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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 록 Mar 15. 2016

라디오 들으며 Toledo 걷기

후회하더라도 해보기 

가기 싫은데, 귀찮은데!

어제 푹 쉬었던 터라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고 늦장을 부리며 출발했다. 버스 터미널에 이른 시각에 도착해서도 썩 내지 않는 출발이었다. Toledo는 마드리드에서 가까운 유명한 관광지인데 청개구리인지 나는 오히려 유명해서 가고 싶지가 않았다. 정확히는 이제 혼자 여행이 지쳐 유명한 관광지를 혼자 가기 싫었다. 그래도 한 번 가보기로 한 곳이라 발걸음을 옮겼다.



Toledo 톨레도 가는 법

버스 터미널은 3층으로 되어있다. 나는 Toledo 톨레도 행 버스를 타기 위해 맨 윗 층까지 올라갔다. 버스 기사 아저씨께 말씀드리니 기계에서 표를 사야 한다고 하여 기계 앞에 섰고 내 앞에는 노부부와 관광객 두 명이 있었다. 기계는 두 개였는데 한 개는 이미 고장이 나있었다. 노부부가 예매에 힘겹게 성공하고 버스 시간이 코 앞으로 다가와서 나는 빨리 사야 한다는 시간적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앞에 관광객 두 명도 급한 듯 동동거리며 기계를 재촉했지만 실패했다. 나도 실패했다. 9시 30분 출발인 버스를 그렇게 놓쳤다. 톨레도 행 버스는 30분마다 있기 때문에 사실 분할 필요도 없었는데 괜히 분했다.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 예매를 하고 나니 던킨 도넛에서 시음을 하라며 달달한 커피를 주었다.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오길 잘했어, 톨레도!

그렇게 계획보다 30분 늦은 10시 버스를 타고 Toledo 톨레도에 도착하였다. 버스에서 내리자 모든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향하였다. 나는 그 틈에 섞여 흘러갔다. 생각 없이 따라가다 보니 커다란 문이 나왔다. 성곽으로 들어가는 문인 듯 싶었다. 그때부터 나는 무리와 멀어져 골목골목을 다니기 시작했다.

톨레도라는 도시가 있는지도 모르고 갔기 때문에 역사적인 배경이나 건물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그동안 역사에 집착해서 오히려 이번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보고 싶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톨레도를 느끼고 올 생각이었다. 걷다 보니 노래를 듣고 싶었다. 다운로드해놓은 곡이 없어 미리 다운로드하여 놓았던 라디오를 들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즐겨 듣던 라디오라 친근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도 나왔다. 영화 속에 온 기분이 들었다. 진정 행복했다.

듣고 싶은 라디오를 듣고 보고 싶은 걸 내 마음대로 보니 내 세계에 들어간 느낌이었다. 기분에 취해 거리를 거닐며 톨레도에서 유명한 것 같은 칼과 도자기를 보았다. 도자기가 예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관광 도시답게 여러 상점들이 많아서 한걸음 한걸음 떼기가 어려웠다. 열심히 구경하다가 상점들이 있는 골목에서 조금 떨어져 나와 다른 골목으로 들어갔는데 내가 듣고 있는 라디오 소리보다 더 큰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잠시 라디오를 멈추고 피아노 소리를 들었다. 햇살이 드는 고요한 골목에서 피아노 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 열심히 피아노 연습을 하던 생각이 나서 가만히 듣고 있었다. 누가 치는지는 모르지만 막연히 어린아이가 친다고 생각한 것 같다. 나의 어릴 적이 생각나면서. 

파라도르로 가는 길

톨레도에 대한 사전 조사는커녕 검색 조차 한번 하지 않았기 때문에 파라도르라는 곳이 있는지도 몰랐다. 점심도 먹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들어간 식당에서 와이파이를 쓸 수 있어 그제야 잠시 톨레도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71번 버스를 타면 15분 남짓한 거리에 지성과 이보영이 결혼 화보를 찍은 파라도르라는 곳이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가고 싶지 않다는 내 말에 친구는 꼭 가라고 재촉했고 나는 71번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를 타니 의외로 한국 사람이 많았다. 우리는 모두 파라도르에서 함께 내려 같은 곳으로 향했다. 아무도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았지만 서로 한국 사람인 걸 알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어색했다. 

호텔에서 본 톨레도 전경

파라도르에서 어느 호텔을 통해 들어가면 톨레도의 전경을 볼 수 있는 테라스가 나온다. 유난히 맑은 날이라 멀리까지 한눈에 모두 보였다. 라식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사진에는 다 담기지 않아 아쉽다.


구경하고 있었더니 한국인 아주머니 두 분이 커피를 사주신다고 하셨다. 나는 냉큼 앉았다. 알고 보니 자매라고 하셨다. 나도 여동생과 오고 싶은 마음이 들어 너무 부러웠다. 우리는 한 시간에 한 대밖에 없는 버스를 타기 위해 함께 나갔다. 버스를 타고 내려오는 길에 눈 앞에 펼쳐진 관경에 다시 한번 감탄하였다. 이 모든 게 다 보이는 커다란 창이 있는 호텔에서 하룻밤 묵고 싶었다. 버스에서 내려오는 길에 정말 멋있는 다리를 발견하였지만 빠르게 지나쳤다. 나는 아쉬운 마음에 아주머니들께 인사를 하고 버스에서 먼저 내렸다. 

다리를 향해 걸으면서 다시 라디오를 들었다. 다리와 강이 너무 아름다웠다. 아름답다는 표현 말고 다른 표현을 쓰고 싶은데 달리 할 말이 없다. 정말 우와 소리밖에 안 나왔다 나는.

다리를 건너고 다시 돌아가려고 하니 길을 잃었다. 주변에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걷던 중 톨레도에서 칼과 도자기 외에 유명하다는 과자인 Mazapan 마지팬을 발견하였다. 얼핏 수녀들이 만드는 Mazapan 마지팬이 있다고 들은 게 생각났다. 나는 이끌리듯 들어가 Mazapan 마지팬을 구입하였다. 

아픈 다리가 이제 충분히 걸었다는 걸 알려주어 버스에 타고 싶었다. 그래서 길을 찾으려는데 나는 타고난 길치가 맞다. 다시 길을 잃고 정처 없이 헤매었다. 그리고 그냥 헤매다 가기로 결심하고 길 찾는 걸 포기했다. 그랬더니 새로운 곳들이 나타났다. 매우 긴 에스칼레이터를 타니 높은 곳에 올라가 파라도르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하지만 다른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오늘 이 곳에 귀찮다고 혼자라고 오지 않았다면 이런 장면을 볼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도전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기가 막히게도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라디오에서는 영화 주토피아에 대한 설명을 하며 <실패하지 않기 위해 도전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 나왔다. 나는 순간 너무 당황했다. 뼈 때리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내 삶에서는 커다란 실패가 별로 없었다. 그건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실패가 두려워 내가 할만한 것만 해왔기 때문이다. 


톨레도에서 집으로

집에 돌아와서 늦은 스페인 저녁을 먹었다. 내가 배고프다고 하니 T는 수프를 그릇 가득 떠주며 더 먹으라고 하였다. 나는 T가 해준 음식들이 하나같이 너무 맛있었다. 수프도 담백하고 맛있고 그 위에 올려진 바삭하지만 수프 속에서 눅눅해진 크루 통도 잘 어울렸다. 바삭한 식빵에 치즈를 올려먹고 후무스를 발라먹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채식 햄버거도 먹었는데 한국에서 꼭 해볼 생각이다. 


T에게 톨레도에서 구입한 도자기와 수녀 상점 다음에 들린 상점에서 Mazapan 마지팬인 줄 알고 구입했던 쿠키와 함께 카드를 적어주었다. T는 오래전에 만난 친구였지만 오랜 기간 보지 못했다. 이번에 기회에 함께 지내면서 서로 새롭게 알 수 있었던 사실이 많았다. 우리는 함께 관광을 하지 못하였지만 값진 대화를 나누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만나 정말 행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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