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서 자란 마음

겨울 그리고 나무

by 홍시궁

어릴 적, 내게 있어 겨울은 나무였다. 이것은 은유적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생활적 사실로서 내게 인식되고 있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아마도 충분이 짐작할 수 있으리라.


어릴 적 학교들은 대부분 갈탄 난로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해마다 11월이 다가오면 오후 수업시간을 이용해서 산으로 갈탄의 밑불로 쓸 나무를 하러 다녔다. 우리는 산에 흔하게 널렸던 마른나무들을 모아서 학교로 돌아오고는 했다. 잘 마르고 불땀이 좋은 밑둥치며 삭정이를 주로 모았고, 때로는 솔방울을 자루 가득 담아오기도 했다. 오후 수업을 빼먹고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던 그 좋았던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아련한 옛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고구마 등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는 이내 또 산으로 향했다. 당시에는 주로 나무로 난방을 했기 때문에 겨울철이 다가오면 불 땔거리를 장만하는 게 여간 큰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국민학교를 들어가면 꼬맹이 때부터 나무를 하러 다녔다.


저학년 때는 주로 깔비(떨어진 소나무 이파리)를 까꾸리(갈퀴)로 긁어모아서 커다란 마대자루에 넣고 굴려서 집까지 가지고 오고는 했다. 그나마도 가까운 곳에서 모으기가 어려울 경우에는 지게에 바다리를 얹어서 멀리까지 ‘깔비 사냥’을 떠나기도 했다. 고학년이 되면서는 장작으로 쓸 두툼한 밑둥지를 몇 개씩 지게에 얹어서 집으로 돌아오고는 했다.


그렇게 땔감을 장만하면 군불을 지피거나 쇠죽을 끓이는 것도 내 몫이었다. 저녁을 먹기 전에 쇠죽을 쑤기 위해 장작을 패고 가마솥으로 한 소끔 쇠죽을 끓이고 있으면 그 구수한 냄새가 온 집에 진동했다. 집집마다에서 저마다 피워 올리는 쇠죽 냄새는 이제는 느낌으로만 살아있는 삶의 향기다.


따뜻한 불 앞에 앉아 진홍빛으로 선연히 타들어가는 장작들의 무늬결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무릎을 모두어 세운 채 그 위에 턱을 괴고 그렇게 한참을 들여다 보고는 했었다. 그 장작불 위에서 구워 먹었던 고구마와 가래떡 맛의 기억을 어떻게 잊으랴.


겨울이면 가장 많이 하는 놀이가 자치기였다. 자치기는 5센티미터쯤 되는 막대기를 가지고 자(얇은 나뭇가지 등으로 만들며, 양쪽을 뾰족하게 다듬어서 잘 튀어 오르도록 만든다)를 쳐서 멀리 보내는 전통놀이였다. 겨울철 시린 추위 때문에 바깥놀이가 힘들어도 양지바른 곳에서 조그맣게 구멍을 만들고 그 위에서 놀았던 자치기는 겨울철 최고의 놀이이자 운동이었다. 자치기를 통해 구슬 내기도 하고 군것질 내기도 하며 기나긴 겨울 속에서 어릴 적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렇게 어릴 적 겨울은 나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나무와 만나고 나무를 태우고 나무를 자르고 나무를 이용해 놀면서 나무와 함께 지내온 그 시간의 더께가 쌓여 오늘의 내가 있을 터이다. 삶의 반환점을 돌아가고 있는 요즘에 더욱 그 생각이 간절한 것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음에 터져 나오는 한탄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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