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얼간이
세 얼간이가 인기리에 개봉한 지 한참이 지나서야 보게 되었다. 배달음식을 앞에 두고 가볍게 틀어놓은 영화였는데 한 장면이 마음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세 얼간이 중 인생을 즐기면서도 공부를 잘하는 친구는 매번 낙제하는 친구한테 뼈 때리는 말을 한다. <너는 미래를 두려워하는 겁쟁이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어떻게 오늘을 살 수 있겠어?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지> 그래서 낙제를 할 수밖에 없는 거라 말했다. 가난한 가족은 모두 이 친구한테 의지하며 가난에서 구제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미래에 대한 책임과 압박이 없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걱정을 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 없이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느냐 말이다. 이 장면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나도 친구 말에 뼈를 맞았기 때문이다.
All is well 다 잘될 거야!
4년을 훌쩍 지나 대학 졸업을 한 현재 돌이켜보면 우습지만 입학 당시 내 목표는 조기졸업이었다. 조기졸업은 내게 두려움의 발현이었다. 당시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항상 나를 채우고 있었고 두려움을 억지로 떼어내기 위해 더 빨리 가고 싶었다. 두려움이 따라올 새도 없이 빨리 가면 빨리 성취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러면 내 마음이 안정될 것만 같았다. 내 마음은 누구보다 빠른데 내 몸은 두려움에 이미 정복되어 버린 듯 속도를 낼 수 없었다. 빠르게 가려는 마음과 다르게 나는 무거운 사슬이라도 지닌 듯 매우 느리게 가고 있을 뿐이다. 지금도 여전히 지나고 있는 이 터널 같은 과정에서 나는 조급하고 좌절하고 힘들다. <앞으로 대체 뭐해 먹고살지, 어떻게 살지,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다가 정작 해야 할 일을 못했고 그런 시간을 보낸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자존감이 곤두박질쳤다. 끝에는 <내가 하고 싶은걸 찾는다는 건 허왕된 생각이 아닐까, 살면서 너무 큰 걸 바라는 건 아닐까, 적당히 타협해야 하는데 왜 그게 안 될까>라며 나약한 자신을 탓하고 그러다가 다시 현실적이지만 이상적인 방법을 찾아 헤매고 헤맨다. 탈출할 수 없는 블랙홀 속으로 더 깊숙이 빨려 들어가는 하루하루에 지쳐간다.
무작정 존버할 필요는 없다
지쳐가는 하루하루를 시간이 약이라며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달콤한 말을 믿고 존버 정신을 외치며 버텼다. 한때 내 인생관은 존나게 버티기였으니까. 존버 정신의 기간이 남들보다 짧다는 게 내가 문제라고 생각한 문제였다. 나는 왜 남들 다 하는데 못 버틸까, 다들 잘 버티며 사는데 나는 왜 못 사는 건지 나를 자꾸만 괴롭혔다. 시작부터가 잘못된 생각이었다. 나는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며 남들을 열심히 따라가고 있었다. 남들 다 한다고 나도 해야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다들 그렇게 사는지 안 사는지도 사실 모르는 일이다. 제일 중요한 <나>가 빠져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존버했던 것들이 나에게 안 맞을 뿐이고 나는 다른 걸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내가 알아줘야 했다. 세 얼간이에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오늘을 살지 못하는 친구도 인생에서 자신보다 남들을 더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친구의 오늘이 없었던 건 아닐까? 누나의 지참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책임, 시험에 대한 압박과 취업에 대한 두려움에 눈이 가려진 채 무작정 버티려고만 했지 정작 중요한 걸 하지 못한다. 이미 물들어버려 알아채지 못한 자신의 상황을 다른 친구가 말해주고 나서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듯 나도 내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외부에서 알려주었지만 어쨌거나 알을 깨고 나와야 하는 건 내가 되어야만 한다.
눈이 부시게 오늘을 살기 위한 세 가지 행동
잠을 자기 전에 명상을 한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밤에 눈을 감기 직전까지 나는 핸드폰을 쳐다본다. 딱히 할 게 있다기보다 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온라인 세계를 둥둥 떠다닌다. 넷플릭스를 뒤적이고 인스타그램 사진을 구경하면 세상 편안하다. 생각할 필요 없이 재미를 볼 수 있으니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러한 상태가 썩 좋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나 또한 알고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종종 명상을 했고 가족들과 함께하고 싶어서 몇 번 시도해본 적이 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인도에서 명상을 꾸준히 수행할 때도 자주 졸았는데 태국에서 명상 수업을 듣고서야 조금은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명상이 잘 되지 않는 이유는 현재보다 과거나 미래에 머물고 있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베를린에 와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여러 좋지 않은 상황이 겹치면서 명상을 다시 찾게 되었다. 처음에는 명상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내일 당장 어디에서 살아야 할지 불안정한 상황과 처음 방을 빌려준 한국 사람에게 받지 못한 돈을 생각하면 불안하기만 했다. 가져온 돈도 떨어져 가는데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게 바로 같은 한국인한테 돈을 떼어 먹히는 일을 내가 당한 건가 하는 의심과 불안으로 마음이 엉망이 되어갔고 머리는 어지러웠다. SNS나 영상을 보며 현실을 잊어 보려고도 했지만 오히려 남들과 비교하며 더 불안해졌다. 차라리 용기를 내서 현실을 마주하고자 명상을 매일 하기 시작했다. 명상을 한다고 해서 마법처럼 현실이 짠하고 변하는 건 아니었다. 명상을 해도 여전히 캐리어 두 개를 끌고 배낭을 멘 채 이리저리 방을 구해야 했고 기다리는 연락은 오지 않았다. 편안하게 넷플릭스를 볼 때보다 명상을 하면 더 힘들고 더 아프고 괴로웠다. 현실을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명상을 통해 통제할 수 없는 미래를 지나치게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내가 보였다. 그런 나는 두려움을 잊기 위해 지나치게 시간을 허비하고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었다. 명상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현재를 더 뚜렷하게 마주할 수 있게 되었고 비로소 현재를 살 용기가 생겼다. 시간이 지난다고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과 내가 노력하는 만큼 내가 원하는 결과를 항상 얻을 수 없다는 걸 어렵게 받아들이는 동시에 하루하루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며 그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 나를 지키는 행동을 실천한다
내가 사소하게 실천한 행동 하나하나가 모여 나를 지켜줄 거라고 믿는다. 명상으로 나의 두려움을 알아채고 현재를 바라보았으니 이제 그 두려움에 다가서기 위해 나만의 태도를 지키며 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스스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향해 시간과 돈을 사용하고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살기로 한다.
구체적인 예로
환경을 위한 채식주의
비건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가지고 있었지만 비건이 되는 길은 멀고 험난해 보였다. 지난 글에서도 적었듯이 완벽하지 않으려는 연습을 해야 한다. (https://brunch.co.kr/@srk1630/187) 처음부터 엄격한 비건이 되려고 하기보다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작은 일부터 실천하려 한다. 매일 먹는 식단에서 한 끼라도 의식적으로 채식 식단으로 직접 준비하며 채식한끼 멤버로서도 활동하고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노력을 하고 있다.
태국 비건 커리와 직접 요리한 두부 채소 구이 항상 지니고 다니는 텀블러와 장 볼 때 사용하는 가방
관심 있는 분야 공부하고 책 읽기
사실 관심 있는 분야는 차고 넘치지만 공부한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당장 돈 벌 궁리를 하느냐 취업 정보를 알아보고 유망한 직업을 알아보는데 시간을 보냈다. 책을 제대로 읽은 지 꽤 되어 책을 좋아하던 시절은 먼 과거가 되어버렸다. 찔끔이며 읽고는 있지만 읽을 때도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걱정으로 집중하지 못했다. 미래 유망 분야나 돈 잘 벌 수 있는 직업을 찾는 걸 그만두고 내가 진정 재미있어하는 분야에 시간을 투자하기로 한다.
남을 돕는 마음을 지니고 매일 감사 일기를 적는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남을 돕고 살아야 한다고 배운다. 그런데 살다 보니 진정 남을 돕고 사는 건 이상적인 일이 되어버리고 각자 먹고살기 바쁜 현실에 마주한다. 나는 그랬다. 바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남을 도울 여유가 없었다는 변명만 늘어놓았고 <남의 큰 상처보다 제 손톱 밑 가시가 더 아프다>라는 말로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남이 더 힘들다고 해서 내가 덜 힘들지 않듯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남을 도와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남을 돕는 일이 결국에는 나 자신을 돕는 일이기 때문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야 하는데 이기적인 마음 아니냐고?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내가 편안하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내 주변 사람들 또한 편안하고 행복해야 한다. 남을 돕는마음을 갖고 있으면 다른 이가 나에게 해주는 배려 또한 알아채게 된다. 감사 일기를 적으며 하루하루 채우고 있다.
베를린 생활은 영원하지 않다
베를린에 일 년짜리 비자를 받아 살아보겠다고 서울의 보증금도 되지 않는 전재산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도착하자마자 방을 구하면서 일자리도 함께 구하기 시작했다. 직접 돌아다니며 지원한 카페와 식당에서는 독일어를 못해서 번번이 거절을 당했고 온라인으로 지원한 회사에서는 답장조차 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당연한 결과지만 점차 불안해졌다. 이렇게 계속 떨어지다가 한국에 돌아가게 될까 조급해졌다. 그럴수록 밖에서 먹는 한 끼가 부담스러지고 운동을 갈 여유 또한 없어졌다. 그러다가 명상을 하고 하루하루 충실히 집중하려고 노력하면서 관점이 바뀌기 시작했다. 내가 진정 원하는 방향을 찾아가는 인생의 과정 위에 있다고 생각하니 짧게 끝나버릴까 봐 안절부절 조급한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하고 싶은 거 다 해!
베를린에 오기 전에는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막상 오니 서울에서 살 때와 똑같이 살고 있었다. 그렇게 살려고 온 베를린이 아닌데. 그래서 베를린에 오기 전에 하고 싶었던 걸 다 하기로 했다. 운동도 다양하게 체험해보고 색다른 채식 음식도 자주 시도해보고 요리도 시도해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떠나야 할 베를린이라면 미래 걱정하며 우울하게 보냈던 날보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즐겁게 보낸 날을 기억하고 싶으니까!
감정 독립하기
서울에서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독립하기가 어려웠다. 가족과 함께 살고 있어 외롭기보다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이 간절할 정도였고 항상 친구들과 만나며 알게 모르게 감정을 털어놓고 위로받는데 익숙해졌다. 베를린에 와서 메신저로 항상 친구와 가족과 대화를 할 수 있지만 서울에서 가볍게 주고받던 상황과는 달랐다. 유럽에 있는 나와 한국에 있는 친구와 가족은 시차만큼 거리가 존재했다. 내 상황을 모두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딱히 다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감정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 서서히 감정을 독립하고 더 성숙해지고 싶다. 내 감정을 내가 온전히 알아채고 조절하여야 비로소 군더더기 없는 따뜻하고 여유로운 감정을 사람들과 나눌 수 있을 테니까. 베를린에서 서울로 돌아갔을 때는 더 강한 사람이고 싶다.
눈이 부셨던 베를린의 어느 날
드라마는 보지 않았지만 연기 대상을 받은 김혜자 님의 수상소감을 영상으로 보았다. 눈물이 났다. 베를린에서 오늘을 살고자 하는 노력이 눈이 부신 내 인생 중 일부가 될 것 같다. 그래서 제목을 이렇게 적어보았다. 모두 눈이 부시게 오늘을 살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