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믿음을 가져보겠다는 의지를 갖고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내 학창 시절 화학 실험 시간이 생각납니다. 가는 시험관 안에 노란색의 액체가 담겨 있었습니다. 스포이드로 노란색 물방울을 그 시험관에 한 방울 씩 떨어트려 보았습니다. 한 방울, 두 방울... 다섯 방울, 아무런 색의 변화가 없던 시험관의 색깔은 여섯 번째 방울로 붉은색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색이 바뀌는 그 지점의 값을 역치(Threshold)라고 부릅니다. 작은 믿음은 색깔의 변화가 없었지만, 은혜라는 스포이드의 물방울을 시험관 안에 떨어트리는 순간 진정한 믿음으로 바뀌는 사람들을 내 주변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천로역정에서 존 번연은 작은 믿음의 사람 하나를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크리스천과 소망은 다시 길을 나섰을 때 갑자기 크리스천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 올랐습니다.
"소망씨! 그러고 보니 이 근처에 사는 착한 남자가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작은 믿음으로 그의 고향은 성실이었습니다. 우리와 같이 순례길을 가고 있던 작은 믿음은 우연히 거기 앉아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때 넓은 문에서 내려오는 오솔길에 세 명의 포악한 건달들이 나타났는데, 그들의 이름은 심약, 불신, 범죄로서 한 형제들이었습니다. 그 건달들은 작은 믿음이 있는 것을 보고 속력을 내어 달려왔습니다. 마침 이때 작은 믿음은 막 잠에서 깨어나 순례길을 시작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건달들은 그의 뒤를 쫓아가면서 위협했습니다. 작은 믿음은 겁을 집어먹고 도망칠 힘도 다 잃고 말았습니다. 결국 작은 믿음은 돈을 빼앗기고, 건달들에게 두들겨 맞고 쓰러졌습니다."
"하지만 그자들이 작은 믿음의 가진 재산을 다 빼앗아가지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그가 보석을 감추었던 곳은 그들이 뒤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들은 무사했지요. 그러나 제가 들은 바에 의하면, 그 착한 사람은 자기 생활비의 대부분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답니다."
"참 놀라운 일이군요. 강도들이 그것을 빠뜨리고 가기는 했지만, 작은 믿음이 그것을 잘 숨겨서 그렇게 된 것은 결코 놀랍지 않습니까? 왜냐면 그는 강도들이 오는 것을 보고 하도 낙담하여 어떤 것을 숨길 만한 힘과 재주를 발휘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건 그래요, 그렇지만 작은 믿음이 그 좋은 것을 잃어버리지 않은 이유는 자기 노력 때문이라기보다는 선하신 섭리 덕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은 믿음 Little-Faith(2022)
"작은 믿음은 진실하지만 안타깝게도 연약한 믿음의 소유자였군요. 그는 늘 깨어서 조심하지 못하며, 세상이 제시하는 길에 흔들리고, 사탄의 횡포에 시달리며 그 덫에 걸리기 십상인 우리 이웃들의 믿음이 될 수 있겠군요."
작은 믿음의 사람들
크리스천으로 살면서 작은 믿음은 바로 나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예수의 제자들의 작은 믿음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의심 많은 도마입니다. 그는 예수의 부활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못자국을 만지고서야 예수를 믿었습니다. "너는 만져봐야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의심 많은 도마(2023)
베드로는 예수를 따를 적에만 해도 작은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세 번씩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부정했고, 또 파도치는 갈릴리 바다 위를 걸었을 때도 그랬습니다. 잠시나마 베드로가 배 밖으로 나와 물 위를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내게로 오라" 주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베드로는 바다에 불고 있는 바람을 보고 무서워서 물속에 빠져 가며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하고 소리쳤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하고 꾸중하십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2022)
주님은 세상 방식으로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지 말라고 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와서 나를 따르라... 내가 있는 곳을 보라...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느니라... 내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해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크리스천으로 살고 있지만 안팎의 두려움, 불안, 걱정, 잡생각 없이 지나가는 날은 우리 인생에 거의 하루도 없습니다. 이런 어두운 세력은 거기서 완전히 벗어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우리 세상에 구석구석 파고들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믿음이 적은 사람아, 왜 의심하였느냐?" 베드로에게 한 말이 내 귓가로 생생히 들려옵니다.
나는 오늘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성경의 작은 믿음의 사람 하나를 수채화로 그렸습니다. 바로 니고데모입니다. 니고데모를 그린 이유는 한때 나도 니고데모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니고데모는 예수를 믿지 않은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회적 지위와 체면으로 전폭적으로 예수를 영접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밤에 예수를 찾아왔습니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습니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 3:1-7)
예수를 찾은 니고데모 Nicodemus(2022)
니고데모는 그 당시 부유하고 저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꽤 유명한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바리새인으로 이미 수많은 민중들이 예수를 따르고 있다는 소문을 익히 듣고 있었습니다. 그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밤을 택해 예수님을 찾은 것도 그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께 동문서답으로 답변을 합니다. 분명 그는 지성인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그 순간 어리석은 사람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존경하고 그의 말씀을 따르고 싶지만 예수 믿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나도 크리스천이었지만 내가 하는 동물학 연구와 황새복원, 교육, 강연 계획이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내 영광을 위한 것임에도 그것들을 포기할 뜻이 없었으니까요.
삶의 중심에 들어오신 예수
물리학을 전공하는 내 동료 교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진실하고 평판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하나님의 계심'을 믿는지 말을 꺼내며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독일의 물리학자인 칼폰 바이제커(Carl von Weizsäcker)를 아세요?”
이 사람을 언급한 이유는 그가 물리학자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유학시절에 독일 대통령이 그의 동생 리처드폰 바이제커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에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칼폰 바이제커는 항성 내부에서의 핵융합에 대한 연구를 한 세계적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이죠”. 그리고 "그는 독일의 괴팅겐 막스플랑크연구소에도 근무를 했는데, 개신교도인 물리학자죠."
이것은 물리학 동료 교수가 지금과 같이 인공지능을 가진 웹 검색을 통해 말해준 것이었습니다. 이어진 그의 말에는 더욱 관심이 쏠렸습니다.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거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물리학자들 가운데 약 절반 정도가 신앙인 이죠."
지구상에서 최고의 두뇌를 가진 물리학자들이 이렇게 많이 '하나님의 계심'을 믿고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알고 있기로는 자연과학자이지만 생물학을 전공하고 있는 내 동업자들 중에 '하나님의 계심'을 믿는 사람들이 훨씬 적었기 때문입니다.
자연과학 분야에서 물리학 전공자들 중 의외로 신앙인이 많다는 사실은 스티븐 호킹박사의 평소 언론과의 인터뷰 기사에서 힌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빅뱅 이론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물리학자입니다. 호킹 박사는 스스로 무신론자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고인이 되기 전, 2018년에 진행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호킹 박사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심을 믿으십니까?"
그는 대답을 거부했고, 기자가 이유를 묻자, 호킹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다고 말하면, 모든 사람들이 내가 자신들이 믿은 하나님과 동일한 하나님을 믿는다고 주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는 '우주가 과학의 법칙에 의해 운영된다는 사실을 믿는다’면서 ‘이 법칙은 하나님이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법칙이 깨지도록 간섭하지는 않는다.'라고 즉답을 피해 갔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여 말했습니다.
“빅뱅과 같은 요인으로 우리가 사는 우주 비슷한 게 나올 가능성은 정말 희박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적인 의미가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우리와 같은 존재를 창조하기로 마음먹은 하나님의 솜씨라는 것 말고는 우주가 꼭 이런 식으로 시작되었는지 그 까닭을 설명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성경에는 창조가 언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이야기는 없습니다. 과학자들은 천지창조, 즉 우주가 빅뱅을 시작으로 138억 년의 역사를 가진다고 말합니다.
빅뱅으로 우주가 만들어진 후 9년 만에 만들어진 별이 하나 있는데, 이것을 우리는 아침별(Earendel)이라고 합니다, 이 별은 이 지구로부터 자그마치 129억 광년의 거리에 있습니다. 129억 광년은 빛의 속도로 날아갔을 때 129억 년 걸린다는 뜻입니다. 이 시간과 공간의 개념도 ‘광대하다’라고 말 외에는 아직 정확한 표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불교 용어 가운데 ‘영겁 (永劫’)이란 표현이 조금 더 근접할만한 용어일지도 모릅니다.
빅뱅의 시간을 달력으로 환산해 보면 이 시간이 얼마나 큰 지 상대적 개념으로 어림잡아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인간들이 광대하다고 느끼는 시간과 공간도 하나님께는 ‘찰나’라고 느낄 때, 그분의 손길이 내 영혼을 만지고 계심을 신뢰합니다.
1월 1일 자정을 빅뱅이 일어난 시점으로 인류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이 행성이 만들어질 때까지 138억 년으로 되돌려보려 합니다. 그 기간 동안 1000억 이상의 은하계가 만들어집니다. 우리 인류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지구는 안드로메타라는 변방의 은하계에 속한 태양계의 한 행성-조그마한 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행성이 만들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46억 년 전, 그러니까 달력으로 계산해 보면 9월 초에 해당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기 시작한 이튿날 생물체가 처음 만들어졌다고 적고 있는데 과학적으로 추론해 보면 40억 년 전 지구에 생명체가 처음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9월 중순에 해당됩니다.
이어서 원시 인류가 이 지구상에 처음 나타난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350만 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달력으로 계산하면 12월 31일 20시 52분입니다. 이 시간은 성경에서 여섯째 날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했다고 기록한 시점입니다.
그 후 지구는 생식이라는 개념을 통해 인구수가 불어납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농업이 시작되고 지금과 같이 문명생활의 시작은 고작 1만 년도 안됩니다. 그리니까 이 시간은 12월 31일 자정을 앞둔 30초 전입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낸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자정 시작으로부터 불과 6초 전입니다. 하나님의 광대한 시간 개념으로부터 너무 늦게 그분은 인간의 몸으로 이 작고 작은 별나라에 임하셨습니다.
예수의 제자인 요한은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라고 말씀하십니다’(계 1:8). 이 우주는 처음이 있고 언젠가는 끝이 있다는 사실을 그의 영적 통찰력과 성경의 계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과학자들은 이 지구의 수명이 약 1 억년쯤 남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1억 년이란 세월도 달력으로 계산하면 그 시간은 2~3일 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입니다. 그러나 지구의 종말은 그보다 훨씬 더 빠를 수 있습니다. 존 번연은 천로역정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 3:10)”
존 번연의 ‘천로역정’의 주인공, 크리스천은 이 성경 구절을 읽고 순례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나는 주님께서 성령으로 내 곁에 바싹 다가와 내 안에서 일하고 계심을 신뢰하며 이 순례길을 걷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