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 라디오에서는 벌써 캐롤이 연달아 나온다. 하하하 웃는 사연들을 듣다 보면 집안 일도 금새 끝이 난다. 창문을 열면 갑자기 떨어진 기온에 몸이 바짝 곤두서지만, 겨울냄새가 주는 상쾌함이 좋기도 하다. 오늘은 아기 손수건들을 모두 모아 빨고 널었다. 건조대를 가득 채운 손수건과 타이밍 맞게 비치는 햇빛을 보고 앉아 있자니 행복하다. 태동하는 아기와 함께 저 손수건으로 우유를 닦고 침도 닦고 목욕할 때 배도 가려줄 상상을 해보니 큼큼한 아기냄새가 얼른 맡고 싶기도 하다.
아기를 먼저 낳고 기르는 선배들은 마지막 여유와 한가함을 최대한 즐기라고 조언해준다. 아기가 세상에 나옴과 동시에 혼자만이 즐기는 잠깐의 틈은 기대할 수 없다고. 늘 계획대로 되지 않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르게 될 거라고. 아주 단호한 얼굴로 주의를 주고 떠나곤 한다.
그 말이 맞을 거다. 아마도 지금 같은 고요함과 지금 같은 자유로움은 없을 거다. 그렇지만 퇴사를 하고, 하루하루 무얼 하지 무료하게 보낸 하루들을 떠올리면 오히려 아기를 품게 된 지금이 훨씬 좋았다. 또 몸이 많이 무거워지면서 조금의 운동에도 숨이 차는 요즘의 나를 보니, 바쁘더라도 가뿐하게 뛰어다니며 아기를 안아 재우고 때로 커피 한 잔 호록 마시는 찰나의 기쁨을 어서 겪고 싶다. 아마도 아기를 낳은 다음 지금 쓰는 이 글을 보면, 철이 없었다, 넌 아무것도 모른다며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이제 한달 하고도 며칠정도가 더 남았다. 지금부터는 아기와 나의 협동이 빛나야 하는 시간 같다. 아기도 힘든 점이 생길 거고, 그걸 오롯이 내가 함께 느끼며 최선을 다해 아기를 도와야 한다. 배에 있는 동안 좋은 영양분을 챙길 수 있도록 해주고, 나오는데 어렵지 않도록 미리미리 운동도 해 두고, 결정의 순간엔 힘도 잘 주어야 한다. (아직 자연분만에 성공할지 모르겠지만!)
건조대에 널려진 손수건이 겨울 햇볕에 반짝인다. 아마도 몇 장 정도는 내 눈물을 닦는데 쓰일 수도 있지만, 그 시간을 담담히 기대하고 기다려본다.
갑자기 추워진 오늘, 너를 만나는 겨울이 정말로 온 것 같아 나는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