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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린 아가씨는 나를 키우고

by 스루기

“공룡소리 난다, 너가 먼저 들어가 봐”

“엄마! 안에 안 무서워 들어와도 돼 얼른 와”


지금까지도 나에게 엄마는 겁이 많고 실수도 많고 힘도 약하고 만화를 좋아하는 소녀 같은 사람이다. 엄마를 보고 있으면 내가 과연 저렇게까지 귀엽게 나이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한번씩 든다. 마치 예전부터 엄마는 그대로인데 나만 점점 나이가 들고 사회에 찌들고 영악해지고 물든 기분이다.


핸드폰에 엄마는 걱정인형으로 저장되어 있을 만큼 나에 관해서라면 걱정이 참 많은 사람이다. 그런 엄마에게 내 임신은 거의 핵폭탄급 기쁨과 동시에 걱정이 분명했다. 뒷산이 있는 한가한 엄마네 집에서 2주 정도 머무른 적이 있는데, 밤에 아무리 더워도 내가 화장실 가다가 선풍기 선에 넘어라도 질까 봐 선풍기도 안 켜고 잤다고 하니 이제는 그냥 웃음이 났다.


그럼에도 엄만 엄마네 뒷산처럼 늘 의지가 되었다. 나보다 더 많이 흘리고 깨뜨리며 요리하지만 엄마가 해준 밥을 먹으면 몸이 금새 따뜻해 지고 아픈 곳도 나았다. 눕는 자세가 불편할까 봐 다리를 올려주고 쿠션을 대어주는 손 길 몇 번이면 초저녁부터 잠이 솔솔 왔다. 한 번은 임신 호르몬 때문인지 밥을 먹다 갑자기 눈물이 난 적이 있는데, 그 때도 엄마는 원래 눈물이 잘 나는 거라며 식은 밥을 다시 데워주며 옆을 지켜주었다.


엄마네 머무르던 중 하루는 집에 혼자 있게 된 적이 있다. 심심해서 어릴 적 앨범을 꺼내 보고 있었는데 그만 왈칵 눈물이 나버렸다. 예전에도 수 없이 열어봤던 아기 때 앨범인데 그 때마다 시선은 아기인 나에게만 갔던 것 같다. 늘 엄마는 이렇게 귀여운 아기가 없었다, 목에 힘도 좋고 금방 뒤집기도 했다며 당사자인 나에게 자랑을 하곤 했는데. 그 날은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엄마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나보다도 어린, 말 그대로 여린 아가씨가 서있었다.


뽀얀 얼굴에 곱슬곱슬 파마로 멋을 낸 여자에게 아기는 참 무거워 보였다. 결혼하고 난생 처음 지방으로 내려가 아기를 낳으며 많이 울었을 여자. 친정도 멀고 할 줄 아는 음식도 몇 없어서 마음 속, 뱃속을 다 앓아버렸던 여자. 잘 먹지 않아 자주 아팠던 아기를 안고 종종 걸음으로 병원을 다녀왔을 여자. 그럼에도 아기를 안고 있는 여자의 얼굴은, 단단하면서도 행복해 보였다. 여자에게 아기는 어떤 의미였을까?


핀터레스트_산 여자.jpeg <출처: 핀터레스트>


엄마는 신기한 존재이다. 나보다 한 없이 여리고 허술하지만 나보다 한참은 굳건하고 강하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멈추고 밖을 쳐다보며 눈물을 참는다. 지금은 나도 뱃속의 작은 아기에게 걱정 많고 눈물 많은 엄마이지만 이 다음에 아기가 나를 떠올렸을 때 잠깐 쉬었다 갈 수 있는 산이 되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엄마에게도, 아기에게도

나는 산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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