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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 록 Nov 18. 2015

용기

유럽 여행에서의 따뜻한 기억 

6월에 유럽 여행을 시작해서 8월에 한국에 왔고 9월에 다시 미국과 유럽을 가는 비행기를 샀다. 그리고 11월인 지금은 12월에 가는 여행을 보류할까 고민 중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히 유럽에서 조금 더 용감했던 나를 떠올리기 위해서다. 그때의 일상을 추억하고 그리워하고 싶어서다. 그리고 그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다.


가장 따뜻한 추억

두 달간의 유럽 여행을 떠올리면 사실 한 장면만 딱 떠오르는 건 아니다. 유럽에서 하루하루는 이런 게 행복인가 싶을 정도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이었기 때문에 온 몸 세포 하나하나에 추억이 선명하다. 그래도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어렵사리 그렇지만 단호하게 한 장면을 말할 수 있다.  제일 따뜻한 기억으로 남은 독일에서 만난 할아버지와의 추억이다. 독일로 들어오자마자 처음 밟은 유럽 땅은 프랑크푸르트였다. 발을 내딛자마자 너무 좋아서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바로 일정을 미루어 3주 간의 여행은 8주로 늘어났다. 원래 독일 지방 소도시를 여행하려 계획했던 슈투트가르트에서 문이 닫힌 상점을 뒤로하고 새로 만난 친구들이 있는 뮌헨으로 도망갔고 거기서 만난 친구들의 추천으로 독일 일정을 취소하고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를 사기로 결정하였다. 그렇게 일주일을 정신없이 보낸 후 그다음 일정이었던 작은 마을에 가서는 그냥 조용히 쉴 생각이었다. 


그 시작은 선택으로부터 

작고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듣고 갔던 터라 딱히 관광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천천히 혼자 걸어 다니다가 둘째 날에 장터를 나갔다. 점심을 혼자 즐긴 후 장터를 돌아다니다 길을 잃어 중심 광장에 있는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 할아버지가 있으시기에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게 되었고 예상치도 못하게 말이 잘 통하여서 1시간도 넘게 그 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앞에 테라스에서 같이 커피를 마시자고 하였고 같이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러던 중에 할아버지는 자신이 사는 시골 마을에 나를 초대하였다. 그때부터 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고민이 생겼다. 낯선 외국인이 2시간 만에 한 초대에 응해야 할지 무척이나 고민이 되었다.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말하면 분명 위험하다며 가지 말라고 할 것이기에 스스로 선택해야 했다. 한국에서 생활할 때는 주위 사람한테 조언을 자주 구하는 편이었다. 혼자 선택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용기 내 선택하니 내 눈 앞에는 

두려운 감정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데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자 용기가 생겼다. 결국 나는 스스로 할아버지네 집을 가기로 결심하였다. 할아버지가 사는 마을은 집이 50 채정도 있는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나는 할아버지 집에 방문하자마자 와우 Wow를 입에 달고 살아서 나중에 할아버지가 메일로 와우 걸 Wow Girl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할아버지 집은 놀랍도록 아름다웠고 동시에 걱정한 것이 무색할 만큼 안전하고(?) 편안하였다. 할아버지 집은 4층이었고 잘 꾸며놓은 정원 덕분에 숲 속의 집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머무른 방은 나무와 노란색이 너무나 잘 어우러져 아늑하다 못해 녹아버릴 것 같았다. 간단히 집 구경을 마친 후 가족들과 테라스에서 장미향을 맡으며 저녁 식사를 함께 하였다. 빵, 요거트, 치즈, 스프레드, 샐러드, 사과 주스를 준비해주셨는데 모두 직접 만드신 정성이 담긴 음식이었고 나는 먹는 동안 그 마음을 먹는 것 같아 감사히 먹었다. 


호수에서 수영은 처음인데요

저녁을 먹고 할아버지가 호수에 가서 수영을 하자고 제안하셨다. 나는 수영을 좋아하지만 잘하지는 못하였고 실내 수영장에서 수영을 해본 경험이 전부였다. 그렇지만 호수 수영을 제안했을 때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렇게 자신 있게 호수에 들어갔는데 나는 들어가자마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호수가 그렇게 깊고 넓은지 몰랐고 내가 발차기를 멈추는 순간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가 현실로 다가왔다. 할아버지는 나보다 수영을 훨씬 잘하셨고 체력도 매우 좋으셨다. 할아버지는 내가 호수에 들어가 수영하는 내내 주변을 맴돌면서 나의 안전을 살펴주셨다. 그렇게 1시간 조금 넘게 수영을 하며 호수에서의 첫 수영을 무사히 마쳤다. 고요하고 무서우면서도 두려움을 이겨내고자 나에게 "할 수 있다."를 여러 번 외친 새로운 경험이자 도전이 되었다. 뿌듯함으로 가득 찬 마음을 내 몸은 모르는지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렇게 수영을 마친 후 감기 걸릴까 걱정해주시며 자신의 원피스를 주시는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입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난생처음 느끼는 자연과 사랑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유난히 시원하고 마음이 편안했다. 산에는 소, 염소도 종종 보였고 호두나무와 체리 나무도 많았다. 집에 돌아와 씻고 나니 뒤뜰이 보이는 집과 연결된 테라스에서 나를 위한 크림, 요거트, 딸기가 담긴 달콤한 디저트와 맥주를 싫어하더라도 꼭 맛보아야 한다며 주신 할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시는 맥주와 디저트와 함께 마실 와인을 준비해주셨다. 나는 담요를 덮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고요하지만 행복한 시간을 즐겼다. 조잘조잘 떠들다가도 이야기를 멈추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집안의 모든 불을 꺼놓았기 때문에 그 작은 마을의 빛을 내는 것은 반딧불이 밖에 없었다. 그 날 하늘에서는 별똥별이 떨어지기도 했다. 나는 정말 믿을 수가 없을 만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늦은 밤에 잠이 들고 새벽같이 일어났다. 일어나서 산책을 하고 있으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침을 준비해주셨다. 아침을 맛있게 먹고 나니 할아버지가 아침 수영을 가자고 제안하셨다. 나는 사실 호수에서의 수영이 힘들어서 한 번의 경험으로 충분하고 생각하며 쉬고 싶은 마음에 주변을 산책하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어제 수영하는 것을 보니 내가 매우 튼튼한 것 같다며 아침 수영은 저녁 수영과 다르게 맑은 물에서 평화를 느낄 수 있다고 하였다. 그 말에 나는 홀딱 넘어가서 아침 수영을 갔고 호수에 들어가자마자 할아버지 말을 듣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사람도 많이 없어서 고요했고 물도 맑았다. 그리고 나는 숨이 찼기 때문에 배영을 하였는데 호수에 누워있으니 내 시야에는 파란 하늘만 들어오고 내 몸은 물에 떠있어서 물만 느낄 수 있으니 기분이 참 묘했다. 자유로운 기분에 빠져들어 내 마음대로 휘적거리며 돌아다니다가 개 수영을 하면서 주변을 보다가 웃다가 그랬다. 그리고 다시 차를 타고 가는 길에 동네 시장도 구경하고 버스 타고 갈 때 먹으라며 체리도 사주셨다.(독일은 체리가 참 싸고 달다.) 


짧은 머무름이었지만 이별은 항상 어렵다

할아버지가 싸주신 체리까지 챙겨 준비를 마치고 다 같이 기차역으로 갔다. 나를 마중해주시는 할머니들과 헤어질 때는 비록 이틀 동안이지만 정이 들었는지 눈물이 날 뻔했다. 할아버지가 계단에서 내 짐을 들어주시면서 10년 후에는 내가 할아버지 짐을 들어주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뭉클하였다. 10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당장 다시 할아버지 집에 오고 싶었다. 낯선 여행지에서 만나서 서로 마음을 열고 같이 보낸 시간과 앞으로 불확실한 미래가 아쉽고 아쉬웠다. 


그렇게 나는 같은 해 겨울에 비행기표를 결국 샀다, 할아버지를 만나로!

▼다시 만난 할아버지와의 이야기▼

https://brunch.co.kr/@srk163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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