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레한 명지바람이 절골에서 마을로 날아들면
꼬맹이들 발등에도 모롱모롱 아지랭이 오르고
산으로 송기, 들로 삐끼 저마다 베어 물 때
떨어지는 감꽃 아래 도꾸는 낙낙히 노루잠에 취하고
밭에는 아재들 쟁기질 소리가 쇠비름 이파리에 스친다
- 이랴, 자라! 이 노무 소새끼, 이랴!
앞산에서 허여무레 오란비 무리가 솨아좌아 달겨들면
대청마루에 깊이 앉아 하동지동 거먕 빛 달큰한 밀밥을 먹고
곡괭이 만한 뙤약볕이 등허리 따갑게 쪼아대는 날에는
서늘한 살강 위 대광주리 꽁보리밥을 찬물에 말아
풋고추에 된장 담뿍 찍어 후르릅 넘기고는
까마중이, 방가지똥, 개아재비 핀 산길 따라 소 꼴 먹이러 갈 때
무논에 한 모숨 한 모숨 줄모 내는
아지매들의 구성진 노동요 따라 논도랑 미꾸리도 흐른다.
- 모야 베야 이쁜 베야. 가을에는 토실토실 알차게 오그래이!
색바람 나직한 어스름 골목 사이로 저녁연기 오르고
파르스름 달빛 젖은 마당에는 웽웽 타작소리 높이 울면
참새들이 떼로 모여 포롱포롱 마당 위를 날고
오촌 당숙아재 재우치는 고함소리에 달이 기운다
- 머하노, 벳단 빨리 가꼬온나. 달 넘어가겄다 이 너무 손아!
손돌바람이 빈 들녘 내달리고 무서리 내리면
잎 다 떨군 감나무 우듬지에 까치밥 두어 개 남겨두고
온 동리(洞里)는 희추(喜秋)의 열기로 흥근하게 젖는다.
희푸르스름 언 하늘가로 댑바람 퓌이잉 회오리치면
솔잎 위 손끝으로 달랑거리는 잣눈을 덮어쓰고
보리저녁 골목마다 소도록이 풍경이 된다
아재들이 집집마다 가마니 짜는 물레 소리 덜걱덜걱
아지매들은 왕겨색 알전구 불빛 밴 사랑방에 둘러앉아
탁배기 몇 순배에 야살한 이야기로 고슬고슬 밤이 익는다
- 이 주책아, 문디야, 니는 남정네가 그래 좋나?
- 우리 서방마 아이모 다 개안타 아이가!
문풍지 파르르 울리는 황소바람에 아랫목이 다 식도록
도둑눈 내리는 고샅으로 밤마다 이야기가 흐른다
풀과 꽃이 그냥 그대로 살아가듯
착한 마음씨의 사람들이 계절 따라 납작 살아가는
덕암산 아래 거 문둥이 미의 그리운 서정(抒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