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장 죽음의 강

by 박시룡

삶과 죽음의 경계가 있나요? 그럼 삶과 죽음의 거리는 어떻게 되나요?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은 죽음이라는 강을 그 경계로 설정했습니다. 실제로는 경계가 없습니다. 다만 생물학적으로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 인간은 임종 직전의 사람을 대할 때 그져 숨이 넘어가 고개를 아래로 떨구는 그 순간을 삶과 죽음의 경계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에겐 경계가 없고 경계도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살아서 믿음으로 내 몸속의 새 생명 그대로 영속되도록 만드셨습니다. 그것을 예수께서 십자가의 부활과 다시 오실 것을 약속으로 확증해 주셨습니다.



마침내 크리스천과 소망은 죽음의 강 앞에 도달했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보여요. 한 치 앞도 모르겠어요."

"크리스천 형제, 그리스도의 믿음이 당신의 마음에 평안을 가져오게 해 봐요! 그분이 당신을 건너게 하실 거요. 당신이 하려고 하면 안 돼요."

강물은 다시 강한 바람과 매서운 파도로 출렁거렸습니다.

"크리스천~! 크리스천! 이것은 죽음의 강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건너야만 해요, 다른 길은 없습니다."

"소망 ~! 소망~! 나 가라앉고 있어요! 나는 건널 수가 없어요!"

"아닙니다, 크리스천 형제! 밑에 땅이 느껴져요, 우리는 건널 수 있어요!"

"저기 문이 보이는데... 내 죄의 짐들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나의 죄들이 나를 가라앉게 하고 있어요. 난 할 수 없어요!"

"아니에요, 크리스천, 당신의 죄의 짐들은 이미 없어졌어요. 눈을 떠서 봐요! 당신은 건너갈 수 있어요!"

"아닙니다. 너무 깊어 나는 버림받았어요, 내 죄가 너무 컸나 봐요!"

"당신은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저길 봐요! 하나님이 당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가 당신에게 약속하셨어요."

"그... 그래, 다시 보입니다. 건너편이 보여요, 저기... 저기요!"

이렇게 두 순례자는 죽음의 강을 건너 천국문에 무사히 당도했습니다.

두 천사가 마중 나왔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여러분들을 이제 천국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아니 저 높은 천국까지 어떻게 올라갑니까?"

"이제 여러분에게는 천국으로 가는 언덕의 높고 낮음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미 강물에 육신을 다 놓고 왔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듣고 크리스천과 소망은 펄쩍 뛰었습니다. 정말 육신의 무게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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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강을 건너는 두 순례자(2022)


황새 '푸르미'의 죽음

죽음의 강을 목전에 두고 내 곁에서 죽은 황새 '푸르미'가 생각납니다. 동물학자로 자연에서 동물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야생동물들의 사체는 발견되지만 임종을 하는 모습은 보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내가 '푸르미'를 독일 발스로데에 있는 세계조류공원(Welt Vogel Park)으로부터 기증받은 것은 황새복원 일을 처음 시작했을 무렵이었습니다. 독일은 증식 가능한 개체를 4마리를 주면서 나이가 가장 많은 수컷 푸르미를 끼워 보냈습니다. 그때 푸르미의 나이가 25살이 훨씬 넘었습니다. 황새의 평균 수명을 30년으로 본다면 노년을 맞는 황새였습니다.


푸르미가 독일로 옮겨진 것은 러시아 아무르 자연 보호구에서 새끼 때 독일로 왔습니다. 그 당시 독일 발스로데 조류공원은 세계적 멸종위기 1급 보호조 한국 황새를 러시아로부터 도입해 우리보다 앞서 인공번식 성공을 거둔 상태였습니다. 그때 푸르미는 종조로 사용하다 보니, 나이가 들어 우리나라에 왔던 것입니다.


푸르미 나이가 28세였을 때부터 겨울이 되면 먹이양이 줄어들었고, 1미터 높이의 횃대에도 제대로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특히 바깥날씨가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는 추운 날씨에는 먹이를 먹지 못해 기력이 쇠잔해져 바닥에 주저앉아 있곤 했습니다. 그래서 푸르미는 겨울철이면 히터를 끼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도 이젠 더 이상 버틸 기력도 없었는지, 죽음을 맞이하기 20일 전부터 정상적인 먹이양보다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을 보고 임종을 직감했습니다.


깃털이 많이 빠져 있었고, 깃털 속에 가려진 근육량도 엄청나게 줄어들어 손으로 만지면 뼈만 잡힐 정도로 앙상해졌습니다. 푸르미는 죽기 일주일 전부터는 거의 먹이를 먹지 않았습니다. 아니, 죽기 위해 곡기를 끊었다고 해야 맞을 겁니다. 긴 다리를 접고 사육실 한쪽에 주저앉은 채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죽기 하루 전에는 고개가 아래로 처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사육실에 들어가 몸을 만져도 아무런 저항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눈이 자꾸 감기는 모습을 본 것이 숨이 끊어지기 6시간 전이었습니다. 결국 푸르미는 만 32세로 저세상으로 떠났습니다. 아마 사람의 나이로 치면 80세 정도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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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푸르미'와 작별(2016)


죽음의 강을 목전에 두고 나도 푸르미처럼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볼 때가 많아졌습니다.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겠죠. 그러나 무엇보다 주변에서 치매로 요양사의 간병을 받으며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어쩌거나 요즘은 태어나는 것보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느냐가 더 중요할 때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성경 시편(73:4-5)'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이 재앙도 없나니'말씀이 내게도 간절한 기도가 됩니다. 존 번연이 죽음의 강에서 소망을 등장시킨 이유도 크리스천들은 누구나 소망을 갖고 살기를 바람에서였을 겁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죄가 죽음을 두려운 존재로 만들었다고... 그러나 생명이신 분의 단 한 번의 승리로 죄와 죽음이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고전 15:57). 나는 지금 그분의 생명을 오롯이 내 몸속에 담아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지금 내 육신은 온데간데없고 구속한 주만 내 속에 거하심으로 죽음의 강을 목전에 두고 마지막 성 이시돌 순례길을 걷고 있습니다.


나귀 타신 예수

마지막 성 이시돌 순례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조형물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수많은 군중들과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했을 당시는 유월절이었습니다. 유월절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하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였습니다. 따라서 장차 현재의 문제들에서 해방되리라는 유대인의 소망은 이 시기 매우 강했으며, 로마는 폭동 진압이 필요한 경우를 대비해서 예루살렘에 군대를 주둔시켰습니다. 군중들은 예수님을 이런 소망의 대상으로 대함으로써, 이 선생이 로마에 대항하여 그들을 이끌 수 있는 메시아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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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 타신 예수(2022)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호산나!"를 외치는 군중들에 둘러싸인 예수님은 완전히 다른 데 집중된 듯 보였습니다. 그분은 흥분한 군중들을 보시지 않았습니다. 손을 흔드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분은 소음과 동요 너머로 자기 앞에 닥쳐올 일을 보셨습니다. 배반과 고문과 십자가형과 죽음으로 이어질 고난의 여정을 보셨습니다.


예수가 있었지만 평온한 수용도 함께 있었습니다. 변덕스러운 인간의 심령에 대한 통찰이 있었으나 넘치는 긍휼도 함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사랑이 임재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끊을 수 없는 친밀함에서 태동해 온 세상 모든 이에게 가닿는 끝없이 깊고 한없이 넓은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온전히 알지 못하시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분이 온전히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 나귀 타신 그리스도를 볼 때마다 나는 그분께서 내 모든 죄와 죄책과 수치를 다 보고 계시며 그분의 모든 용서와 자비와 긍휼로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순례길을 걷고 있는 나에게는 지금 주님은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너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눅19:30-31); 나는 아직 내 것이라 여겼던 것조차, '주께서 쓰시겠다'라는 이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기로 작정하며 부활하신 예수의 조형물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그분은 성경의 예언대로 3일 만에 부활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40일 동안 그분께 사형선고를 내린, 안나스나 가야바나 헤롯이나 빌라도에게 나타나시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어정쩡한 제자인 니고데모와 장례를 치러준 아리마대 요셉에게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내가 옳았지" 혹은 "내가 늘 그렇게 말하지 않더냐?" 식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그냥 시간 속에 깊숙이 숨겨진 사건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동산에서 낯선 이를 보았습니다. 글로보와 그의 친구는 엠마오 도상에서 낯선 이와 함께 걸었습니다. 제자들은 낯선 이가 들어오자 유령인 줄 알았습니다. 베드로와 도마와 나다나엘과 요한과 야고보와 다른 두 제자는 호숫가에서 자기들을 부르는 낯선 이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이토록 낯선 이로 임재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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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예수(2022)


엠마오의 사람들

엠마오의 두 사람이 낙심과 환멸에 찬 풀 죽은 모습으로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들은 오랫동안 로마의 통치하에 억눌려 살아왔습니다. 이들 앞에는 진정한 자유가 없었습니다. 그저 막연히 자유를 갈망했을 뿐, 그래서 예수를 만나고부터 희망을 품었습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 갈망해 온 자유를 이 나사렛 사람이 찾아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다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기대를 걸었던 그분은 로마인들에게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글로바와 친구는 낙담했습니다. 절망한 채 낙향길에 올랐습니다. 커다란 기대가 다시 한번 무너졌다는 생각에 글로바와 친구는 더욱 슬픔에 잠겼습니다. 예수님이 두 사람의 길동무가 됐지만 그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예수님이 죽었다가 바로 살아난 것처럼 알고 있지만 성경에는 그렇게 적고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사흘 동안 무덤에 누워 계셨습니다. 게다가 그 시신이 금방 없어질 것을 염려하여 무덤 앞에 큰 돌을 가져다가 봉인까지 했습니다. 3일이라는 시간은 육체마저 부패했다는 의미입니다. 엠마오의 두 사람은 모든 일이 부질없이 끝났으며 그것을 막을 길이 전혀 없다는 깊은 심증, 그것이 절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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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오로 가는 두 사람과 대화하는 예수(2022)


이렇게 절망 속의 두 사람의 심정을 주님은 환히 드려다 보시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우리 인간들의 절망이 무엇인지 체험을 통해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죽음과 무덤을 아시고, 우리의 유한함도 아셨습니다. 글로바와 친구는 이 낯선 사람이 결코 초면이 아님을 분명 느꼈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낯선 사람으로 남아 있기에는 그분은 이들을 너무 잘 아셨습니다. 그들은 이분이 세속 현자의 위로의 말도 건네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이 죽음과 썩어짐 보다 강하고 크다는 그분의 체험을 바탕으로 그 실존을 보게 하십니다. 이것은 오직 마음으로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는 '그들이 깨달았다'든지 '빛을 보았다'라고 적지 않았습니다. '그들 속에서 마음이 뜨거웠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불타는 마음은 글로바와 친구에게 뭔가 전혀 새로운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존재의 한가운데, 인간 실존의 중심에서 뭔가 죽음을 무장해제하고 절망을 무력화하는 것이 생겨났습니다. 단순히 새로운 관점, 새로운 삶의 환희, 새로운 자신감의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새 생명, 새 영혼으로만 묘사될 수 있었습니다. 요즘말로 쓰면 '그들의 마음속에 영적인 삶, 즉 영성이 시작되었다'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글로바와 친구는 이 낯선 사람을 자신들의 집에 들어와 저녁 식사를 함께 할 것을 청했습니다. 함께 앉아 먹는 자리에서 이분은 빵을 들어 축사하신 후 떼어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러자 이들은 이 손님이 바로 예수님, 죽어 무덤에 묻혔던 그 분임을 흔들리지 않는 확신으로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 확신이 찾아드는 순간, 예수님은 그들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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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바와 그의 친구(2023)


너무도 엄청난 일이 벌어졌습니다. 글로바와 친구가 빵을 떼시는 예수님을 알아본 순간 더 이상 새 희망의 조건으로 그분의 육체적 임재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과의 관계가 친밀해져 그분의 낯섦이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그분이 어찌나 가까이 오시는지 더 이상 희망의 근거로 그분의 육체적 현시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길에서 그분과의 대화할 때 태어난 새 생명이 영원히 자신들을 떠나지 않을 것이며,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가 다른 이들에게 '다 끝나지' 않은 이유를 전할 수 있는 힘을 주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그들이 즉시 돌아가 예수님의 다른 친구들에게 자신들의 체험을 말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천로역정의 죽음의 강을 목전에 두고 예수의 부활을 믿는 믿음으로 온전한 삶, 치유의 삶, 통합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안에서 행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우리 몸 안에서 행하셔서, 우리 몸 안에 사시는그분의 성령으로 말마암아 우리 몸도 그리스도의 몸처럼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롬 8:11, 메시지). 그분께서 죽으셨을 때 그분은 자신과 더불어 죄를 끌어내셨고, 부활하셨을 때 그분은 영원한 삶을 내 속에도 내려오게 하셨습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육신 속에 그리스도가 이미 우리 안에 살고 계십니다. 다만 크리스천으로 사는 삶의 '죽음의 강'은 이 육신을 강물에 흘려보내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분을 통해 우리 몸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이 우리 크리스천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더 명확해졌습니다.


글을 쓰는데 참고한 책들


성경전서(2003). 표준새번역 개정판. 대한성서공회

한영스터디 성경(2004), The NIV Korean-English Study Bible. Word of Life Press, Seoul

메시지 신약(2014). The Message: the New Testament(E. H. Peterson). 김수현, 윤종석, 이종태 번역. 복있는 사람

메시지 구약(2013). The Message: the Old Testament(E. H. Peterson). 이종태 번역. 복있는 사람

천로역정(2022). Pilgrim's progress (J. Bueyan). 최종훈 번역. 포이에마

천로역정(2018). Pilgrim's progress(J.Bueyan). 유성덕 번역. CH북스

천로역정(2020). The Pilgrim’s Progress(J.Bunyan). 박영호 번역. CLC

함께 걷는 천로역정(2016). 이동원. 두란노

성경배경주석(2010). The Bible Background Commentary. (J.H.Walton, V.H. Matthews, M.W. Chavalas & C.S. Keener). IVP

비전성경사전(2001). 하용조. 두란노

시작하는 그리스도인에게(2016). 이상학. 두란노

예수, 우리의 복음(2006). Jesus A Gospel(H.J.M. Nouwen). 윤종석 번역. 복 있는 사람

순전한 기독교(2014). Mere Christianity(C.S. Lewis). 장경철 이종태 번역. 홍성사

사도 바울(2009). Paul, The Apostle(J. Pollock). 홍종락 번역. 홍성사

예수를 믿으면 행복해질까(2019). 이철환. 생명의말씀사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한다(2023). The Reason for God(T.Keller). 최종훈 번역. 두란노

개미(2001). Les Fourmis(B. Werer) 이세욱 번역. 열린책들

신의 언어(2007). The Language of God: A Scientist Presents Evidence for Belief (Frencis S. Colin) 이창신 번역 김영사.

새, 우리들의 선생님(2001). The Birds Our Teachers(J. Stott). 이기반 번역, IVP

솔로몬의 반지(2000).Er redet mit dem Vieh, den Voegeln und den Fishen(K.Lorenz).

김천혜 번역. 사이언스북스

사회생물학(1992). Sociobiogoy(E.O.Wilson) 이병훈, 박시룡 번역. 민음사

과부 황새 그후(2004). 한국황새복원연구센터. 지성사

동물행동 이야기(2010). 박시룡. 자음과모음

황새, 자연에 날다(2014). 박시룡. 지성사

황새가 있는 풍경(2019). 박시룡. 지성사

끝나지 않은 생명이야기(2021). 박시룡. 곰세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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