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로 싸다니다
요즘은 틈만 나면 근처 시골로 싸다닌다. 몇 년 뒤 내가 깃들 곳을 미리 톺아보기 위해서다. 지금처럼 도시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도 될 터인데, 흙에서 자란 내 마음이 자꾸 시골로 가란다.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 한 자락이라도 읊어야 하려나.
歸去來兮 돌아가리라
田園將蕪胡不歸 전원이 장차 황폐해지려 하니 어찌 돌아가지 않으랴
旣自以心爲形役 여태껏 마음은 몸을 위한 노예였거늘
奚惆愴而獨悲 어찌 낙담하고 홀로 슬퍼만 하는가
시우리(時雨里)는 남양주에서 제일 깊은 마을이다. 산 아래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고, 마을 주변은 논과 밭으로 빙 둘러있다. 마을 한가운데 돌담집이 한 채 있는데, 그 마을의 품격을 높이고 있었다. ‘때에 맞춰 비가 내리는 마을’이라는 이름에서 한껏 마을의 멋이 느껴진다. 별빛 흐드러진 봄날 저녁에 사박사박 들길을 걷기에 참 좋다.
송촌리(松村里)에는 깃들고 싶은 촌집이 몇 있어서 마음이 내킨다. 마을 위쪽에 큰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고, 그 주변으로 오래된 촌집 몇 채가 에두르고 있어서 시골 느낌이 물씬하다. 혹 이 마을에 깃들면 그런 공간에서 마을 주민들과 음악이든 문학이든 너스레든 너나들이를 하면 좋을 게다. 마을이 골짜기에 맞춤하게 들어앉아 있어서 참 조용하다. 마을 앞쪽으로 개발의 그림자가 점점 짙어지는 게 다소 아쉽다.
능내리(陵內里)는 한강을 품고 있는 동네라 깃들기는 참 좋다. 능내역 폐역이 있어서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게 다소 아쉬움. 다산유적지 쪽(능내1리)는 상수원보호구역이어서 다툼이 많을 듯하고, 능내2리는 이미 비싸 보이는 전원주택으로 그득하다. 산기슭이고 해도 잘 들고 한강 조망이 가능해서 그런 듯하다. 다행히 동쪽 비탈에는 비교적 깨끗한 촌집이 몇 있어서 사무실로 깃들기에는 더없이 좋아 보인다.
남양주의 시골 마을을 싸다니는 동안 마을마다에 떡 하니 버티고 있는 당산나무에 마음이 많이 갔다. 어릴 적 내가 자란 시골에도 500년 묵은 느티나무가 당산나무 역할을 했는데, 해마다 설 무렵에 당제(堂祭)를 모시고 마을의 안녕을 빌던 중요한 공동체 장소였다. 지금 마을들은 점점 개발로 내몰리고 있었지만, 당산나무는 아직도 굳건히 마을 초입에서 버티고 있어서 참 기꺼웠다.
홍천에서는 오래된 구멍가게를 발견해서 참 느껍다. 홍천에서 춘천으로 넘어가는 지방도로 길어깨에 있는 조그만 구멍가게였는데, 1970년대에 시작해 아직도 버티고 있었다. 어릴 적 군것질 거리를 찾던 그 느낌 그대로의 구멍가게였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할머니와 한참 얘기를 나누었다. 헤어질 때 할머니가 “나중에 이어서 할 마음 있음 연락햐” 하셔서 마음이 헛헛했다. 시골길 오다가다 만나는 시골책방으로 꾸미면 좋겠다는 욕심이 설핏 고개를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른 춘천시 남면 발산리(鉢山里)는 시골스러움이 있어 깃들고 싶을 만하다. 무엇보다 예닐곱 가구밖에 없는 게 가장 마음에 든다. 마을 앞에는 논과 밭이 있고, 그 앞으로 실개천도 가르스름 흐르고 있다. ‘겨울볕은 돈 주고도 못 산다’는데,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마을 앞으로 2차선 지방도로가 나 있고, 주변에 오래된 폐교도 있어 그 기반으로 ‘시골스러운 프로젝트’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집 옆에 두 아름은 될 만한 미루나무가 장승처럼 서 있어서 ‘꿈에 그리는 집’이라 할 만하다.
시골 사이로 돌아다니는 재미가 참 쏠쏠하다. 흙에서 자란 어릴 적 마음자리 돌아보며 내 나중 깃들 곳 돌아보느니 행복하기까지 하다. 마음에 스밀 시골을 찾아, 그 마을의 정취를 보고 느끼고 담고, 시골스러움에 마음을 내어 즐기느라 세세하게 살피기보다는 매양 눈을 한가롭게 부릴 뿐이었다. 그러했는데도 풍경은 오롯이 담겨 자연의 화선지가 되고, 내 영혼의 땅은 미쁜 쟁기질로 자부룩이 갈리고 있었다. 자기 영혼의 땅을 갈 시간이 있는 이가 진정한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 했던가.
그러는 사이로 서러운 마음도 일었다. 자연에 등을 대고 살려는 사람들의 마음이야 하등 탓할 바 없다만, 굳이 자연을 깎아내고 산 언저리에 깃들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자아내는 비천함을 어찌할 수 있을까. 전원주택이라는 이름으로 시골스러움을 갉아먹고 있는 그 거친 욕망 덩어리는 무엇으로 수술할 수 있으려나. 인간이 날지 못한다는 게 다행이다 싶었다. 인간이 날 줄 알았으면 저 하늘도 갈아엎으려 덤빌 지도 모르겠어서 하는 말이다.
시골 사이로 다시 시골스러움이 배어나고, 그 시골에서 내 거친 영혼의 땅을 갈아내고, 시골 속에서 내 남은 시간을 갈무리하고자 하는 마음에 도시의 원심력이 미치지 않기를, ‘개발대장군(開發大將軍)’의 걸음이 닿지 않기를.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