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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 록 Mar 09. 2016

동생과 파리 코스타에서 4시간

대화로 풀린 그동안의 오해

피곤하게 시작한 하루

어제 신나게 여기저기 돌아다닌 여파로 일어나자마자 온몸이 쑤시고 매우 피곤하다. 그래도 우리는 어김없이 조식을 먹고 파리 거기로 나간다. 남동생은 어제 찾았다가 다 팔렸다는 소리만 들은 키코 화장품을 찾고 싶다고 한다. 여동생이 꼭 갖고 싶다고 했다나 뭐라나. 같이 찾기로 하고 여러 군데를 돌아다녀보았지만 우리가 찾는 제품은 한정품이라 이제 판매가 안된다고 알려준다. 우리는 짧게 계획을 세웠다. 루브르 박물관 쪽으로 가서 사진전을 구경한 후 점심을 먹기로 한다. 


점심 후 후식 아닌 휴식

이미 피곤한 채 시작한 하루는 좀처럼 생기를 찾기 어려웠다. 우리는 여느 관광객들이 하는 맛집 찾기나 하다못해 지도에서 평점이 높은 식당을 찾아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려는 조금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다. 그냥 눈에 보이는 식당으로 쏙. 그런데 그냥 들어선 식당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역시나 고급스러운 분위기만큼 가격도 비싸다. 우리는 적당한 가격의 오믈렛을 골라서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 조금 앉았다 쉬고 가고 싶은데 유럽에서는 항상 접시를 바로 치운다. 그냥 있어도 되지만 아직 적응이 되지 않아서 일어나버리곤 한다. 내가 파리에서 한국 문화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한국에서는 계산을 할 때 다 먹고 난 후 직접 나가서 하고 그전까지는 접시를 치우지 않는다. 만약 접시를 치운다면 빨리 나가라는 뜻이라고 여겨 무례하다고 생각하기도 하니까. 반면에 파리나 유럽에서는 먹자마자 빨리 치우고 계산도 직접 와서 해준다. 직접 오기 전까지는 모두 재촉하는 법이 없다. 앉아서 기다린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아직도 접시를 치우면 빨리 계산하고 나가야 한다는 압박이 든다. 계산을 후다닥 하고는 나왔지만 우린 둘 다 너무 피곤했다. 더는 돌아다닐 수가 없다고 판단해 숙소로 돌아가서 쉴 생각을 하다가 또다시 눈앞에 카페를 발견하자 둘이 끌린 듯이 들어갔다. 무언갈 먹고 마시기 위해서가 아닌 그냥 앉아서 쉬려고. 핫초코 두 잔을 놓고 마주 앉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더 이상 걷지 않고 우린 그냥 머물러있어야 하니까 대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점점 이어지고 길어졌다. 평소에는 서로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오랜 기간 같이 살아도 몇 마디 나누지 않았던 누나와 동생이었는데 집이 아닌 이곳에서 깊은 대화를 하게 되었다니. 아니, 집이 아니라서 가능한 걸까. 그래서 부모님은 우리가 여기 파리에서 만나길 바랬던 걸까. 이번에 대화를 하면서 처음으로 남동생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남동생이 나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우리는 그냥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남남처럼. 나 또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남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할 수 있었다. 4시간 동안 코스타에서 앉아서 남동생과 가진 시간은 그 어떤 시간보다 가치가 있었다. 내가 여동생한테 느꼈던 애틋함과 사랑을 남동생에게도 느낄 수 있었다. 우린 그렇게 호스텔로 돌아왔다. 여전히 피곤했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채로.



사진전 관람 - 우리가 관람한 사진전은 꽤 흥미로웠다. 사진을 연속적으로 찍어 전시한 작품은 영상에서 나타낼 수 없는 순간을 더 자세히 포착하여 나타낸다. 남동생은 사진까지는 이해하지만 영상을 보고는 자신은 예술성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예술성이란 무엇인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예술가들은 자신의 생각을 영상이든 사진이든 기록으로 남기고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건 분명하다. 자신에 대한 확신 또는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으로 예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예술성보다 그들이 자신의 예술성을 믿는 확신이 너무 부럽다.

바르셀로나로 떠나기 위해 버스 타기 전 동생과 파리에서 마지막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나는 바르셀로나까지 20시간 가까이 걸리는 버스 여행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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