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부지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국민학교 6년 내내 전교 1등만 했으면서도
집이 가난해서 할배가 중학교를 보내지 않는 바람에
가슴에 한 움큼 골병이 든 채 평생 살았습니다.
- 너그는 공부만 열씨미 해라. 공부해야 사람 된대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아부지는.
안동 김 씨 진사공파 31대 종손으로 대우받으면서도
돌아가신 할배가 집안 재산 다 날리는 바람에
남의 집 머슴살이로 애간장이 다 녹았습니다.
- 사람은 말이다 돈이 있어야 사람대접받는다. 알겄제?
우리 아부지는 늘 그렇게 말했습니다.
평생 농사꾼으로 흙 파먹고 살았으면서도
- 너그는 흙 파묵고 살지 말고 펜대 굴리모 살그래이
술만 드시면 자고 있는 내 볼에다 턱수염을 비비고는
소리 없이 눈물을 훔치고는 했습니다.
우리 아부지는 그래도 가끔 환하게 웃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하숙집에 갔더니
- 오 마이 뽀이 명일 킴. 컴온 뻬이비!
반기시던 아부지의 왼손에 붕대가 감겨 있었는데,
타작하다가 경운기 벨트에 손가락이 잘리는 바람에
병원에서 수술하고 기어코 하숙집을 찾아오셨답니다.
- 개안타. 니가 상대나 법대만 가모 아부지는 다 개안타.
아부지는 주름이 다 펴지도록 환하게 웃었습니다.
우리 아부지는 그렇게 미운 사람이었습니다.
해마다 찬바람이 불면 이듬해 봄까지 계절병에 시달리셨고,
윤삼월에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하자
그때부터 맥을 놓고 “자야, 자야” 부르시며 목놓아 우시더니
엄마 돌아가신 이듬해 가을에 가느다란 숨을 놓아버렸습니다.
- 맹일아, 니는 아부지처럼 살모 안된대이
바람찬 오늘은,
아부지가 억수로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