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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 록 May 07. 2019

6. 춤과 발레 그리고 임산부 요가

베를린에서 욕망을 마주하다


춤과 발레는 내 오랜 로망이었다


춤을 동경하게 된 기억은 어린 시절 우연히 본 영화에서 시작된다. 춤을 잘 추는 테일러와 노라가 너무 멋있어 보였고 나 또한 그들처럼 되고 싶어 꿈을 품게 되었다. 음악에 몸을 맡기고 흐느적거리듯 무심하지만 멋들어지게 움직이는 그들처럼 춤을 잘 추고 싶었다.


몇 번이고 혼자 보았는데 그들을 따라 추는 내 모습에 누구와도 같이 볼 수 없었다.

춤에 대한 로망을 실현하기 위한 첫 시도는 고등학교 1학년 CA 시간이었다. 친구와 함께 들어간 방송댄스 반에 들어갔고 연습하면 나도 리듬쯤은 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시작했다. 기대를 너무 했던 걸까, 결국 타고난 몸치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하고 학기는 끝이 났다. 그렇게 춤과의 연은 점점 멀어져 갔고 마음의 문은 닫히고 있었다. 그 이후 체육 시간도 없어진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대학교에 입학했다. 신입생은 반강제로 학과 응원단에 들어가야 했는데 질풍가도 노래에 맞춘 안무를 보고 나는 본능적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우여곡절 끝에 들어갔지만 몸치라는 사실이 이미 각인된 내 몸이 따라줄 리 없었다. 인내심이 많기로 유명한 단장이었던 선배가 한숨 쉬는 걸 보고 나는 춤과 또 멀어졌다. 춤과 거리를 유지한 채 내 안의 욕망을 적당히 외면하며 잘 살고 있었는데 욕망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개를 내밀었다. 내 안에 품고 있던 춤을 잘 추고 싶다는 본능이 꿈틀이며 되살아나 독일을 떠나오기 한 달 전 덜컥 돈을 지불하고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첫 수업을 마치고 욕망을 고이 접었다. 다시 춤을 몸으로 배우는 일이 생길지 모르겠다.  

발레

춤뿐만이랴! 어린 시절에는 거의 모든 예체능 분야에 발을 담가본 이력이 있기 때문에 발레도 빼먹지 않고 배웠었다. 개구리 동작을 하던 발레 수업 시간이 선명하게 그려지는 걸 보니 춤보다는 곧잘 따라갔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여러 운동을 배우면서 결국 태권도가 가장 잘 맞았고 재미까지 있었기 때문에 발레는 짧게 배우고 끝이 났다.

어린 시절에는 발레복을 입는다는 것 자체가 설레었다


짧은 배움 이후로 오히려 내가 하지 못한 발레에 대한 동경의 마음을 더하여 공연을 직접 보러 가기도 하고 영상으로 보며 어떻게 저렇게 힘껏 그런데 가볍게 동작을 하는지 경이롭기까지 했다. 스텝업에서 춤과 발레의 콜라보 공연 장면이 나오는데 춤과 동시에 발레에 대한 로망도 마음 한편에 품고 호시탐탐 배울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하지만 서울에서 발레 수업을 듣기에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우선순위에서 항상 밀려났었다.


ⓒ https://www.kcballet.org/

이제 베를린에도 왔겠다, 욕망을 하나둘씩 꺼내기 시작했다. 발레 한 번 배워보자! 마음을 잡고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핫한 동네로 발레를 배우러 갔다. 다양한 체형을 가진 15명 정도의 남녀노소가 모였다. 나만 발레 슈즈 대신 양말을 신었다. 선생님이 앞에서 독일어로 동작을 설명하며 한 동작씩 시범을 보여주자 사람들은 곧잘 따라 한다. 독일어도 동작도 모두 모르지만 열심히 눈알을 굴려가며 따라 하는데 어라? 지루해서 하품이 나온다. 지루함을 느끼기도 전에 온 몸이 지루하다고 말하고 있어서 살짝 당황스럽다. 분명 동작이 너무 쉬워서 지루한 건 아니다. 오히려 생소한 근육을 사용해서 동작을 하기 조차 어렵다. 본래 따라 하지 못하는 운동을 할 때는 지루하기보다 힘이 들기 마련인데 신기하게도 발레 수업은 상당히 지루하다. 1시간 반 수업 중 15분이 지났을 때는 이미 하품을 한 후 눈물을 몇 번이나 흘렸는지! 발을 계속 양 옆으로 틀고 발가락을 들고 있어야 해서 발목이 아프기까지 하다. 고작 15분 만에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일렁인다. 1초마다 나가고 싶은 마음을 붙잡아 준 건 다름 아닌 동작을 따라 할 때 틀어주는 클래식 음악이었다. 동작보다 흘러나오는 클래식에 홀려 그래, 한 동작만 참고 몰래 화장실 가는 척하면서 도망가자! 하고 다짐한다. 선생님의 1분 시범 동작이 끝나면 우리는 길어야 2-3분 정도 따라 했는데 한 동작을 하고 나서도 고작 5분 정도 흘렀다는 사실이 피곤하기만 했다. 그러다 문득 <잘하려고 완벽하게 선생님을 따라 하려고 하니까 재미가 없었던 게 아닐까?>  사람들이 선생님을 보고 열심히 따라 하는 걸 보고 나는 그들을 보고 그냥 열심히만 따라 했다. 웃기면 웃긴대로 발목이 아파 못 참겠으면 할 수 있는 만큼만 따라 했다. 지금 베를린에서 발레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게 행복한 추억이 될 것 같았다. 속으로 많은 생각을 하며 나름 긍정적으로 버티고 있었는데 1시간이 마의 시간이었다. 아직도 30분이 남았다니!


1시간 45분간의 발레 수업이 끝이 났다, 드디어!
요가

하루는 베를린에서 임산부 요가 수업을 듣고 왔다. 베를린에 도착한 첫 주에 우연히 들어간 요가원이 마음에 들어서 바로 등록하고 수업을 들었었는데 그게 마지막 수업이었고 방을 구하고 나서야 두 번째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앞으로 남은 날이 얼마 되지 않아서 열심히 가야 한다. 한번 갈아타면 갈 곳을 무려 세 번이나 갈아타면서 돌고 돌아 도착했다. 이름을 말하고 수업을 들어가는데 선생님께서 웃으며 나에게 다가온다. 나는 독일어를 아예 못해서 잘 보고 따라 하겠다고 했고 선생님은 문제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는 임신했느냐고 물어본다. 응? 잘못 들었나? 임신했냐고? 아니! 바로 대답했지만 이내 속으로 요즘 빵, 과자, 케이크 그리고 감자튀김까지 너무 자주 많이 먹어서 배가 나와서 그러나 싶어서 임신한 게 아니고 똥배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이 참 사려 깊다고 생각했다. 요가 자격증을 공부할 때도 임산부를 위한 대체 동작과 예외 동작이 많았다. 그런데 선생님이 내가 똥배라고 하는 걸 듣고는 웃으면서 이 수업은 임산부를 위한 요가 수업이라고 한다. 휴우, 다행이다! 그 정도 똥배는 아니었나 보다. 다음 수업은 언제 시작하느냐고 물으니 15분 후에 시작한다고 한다. 쿨하게 그럼, 그거 들을게, 안녕! 하고 가려는데 그건 엄마와 아기가 함께하는 수업이라고 한다. 똥배는 있어도 아기는 없으니 그냥 임산부 수업을 들어야겠다. 그렇게 조용하고 부드러운 임산부 수업을 한 시간 반 동안 듣고 왔다.


요가 수업을 마치면 과일과 차가 준비되어 있다.


선생님은 수업이 끝나자 나에게 지루하지 않았냐고 물어보았다.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잔잔하게 할 수 있었던 요가가 편했고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어 좋았다.


욕망의 공통점
다 잘할 필요는 없는데, 다 잘해야만 할 것 같아


어릴 시절부터 춤과 발레에는 로망을 품어왔고 지금도 완전히 포기하지는 못했는지 가끔 기웃거리고 있다. 조금 달라진 점은 요가 자격증을 따고 나서 몸으로 하는 건 다 잘해야 할 것 같은 일종의 압박이 생겼다는 거다. 다른 종목이라도 몸 쓰는 건 다 같은 범주 안에 있는 것 같아서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따라 하지 못할 때는 요즘 요가 수련을 소홀히 한 나 스스로를 자책하고 타고난 신체능력을 탓하기도 한다. 어디 가서는 요가 자격증을 딴 사실을 말하기 부끄럽기도 하다. 야구선수가 축구를 하는 것과 같이 다른 종목이라도 구기 종목이니까 다 잘할 거라고 기대하는 것과 같이 나는 스스로 기대하고 실망하는 걸 반복하고 있었다.


춤과 발레는 불편했는데
요가는 어떤 수업도 편하다!


춤 선생님도 발레 선생님도 모두 좋은 분이셨다. 선생님과 관계없이 춤은 부담스럽고 발레는 지루했다. 반면에 요가는 독일어로 하든 중국어로 하든 힘든 수업이든 초급 수업이든 하고 나면 마음까지 개운해진다. 춤과 발레 그리고 요가에서 볼 수 있었던 욕망의 공통점은 <몸을 가볍고 재미있게 움직이고 싶다>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러면 꼭 춤과 발레에 집착할 필요가 있을까? 재미있게 움직이는 방법이 요가라는 걸 알았으면 요가에 집중하면 되지 않을까? 가벼운 마음이 든다. 욕망을 똑바로 바라보니 난 춤 자체에 욕망이 있다가 보다는 몸을 자유롭게 쓰는 거에 욕망이 있었다. 모든 걸 잘하고 싶었던 건 욕심이었다. 이제 그만 춤과 발레에 대한 욕심을 놔주려고 한다. 욕심으로 가득한 욕망은 좌절로 변한다는 걸 알았다. 좌절하지 말고 욕망을 이용해서 본질의 목표로 한 발 더 다가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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