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에 가면 나물 돌솥밥을 파는 집이 있다. 심심하면서 구수한 반찬들과 마지막 누룽밥까지 후루룩 마시고 나오면 어딘가 몸이 꽉 채워진 기분이 든다. 그대로 조금 더 올라가면 길상사라는 작은 절이 나온다. 멋드러지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소박하니 한 바퀴 산책하기에 딱 좋다. 꼭 불교가 아니어도 절이 주는 한적함을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이 길상사에는 내가 좋아하는 러브스토리가 생각나기도 하여 더욱 좋아한다.
여든이 다 된 ‘자야’여사가 써 내려간 아주 젊은 날의 사랑의 기억. 유독 매섭게 추운 날의 절절했던 사랑이 떠오르는 문장들을 읽다 보면 가슴 한 쪽이 금방 뜨거워진다. 이십 대 초반의 자야와 그 시절 꽤나 잘생겼던 시인 백석의 이야기. 자야에게 첫 눈에 반한 젊은 백석이 과음을 하여 성급한 모습을 내비치기도 하고, 헤어지기가 아쉬워 기차를 놓치고 한 밤 더 자고가는 백석과 그 애틋했던 달 밤을 떠올리며 읽다 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를 것 없다가도 그 때의 느리고 깊었던 감정이 부러워지기도 한다.
‘자야’라는 이름은 백석이 지어 부른 애칭이었다. 마치 지금의 연인들이 서로를 부르는 별명이나 애칭이 있듯 그 시절 시인이 자신의 사랑에게 지어준 이름 자야. 이 책을 처음 읽었던 이십대엔 나에게도 저런 애칭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우리만 아는 이름, 그 이름으로 불리우면 내가 더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을까.
둘의 이야기에도 시련과 토라짐과 그래서 더욱 절실해지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부모님의 강요로 다른 여인과 결혼할 수 밖에 없었던 백석과, 그를 위해 도망쳐 온 자야. 또 그런 자야를 다시 찾아내어 한 달음에 달려온 백석. 옛날 드라마를 떠올리게 하는 어쩌면 전형적인 장면이지만 요즘은 이런 장면을 보기가 오히려 힘들어져서 그런지 마음 속 깊게 박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자야! 자야!”
그 순간이었다. 삼수갑산이 바로 내일이라도 아랑곳없다는 듯이 잔뜩 도사리던 나는 일시에 간 곳이 없었다. 나는 버선발로 달려 나갔다. 다만 내 혼이 맨발로 뛰쳐나간 것인가. 어느 틈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대문을 박차고 달려나가 당신께 안기고 말았다. 그렇게도 벼르고 망설이던 내가 당신이 부르는 소리에 금방 어이없이 제풀이 한 번 탁 꺾이고 말았다. 차라리 시원하고 가슴이 탁 터진 듯했다.
복잡한 세상사도 이젠 나에게 아랑곳없어라!
매 주 챙겨보는 프로그램 중에 ‘환승연애2’가 있다. 이미 이별 한 몇 커플이 한 집에 살면서 기존 연인과 다시 만날지, 그 안에서 새로운 연인을 찾게 될지를 지켜보는 연애 프로그램이다. 요즘 자극적인 연애 프로그램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 환승연애를 자꾸 보게 되는 건 등장 인물들의 어찌할 수 없는 감정, 불쑥 튀어나오는 감정, 묻어두었던 감정들이 밖으로 꺼내 보여지는 상황을 관찰하면서 많은 공감을 하게 되기 때문인 것 같다.
요즘 연애, 요즘 젊은이들은 가볍게 만나고 쉽게 헤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사람과 사람의 감정이란 표현 법이 달라졌을 순 있어도 유행타지 않고 어느 정도의 본질을 간직하는 건 분명하다. 쉽게 만났더라도 나에게 특별히 귀한 사람은 분명 있고, 금새 헤어진 것 같더라도 상대방 가슴을 한 번 할퀴고 간 것도 분명할 거다. 아파하면 촌스러운 것처럼 되어 마음껏 처량맞게 아파하지 못하는 젊은 사람들의 연애가 더 애처로울 때가 있다.
다시 길상사로 돌아와, 길상사는 훗날 큰 돈을 벌게 된 자야가 가지고 있던 요정을 법정스님에게 내주어 절이 된 곳이다. 아무리 큰 돈도 당신의 시 한 줄만 못하다던, 그리고 지금껏 백석을 떠올리면 여전히 그립다 말하는 자야여사.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사람들도 그러하고, 방금 이별을 맞이한 사람에게도 앞으로 남은 사랑이 아주 절절하고 애틋하여 깊이 파고들었으면 한다. 한 번쯤은 그런 사랑을 기억할 수 있는 건 오랜 세월을 살아가는 데 알사탕처럼 꺼내 볼만한 달고 귀한 추억이 될 것이다.
소중한 사람이 생기면 어느 날 좋은 날 길상사에 데려가 나물 돌솥밥 한 그릇도 먹고 자야와 백석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