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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루기의 사생활_1] 사는 건 자주 서늘하다

by 스루기

누구나 그렇겠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나와, 혼자 있는 내가 사뭇 다르다는 기분이 든다. 아무리 회사가 바쁘고 야근을 해도 가끔은 집에 바로 가지 않고 혼자만 가는 카페에서 책을 몇 장 읽거나,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디저트를 먹으며 행복했고, 그럴 때 내 사적 생활이 충족되어 만족감을 느꼈던 것 같다.


결혼을 하고 나니 한동안은 남편과의 시간에 집중하는 것이 행복했고 덕분에 잠시 내가 누리던 사적 생활을 잊고 지냈다. 회사를 다니고, 저녁을 보내고, 주말을 함께하며 새로운 경험과 시간들을 쌓았고 이것들이 ‘우리’를 만들어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다 이렇게 아기를 갖고 아주 오랜만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예전에 내가 불쑥 나왔다. 나는 시를 좋아했다. 문학과 지성사의 시집을 하나씩 모으는 게 좋았고 뜻을 알 수 없는 문장들이 한 페이지에 모여 어떤 기분을 들게 하는 것도 좋았다. 시인은 왜 늘 우울해 보일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우울한 날이면 시집을 꺼내 들었다. 어려운 문장 속에 담긴 의미를 헤아리는 게 어쩌면 진짜 사람들의 속마음을 헤아리는 것보다 쉬울 수도 있다는 생각에 위로 받기도 했다.


IMG_3238_jpg.JPG <나 혼자서만 다니던 카페는 마치 대피소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허연’ 작가의 <오십 미터>라는 시집 속 ‘외전2’라는 시는 모서리를 접어두고 여러 번 읽은 기억이 있다. 오랜 친구와 설렁탕 집에 마주앉아 “너만 외롭고 처량하냐 나도 그렇다” 라며 소주 한 잔 따라 마시고 집으로 헤어지는 기분이 든다. 내 안부를 물어줄 그 무엇도 만들어 놓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생’을 살아내고 싶은 작가에게 공감한다.


언젠간 혼자인 것 같은 기분이 들거나,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나도 그래 임마 하고 위로 하고싶은 사람이 생각날 때를 위해 시를 남겨둔다.



무엇이든 딱 잘라서 말하는 게

갈수록 어려워진다

일 없는 늦은 저녁

설렁탕 한 그릇 함께 먹을 사람조차

마땅치 않을 때

사는 건 자주 서늘하다


나이 들어 하는 사랑은

자꾸만 천한 일이 되고

암 수술하고 누워 있는 동창에게서

몇 장 남지 않은 잡지의

후기가 읽힐 때

생은 포자만큼이나 가볍다


수십 년 전 방공호 속에서

초현실주의 시를 읽었던 선배들은

이렇게 가볍지는 않았을까

바흐를 들으며

페노바르비탈을 먹었다는 그들은

지리멸렬한 한 세기를 사랑했을까


나는 아직도 생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상처에 대해서 알 뿐

안부를 물어줄 그 무엇도 만들어놓지 못했다


대폭발이 있었다던 오래전 그날 이후

적의로 가득 찬 광장에서

생이여, 넌 어떻게 견뎌왔는지

기찻길에서 풀풀 날리던 사랑들은

얼마나 많이 환생하고 있는지


생각이 아프면 내가 아프다

생이여!


-[외전2]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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