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좁은 문

by 박시룡

크리스천은 도덕마을이 세속적인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전도자의 안내를 받아 좁은 문으로 향했습니다. 얼마나 걸었을까요? 마침내 크리스천은 좁은 문에 도달하게 됐습니다. 크리스천이 주저 없이 좁은 문을 두드리는 순간 '선의'가 문을 열어 물었습니다. "누구를 찾아오셨나요?" "예, 저는 멸망의 도시를 떠나 시온 산으로 가는 길입니다. 저 같은 죄인을 받아 주시는 가요?"라고 크리스천이 말하자 선의가 온 마음을 다해 성경말씀(요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을 들려주었습니다.

좁은 문2.jpg 좁은 문에서(2022)

선의는 다시 그를 문 안으로 잡아당기며 말했습니다.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이 문에서 좀 떨어진 곳에 바알세불의 성채가 있는데, 거기서는 이 문을 지나는 순례자들을 막아 보려고 화살을 쏘아댄답니다. 하지만 안심하세요. 이제 저 앞에 보이는 좁지만 곧은 길로 가시면 됩니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닦아 놓은 길이지요.

저 앞을 보십시오. 저쪽으로 뻗어 있는 좁은 길이 보입니까? 그 길이 이제부터 당신이 가야 할 길입니다. 당신의 조상들과 많은 예언자들, 그리스도와 또 제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길인데, 마치 자로 그어 놓은 것처럼 똑바로 닦여진 길이며 당신이 이제부터 가야 할 길입니다." "제가 짊어지고 있는 이 짐이 너무 무거운데, 혹시 이 짐을 벗을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 비록 당신의 짐이 무거울지라도 구원의 장소에 이를 때까지는 참고 그대로 지고 가십시오. 거기에 이르면 당신의 짐은 저절로 당신의 등에서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크리스천은 허리띠를 동여매고 선의와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선의.jpg 선의에 의해 시온 산 길로 안내받고 있는 크리스천( 2022)

좁은 문에 들어선 황새

일반 다수의 생각은 황새를 자연에 풀어놓으면 복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해마다 황새가 그 사람들의 생각대로 자연에 뿌려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외쳐보지만, 전혀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항상 다수의 선택이 옳은 길은 아닙니다. 생물 다양성 회복이 없인 황새만 날린다면 우리 땅이 회복되지 않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황새들은 다시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내가 복원시킨 황새들이 너무 불쌍합니다. 도와주고 싶어도 다수의 생각이 그렇다 하니, 내 황새의 짐을 내려놓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근대 인류가 발견한 최선의 정치 체제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민주주의일 것입니다. 근대 이후를 살아온 우리는 민주주의 원리를 따라 '다수의 선택이 언제나 정의'라는 견해를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수의 생각이 모든 분야에 그대로 적용시킬 수는 없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는 둥글며,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그의 이론을 발표했을 때 누구도 믿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 대다수의 생각은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우리나라 황새복원도 마찬가지입니다. 황새복원은 연구 사업인데, 다수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보니 참 많이 어렵습니다. 황새들의 희생이 불가피할 것 같아 늘 마음을 조아리며 삽니다.


황새가 내 나라에 많이 번식하고 살았을 때는 내가 이 땅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황새들이 어떻게 이 나라 땅에서 번식하며 살았는지에 대한 기록도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황새들이 번식을 끝나면 어디로 가는지 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나는 자연과학자로 과거 우리나라 황새들이 어디에서 왔으며, 그들이 해 뜨는 동방의 나라에 살다가 어디로 갔다가 다시 돌아왔는지를 밝혀보려 했습니다. 그리고 자연과학자로서 그 가설 하나를 설정했습니다.


'한반도 땅에 한민족이 살기 이전, 그들은 러시아 아무르 강가 습지에서 번식을 했다. 동방의 나라에서 아름다운 습지를 발견하고 한 두 마리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한민족이 논을 경작하면서 논습지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그 황새들은 사람들이 경작하는 마을까지 날아와 민가가 있는 나무 위로 올라가 둥지를 짓고 번식하며 살았다. 그리고 그 황새들은 다 자란 새끼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날아갔다. 아마 중국의 양츠강이 그들의 겨울 서식지였을 것이다. 물론 겨울이 지나면 다시 한반도로 날아와 번식을 하며 살았다. 아마 수천 년을 이렇게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사람들은 농산물 생산을 늘리기 위해 농약을 뿌리기 시작했고, 수천 년을 살아왔던 땅에서 불과 100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황새들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도랑.jpg 민가 근처 논습지에서 살았던 한국 황새들(2019)


내가 황새복원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나의 이론을 다수의 국민들을 상대로 꼭 증명해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과학자라면 다음 연구자를 위해 기록으로 남겨주는 것이 도리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연구는 나에게 너무 좁은 문이었으며 외로운 순례길이었습니다.


2014년 봄이었습니다. 내가 관리하고 있던 황새 사육장(충북 청원군)에서 2년생 암컷 황새가 탈출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황새를 그곳 강이름을 따서 미호라고 불렀습니다. 미호는 탈출이라기보다는 사육사가 먹이를 공급하던 중 문이 조금 열렸나 봅니다. 잠깐 사이에 미호는 열린 문틈사이로 빠져나오자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7개월 후 어느 겨울, 경남 하동에서 발견되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제보자는 다리에 붙어있는 가락지를 보고 내게 알려왔습니다. 그 이듬해 초봄, 사육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충북 진전의 백곡천으로 돌아왔습니다. 충북 진천은 우리나라 과거 황새의 번식지 중 한 곳이었습니다. 내 가설이 맞다면 그곳에서 번식하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5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미호는 그곳에서 3개월도 채 버티지 못하고 농약 중독으로 사라진 뒤 미호의 행방은 더 이상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농약 중독 인걸 어떻게 알았냐고요? 농사철이라 근처에서 동네 주민이 풀약이라고 하면서 제초제를 뿌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미호가 날았던 장소에서는 이미 풀들이 노랗게 변해있었고, 그 옆에는 빈 농약병들이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내게는 이 일이 노아의 방주가 됐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물로 심판을 내리자 노아는 물이 줄어들었는지 보려고 맨 먼저 까마귀 한 마리를 바깥으로 내보냈습니다. 노아의 이런 시도는 비둘기로 이어졌습니다. 비둘기가 올리브 잎을 부리에 물고 오는 것을 보고 노아는 땅 위에서 물이 빠진 것을 알았습니다. 아직 내 황새들을 바깥으로 내 보낼 시간이 아님을 탈출한 미호가 알려 준 셈입니다. 노아의 방주는 하나님이 물로 심판하셨지만, 사람들은 이 땅에 농약과 제초제를 뿌려 황새마저 발붙일 곳이 없는 땅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직후 어느 조류학 전공 교수님이 내게 말했습니다. "박교수! 우리나라에선 황새를 복원하는 일은 신만이 가능한 일인데, 너무 힘든 일을 하고 있어 참 안타깝습니다. 부디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하나님께 맡겨지길 소원하면서 다시 순례길을 나섰습니다.


십자가 언덕 위에서

크리스천은 무거운 짐을 지고 구원의 언덕에 올랐습니다. 언덕바지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곳에는 십자가가 서 있었습니다. 조금 떨어진 아랫동네에는 무덤이 입을 딱 벌린 채 놓여 있었습니다. 크리스천이 십자가 위로 막 올라가려는 순간 짐이 그의 어깨로부터 풀어져 등에서 벗겨지더니 계속 미끄러져 내려와 마침내 무덤의 입구 속으로 굴러 떨어져 다시는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주께서 괴로움을 당함으로 내게 평안을 주셨고 주께서 목숨을 버리사 내게 영생을 주셨나이다"


십자가 앞에 이르자마자 그토록 무거웠던 짐을 벗어던지고 몸이 홀가분하게 된 크리스천은 무척 놀란 모습으로 한동안 우두커니 서서 신기하다는 듯이 여기저기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기쁨에 넘쳐 머릿속의 샘물이 터지면서 눈물이 흘러 내려와 두 뺨을 촉촉이 적시는 것도 느끼지 못한 채 십자가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 서 있었습니다.


이처럼 눈물을 흘리며 십자가를 바라보고 서 있을 때 광채를 발하는 세 사람이 그에게 다가와 "평안할지어다"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사람은 "너의 죄를 사함 받았다"라고 말해 주었고, 두 번째 사람은 크리스천의 누더기 옷을 벗기고 깨끗한 새 옷으로 갈아입혀 주었으며, 세 번째 사람은 크리스천의 이마에 표를 달아 주면서 봉인된 두루마리 한 개를 그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그는 크리스천에게 길을 가면서 두루마리에 적힌 내용을 읽고 천국문에 이르렀을 때 그것을 제시하라고 말해 주고는 다른 두 사람과 함께 떠나가 버렸습니다.

십자가와 세천사.jpg 십자가 언덕(2022)

태초에 있었던 소리

자연과학자로 박쥐에 대한 초음파연구를 했을 때, 나는 기쁨과 희열을 만끽했습니다. 평생 살아오면서 내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박쥐들은 초음파로 먹이를 찾고, 장애물을 분간합니다. 내가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했던 흡혈박쥐는 초음파를 주고받으며 서로 대화를 합니다. 그 초음파를 초음파 탐지기로 처음 들었을 때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와 같은 소리로 내게 들렸습니다. 멀리서 나방이 날개를 펄럭거리며 다가 오자 반향음은 높낮이를 재빨리 바꾸었습니다. 거의 한 옥타브를 차이를 두고 피치를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습니다. 박쥐는 소리로 한밤중에 스트로브(섬광등)를 켜고 춤추는 사람들이 깜빡이는 빛에 따라 순간 정지된 듯해 마치 구분 동작의 연속처럼 보이는 세상을 보고있습니다. "아, 하나님은 태초에 이런 소리도 만드셨구나!" 오직 인간만 들을 수 없는 이 소리에 환호했습니다. 이것을 듣고 하나님의 음성, 내게도 들려줄 수 있다는 확실한 믿음을 갖습니다.



이타행동.jpg 소 발굽 앞에서 대화하는 흡혈박쥐(1988)


행성 위의 여행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또다시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산에 오르면서 그걸 더 깊게 느껴집니다. 무더웠던 계절에 울던 매미소리는 귀뚜라미 소리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로 살면서 소리의 바뀜도 대기 중 미세한 습도의 차이가 우리가 사는 이 행성의 생물들의 삶도 바꾸어 놓은 세상의 이치를 깨닫습니다. 태양의 중심을 돌던 이 행성은 무더움의 절정을 알렸던 말복이 지나자 습한 공기가 한결 상쾌함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입니다.


산마루 넓은 바위에 누웠습니다. 가을 하늘이 제법 높지만 머리 위로 흘러가는 구름은 금방 내 얼굴을 스쳐 형상을 자꾸 바꾸어가고 있습니다. 아니 구름이 스쳐간 게 아니고 내가 타고 있는 이 행성이 움직인 게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왜냐고요? 내가 잠시 머물고 있는 이 행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초당 30km, 그리니까 대략 시속 100,000km 속도로 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지구라는 이 행성은 나를 잡아당기는 힘, 즉 지구의 중력이 있다는 게 참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 중력이 없었다면 이미 나는 지금 태양을 돌다가 떨어져 이 우주에서 미아 신세가 됐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이 행성에는 나만 타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내 옆에서 울고 있는 귀뚜라미도 타고 있고, 하늘 높이 비행하는 말똥가리, 나뭇가지에 매달려 열매를 따 먹고 있는 개똥지빠귀도 타고 있었습니다.


내가 타고 있는 이 행성의 승무원은 하나님입니다. 이 승무원은 나를 목적지인 천국에 안전한 도착을 위해 책임을 지신 분입니다. 그래서 한시도 내 곁을 떠난 적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가끔 승객을 가장한 사탄은 행성 위에 타고 있는 승객들을 유혹합니다. '지루한 여행만 하지 말고 신나게 놀고, 물질과 권력, 세상의 진기한 것들에 취해보라'합니다. 특히 자연과학자인 나에게 '학문적 명예욕도 누려보라'라고 합니다. 사실 사탄에 홀려 천국 문으로 가기 전에 이 행성에서 떨어져 죽은 승객들이 참 많았습니다. 성경은 '사탄은 우리를 죄에 빠트리고 결국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좌절의 학문연구

나는 독일에서 귀국하고, 동물행동학 교수로 제법 잘 나갔던 교수였습니다. 그때 생각했던 것이,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는 자연과학자로 후학들이 읽어 볼 수 있는 저서를 집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공부하고 왔던 독일 교수님의 동물행동학 책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생물학 중에서 동물행동 분야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소개됐을 때였습니다. 집필을 다 끝내고 책이 발간되었습니다. 갑자기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교수님의 출간물이 표절로 배포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지만, 문제는 그 책 속의 그림들이었습니다. 내가 공부했던 교수님의 책에서 그림을 갖다 썼기 때문에, 나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그림의 컷들을 새로 그려 보려고 생각했었습니다. 새로운 창작물로 다시 그리려면 시간도 많이 소요되고 그림 그리는데 책정된 돈이 따로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20여 장의 그림들이 표절로 인정되어 표절 교수로 낙인찍혀 살아가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자연과학자로 너무 큰 시련이자 상처였습니다. 학문적 명예욕만 쫓아 달려온 결과가 이렇게 참담한지 몰랐습니다. 십자가 언덕에 섰습니다. 그리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주님께 살려달라 애통한 심정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분은 나에게 먼저 황새의 짐부터 내려놓으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의 말씀을 붙들라 하셨습니다. 시편의 말씀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로 주님은 날 위로하셨습니다.


우리 죄를 지신 주님, 성경에는 예수님이 중풍 병자, 혈루병 여인, 문둥 병자에게 "병을 치료해 주시면서 네 죄가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선포하시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그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서기관들이 예수가 신성을 모독을 했다고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감히 죄를 사할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그들의 질문과 불평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몰랐던 진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지금 혈루병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 듯 하나님을 붙듭니다. 그리고 그가 내 죄를 사해 주시고 말씀해 주십니다. "이제 편안히 가라". 그리고 나는 이 행성에서 내가 연구하는 동물들과 함께 다시 순례의 여행을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혈루병 여인 2.jpg 혈루병 여인(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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