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프로젝트에 추가된 새로운 미션

by 스루기

임산부가 되고 나면 시기별로 받아야 하는 검사가 많아진다. 이렇게 피를 많이 뽑은 기간이 있을까 할 정도로 피검사를 자주 하는데, 아기가 기형아일 확률을 알아보는 검사, 태동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검사, 엄마가 빈혈은 없는지, 부족한 영양소는 없는지 등을 검사한다. 시간이 잘 가지 않다가도 이렇게 매 달 받아야 하는 검사를 받고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기를 만나다 보니 어느덧 8개월에 접어들었다. 이제 정식으로 임신 기간 중 ‘후기’에 해당하는 시기에 들어온 것이라 한다.


여러 검사들을 무사 통과하며 이대로 무난하게 아기를 만나는 걸까 기대를 하던 내게 얼마 전 가슴이 쿵 내려앉는 일이 있었다. 24주에서 28주 사이에 산모들은 일명 ‘임당검사’를 받는다. 임신성 당뇨가 있는지를 검사하는 건데, 당뇨가 아니던 사람이어도 임신 중 혈당조절이 잘 되지 않게 된다면 임당 확진을 받게 된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임당을 유발하는 몇 가지 요인들이 있는데 내가 특별히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 것 같아서 마음을 놓고 있던 터라, 재검을 했음에도 결국 ‘임당’이라는 소식에 침대에 털썩 누워 눈물이 흘러버렸다.


이렇게 내가 슬퍼하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째는 물론 아기였다. 지금껏 나만 믿고 신나게 태동도 하는 우리 아기에게 혹시라도 높은 나의 혈당이 해가 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었다. 온갖 인터넷과 임당인 엄마들이 가입 되어있는 카페, 유튜브를 전전하며 다양하고 많은 정보를 접하다 보니 걱정이 깊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둘 째는 내 자신이었다. 나름대로 임신을 하면서 여러 제한이 생겨 힘들었는데, 여기에 당뇨를 얹으면 식단과 운동이라는 숙제가 더해진다. 임신을 하고 배가 불러오면 한 밤중이라도 남편에게 “나 떡볶이가 먹고 싶어”라고 말해, 야밤에 둘이 앉아 떡볶이를 먹어보는 게 작은 로망이었는데 이젠 떡볶이 대신 생 양배추와 오이, 삶은 닭가슴살, 현미밥을 규칙적인 시간에 먹는 게 현실이 되어버렸다.


임당인 산모는 이제 앞으로 산부인과와 내분비내과 둘 다를 다녀야 한다. 다행히 나는 대학병원을 다니고 있어, 한 병원에서 둘 다 해결할 수 있었다. 내분비내과의 첫 진료는 가득 찬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사이에서 대기하며 시작되었다. 아무래도 당뇨는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겪고 계신 병이라 이렇게 젊고 그것도 배가 제법 나온 임산부는 나 혼자 인 것 같아 잠시 씁쓸해졌지만 의사선생님의 위로가 그 마음을 날려주었다. 자신의 아내도 나와 예정일이 비슷한데 임당이다, 그래서 식단이랑 운동을 열심히 하니까 금방 잡히더라. 너무 걱정 말고 2주 관리해보고 다시 만나자.


임신을 하고 나니 그 누구의 말보다 나와 같은 걸 겪고 있거나 이미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임당을 겪고 있는 산모들이 모인 카페에서 서로의 식단을 공유하고, 걱정과 우울감을 털어놓고, 응원하고, 공감하면서 스스로를 이겨내고 있음에 감사한다. 친정도, 남편도, 시댁도, 친구들도 그들의 최선으로 날 위해주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부족하다. 때로는 날 위로하면서도 그들이 먹고 있을 도너츠가 야속하고, 오히려 건강관리가 잘 되니 괜찮다라는 말이 맞는 걸 알면서도 그 ‘건강관리’를 나만 해야 한다는 사실이 미울 때가 자주있다.


그럼에도 누구의 잘못도 아닌 내가 감당해내야 하는 일이 맞다. 길게 보면 짧은 기간, 달라지는 일상에 몸이 익어야 한다. 하루 4번 채혈침으로 피를 내고 혈당을 재고, 식후 근력운동과 유산소운동을 해주고. 흰 쌀밥은 미뤄두고 현미와 보리로 밥을 짓고, 식전에 한 그릇 씩 샐러드를 먹어주고, 간이 덜 된 단백질도 잊지 않는다. 간식은 우유나 견과류로 챙기고 당이 높은 과일은 조금씩만 먹는다. 자기 전 무가당 두유 한 잔 꼭 마셔준다. 아기를 처음 만났던 날 생긴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 클라이언트가 작은 미션을 하나 더 준 셈이다. 회사를 다닐 때도 이런 일은 흔했다. 갑자기 생긴 추가 미션. 기한은 같고 비용도 같지만 해내야 하는 그런 일. 대체로 이런 미션은 처음엔 황당하고 막막하지만, 전부 다 마무리되고 나면 보람이 배가 되는 경우가 많다.


IMG_6221.heic <어느덧 코트를 꺼내입고 병원에 가는 날이 오다니>


2주만에 병원에 가니, 나는 살이 안 쪘지만 아기는 살도 찌고 잘 자라고 있다는 말에 기뻤다. 밥을 먹고 운동하려고 몸을 들썩이면 같이 배 안에서 움직이는 아기가 귀엽고 보고싶다. 이제 정말 2달 좀 넘게 남은 이 기간을 잘 해내고 싶다. 지금처럼 하나씩 하루하루를 채워가며 건강하게 아기를 만나고 싶다. 오늘도 잠들 기 전 유튜브로 먹방을 검색하며 먹고 싶은 음식들이 꿈에 나오길 기대해보며! 이런 시간들이 지나 만나게 될 아기는 얼마나 더 귀하고 반가울지를 상상해보며! 추가된 미션을 열심히 수행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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