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렇겠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나와, 혼자 있는 내가 사뭇 다르다는 기분이 든다. 아무리 회사가 바쁘고 야근을 해도 가끔은 집에 바로 가지 않고 혼자만 가는 카페에서 책을 몇 장 읽거나,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디저트를 먹으며 행복했고, 그럴 때 내 사적 생활이 충족되어 만족감을 느꼈던 것 같다.
결혼을 하고 나니 한동안은 남편과의 시간에 집중하는 것이 행복했고 덕분에 잠시 내가 누리던 사적 생활을 잊고 지냈다. 회사를 다니고, 저녁을 보내고, 주말을 함께하며 새로운 경험과 시간들을 쌓았고 이것들이 ‘우리’를 만들어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다 이렇게 아기를 갖고 아주 오랜만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예전에 내가 불쑥 나왔다. 나는 시를 좋아했다. 문학과 지성사의 시집을 하나씩 모으는 게 좋았고 뜻을 알 수 없는 문장들이 한 페이지에 모여 어떤 기분을 들게 하는 것도 좋았다. 시인은 왜 늘 우울해 보일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우울한 날이면 시집을 꺼내 들었다. 어려운 문장 속에 담긴 의미를 헤아리는 게 어쩌면 진짜 사람들의 속마음을 헤아리는 것보다 쉬울 수도 있다는 생각에 위로 받기도 했다.
‘허연’ 작가의 <오십 미터>라는 시집 속 ‘외전2’라는 시는 모서리를 접어두고 여러 번 읽은 기억이 있다. 오랜 친구와 설렁탕 집에 마주앉아 “너만 외롭고 처량하냐 나도 그렇다” 라며 소주 한 잔 따라 마시고 집으로 헤어지는 기분이 든다. 내 안부를 물어줄 그 무엇도 만들어 놓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생’을 살아내고 싶은 작가에게 공감한다.
언젠간 혼자인 것 같은 기분이 들거나,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나도 그래 임마 하고 위로 하고싶은 사람이 생각날 때를 위해 시를 남겨둔다.
무엇이든 딱 잘라서 말하는 게
갈수록 어려워진다
일 없는 늦은 저녁
설렁탕 한 그릇 함께 먹을 사람조차
마땅치 않을 때
사는 건 자주 서늘하다
나이 들어 하는 사랑은
자꾸만 천한 일이 되고
암 수술하고 누워 있는 동창에게서
몇 장 남지 않은 잡지의
후기가 읽힐 때
생은 포자만큼이나 가볍다
수십 년 전 방공호 속에서
초현실주의 시를 읽었던 선배들은
이렇게 가볍지는 않았을까
바흐를 들으며
페노바르비탈을 먹었다는 그들은
지리멸렬한 한 세기를 사랑했을까
나는 아직도 생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상처에 대해서 알 뿐
안부를 물어줄 그 무엇도 만들어놓지 못했다
대폭발이 있었다던 오래전 그날 이후
적의로 가득 찬 광장에서
생이여, 넌 어떻게 견뎌왔는지
기찻길에서 풀풀 날리던 사랑들은
얼마나 많이 환생하고 있는지
생각이 아프면 내가 아프다
생이여!
-[외전2]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