사했다. 아직 해결해야 할 사소한 문제들이 남았지만 앞으로 6개월간 갈 곳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아, 앞으로 내 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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