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남편이 늦는 날 혼자 방에서 이런저런 음악을 켜 두고 노오란 조명아래 숨겨진 문장을 몇 개 꺼내 읽는 걸 좋아한다.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카더가든이나 잔나비, 검정치마의 노래들을 자주 리스트에 올리곤 했는데 그 중 카더가든의 <가까운 듯 먼 그대여>라는 노래가 참 좋았다. 20대의 나라면 이 노래를 들으며 가슴 한 켠에 묻어둔 지나간 인연이라든가 혼자만 알던 짝사랑의 상대를 떠올렸겠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그대는 밤하늘에 놓인
작은 별 같아요
매일 밤마다 나를 찾아와
나의 맘을 흔들어 놓는
가까운 듯 먼 그대여
그댈 또 그려보네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러 나가곤 하는데, 운이 좋으면 커다란 달이나 반짝이는 별을 보기도 한다. 아기를 갖고나서 생긴 버릇이나 습관과 비슷한건데 달이나 별을 보면 아기의 건강과 우리의 행복을 잠시 멈춰 빌어본다. 예전에는 김용택 시인의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와 같은 문장을 떠올리며 애틋한 누군가를 떠올리기도 했다. 누군가 지하철을 타고 가던 나에게 전화해 달이 예쁘게 떴으니 집에 가는 길에 꼭 보고 가라 하는 낭만적인 순간도 있었다. 이제는 같은 달이지만 커다란 달을 보면 배에 손을 얹고 아기에게 이야기한다. ‘달이 떴다, 커다란 달이야. 꼭 너를 닮았을지도 몰라서 반갑고 행복하다.’ 라고.
이런 변화가 내심 좋기도 하다. 낭만이 없어지고 로맨스가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일 수도 있지만 잠시 생각해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아직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이렇게 위하고 떠올릴 수 있는 일이 내게 벌어지다니. 늘 내가 먼저였던 사람이 진심으로 타인에게 이토록 진심일 수 있다니. 놀랍고 설렌다. 부모님을 사랑하거나 남편을 사랑하는 것과는 또 다른 그 어떤 복합적인 마음가짐인 것 같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특별히 모성애가 강하거나 아이를 무조건적으로 원하던 사람은 아니었다. 가끔씩 티비에 나오는 아기를 귀여워하기는 했지만 그 아기들은 누가 봐도 귀여운 외모와 편집된 예쁜 행동들이 있기에 그럴 수 있던 것 같다. 물론 아기가 정작 세상 밖으로 나와 나를 많이 힘들고 지치게 할 때가 있겠지만, 조금씩 내 안에 생기는 이 마음은 그것과는 무관하게 저 아래 차곡차곡 쌓이는 흙처럼 여겨진다.
달이 뜨고 별이 뜨는 밤이면 놓치지 않고 나가서 꼭 보고싶다. 남편의 따뜻한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아기를 토닥이며 우리의, 그리고 우리 곁의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안녕과 행복을 빌어주고싶다. 그 어느때보다 진심의 안녕과 행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