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루기의 사생활_4] 침묵할 수 없는 자들의 서투름

by 스루기

나는 말하는 걸 좋아한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끝 없이 문장을 쏟아내고 서로의 문장 속에서 맘에 드는 문장을 골라내곤 한다. 같은 마음을 확인 하는 일은 너무나 즐거워서 계속해서 여러 문장들을 맘 밖으로 내보내며 더 많은 기쁨을 누린다. 그런데 그렇게 수많은 문장을 쏟아내다 보면, 실수가 나오기 쉽다. 그건 나와 가까운 사람이건 아니건 언제든 상대방을 실망시킬 수 있다. 신나게 말하다가 한 번의 실수를 저지르고 나면 이내 주춤하고 몸과 마음을 다시금 진정시키기 급급하다.


어린 날 이런 실수들을 저지르며, 자연스럽게 ‘침묵’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침묵’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침묵’이 전하는 메시지를 활용하고 싶었다. 꼭 소리 내어 표현하는 것만이 의사소통의 방법은 아니다. 내가 나 자신에게 말을 걸 땐 고요하게 이루어지기도 한다. 상대방의 말에 동의한다는 표현은 침묵으로도 가능하고, 반대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표현 또한 침묵으로 가능하다. 세라 메이틀런드의 ‘침묵의 책’은 내가 고민해온 것 보다 깊게 침묵에 대해 고찰한다.


첫 번째 문제는 ‘침묵’이라는 단어 자체가 명확히 정의 내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침묵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조사해보면 잘 안다는 범위가 매우 방대하다. 사전적 정의마저 모호하다. 옥스퍼드 사전에 따르면 ‘침묵’은 모든 소음의 부재와 말의 부재 둘 다를 뜻한다. (중략) ‘나는 저녁 내내 조용했다’ 라는 말은 시끄러운 파티에 있었지만 나 자신은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 될 수도 있고 ‘혼자 집에서 텔레비전을 봤다’라는 뜻일 수도 있다. 아니면 ‘나는 차분하고 평화로운 곳에 있었으며 바람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라는 뜻일 수도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점점 나는 완벽한 ‘침묵’에는 자신이 없어진다. 지금처럼 SNS속에서 살아가고 재빠르게 바뀌는 세상을 벗어날 순 없다. 침묵이 많은 사람은 뒤처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도 없다. 물론 꼭 앞서거나 튀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더 아름다운 소통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침묵.HEIC


또 다른 책 김찬호의 ‘눌변’에서는 요즘 세상을 (비록 2016년의 책이지만) 연결의 과잉, 관계의 결핍의 시대라 말한다. 개인 간의 소통에서도 문자 교환이 점점 더 빈번해지고 이 속도가 너무 빠른 것이 서로 간의 연결 선을 많이 이어 놓았지만 실제적인 관계는 결핍된 아이러니한 상황이라 해석한다.


반면 글은 충분히 다듬어진 생각을 풀어내는 작업이다. 그런데 요즘의 미디어 환경에서는 떠오르는 생각들을 아무 여과 없이 글로 쏟아내고 거기에 즉흥적으로 댓글을 달기 일쑤다. (중략) 문학은 더듬거리며 허우적거리며 자기 말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닐지. 마치 모든 것을 처음으로 말하듯이 그토록 어렵게. 눌변이란 침묵이 최선이라는 걸 알면서도 침묵할 수 없는 자들의 서투름이라고나 할까.


침묵할 수 없는 자들의 서투름. 이 말에 공감한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한 편으로 이에 해당하는 것 같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내가, 침묵하기 어려운 내가, 생각을 다듬고 말을 가꿔 표현하고 그것을 차곡차곡 모아두기 위해. 글을 하나하나 올리며 많은 이들에게 불편하지 않고 상처 되지 않는 문장들이 되길 바라며 써 나간다. 이렇게 글을 쓰는 건, 평소 말하기에도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하다. 충동적으로 나가던 말들 중, 몇 가지라도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곤 한다. 아직은 말하기도, 침묵도 다 서툴러서 여기저기 부딪히고 다니지만 내가 바라는 어른의 모습으로 성숙해지길 혼자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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