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듯 '천로역정의 사람들' 집필이 종착지를 향하고 있습니다. 존 번연은 무신론자와 무지를 함께 등장시키고, 나는 날 위해 십자가를 지셨던 제주도 성이시돌 순례길을 걷습니다. 그 길은 예수께는 고난의 길이었지만 나에게는 한없이 내려지는 은혜의 길이었습니다.
소망과 크리스천이 앞을 바라보니 잘못된 방향으로 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무신론자였습니다.
"우리는 시온 산을 향해 가고 있는데,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크리스천이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나도 한때는 너희들처럼 하늘의 왕국을 찾아다녔단다. 근데, 그런 건 없어!"
"이 세상 너머를 보셔야 합니다. 하늘의 왕국은 이 세상에 너머에 있어요."
"내가 길에서 '무지'라는 사람을 만났었지. 그는 너희들의 종교에 대해서 참 흥미로운 말을 하더군. 그는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늘의 왕국에 갈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 것이 참으로 웃긴다고 하더군. 왜냐면 우리는 그냥 믿는다라고 입으론 말하고 삶은 여전히 사악할 수 있다는 거지. 그러고도 천국에 가고!"
소망이 다시 말을 이어 갔습니다. "그의 이름이 무지라고 했나요? 아~ 그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하고도 남습니다. 그러나 진짜 그리스도인이라면 삶을 통해서 그것을 증명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종교라는 규칙적인 삶과 의식을 통해서 외식하며 살기도 하겠지만, 마지막 때에는 그런 사람은 왕국 문 앞에서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가 자신의 자녀인지를 아시지요."
다시 크리스천이 말했습니다. "성경에 행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말씀이 있죠. 우리의 행동이 우리를 구원해서가 아니라 진짜 믿음은 진실된 행동으로 열매 맺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짜 믿음은 형편없는 우리의 삶을 고쳐주니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위선에 속으실까요?"
끝내 무신론자는 소망과 크리스천을 조롱하며, 그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나도 지금까지 천국을 찾아 여기까지 왔지만, 그게 다 헛수고란 걸 이제 깨달았네. 그래서 난 예전의 즐겼던 길로 다시 돌아가봐야겠어. 그럼 자네들이나 천국을 찾아가 보게!"
무신론자와 무지Atheist and Ignorance(2022)
성 이시돌 순례길 1
간혹 내 순례길에도 무신론자와 무지를 만납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오히려 내가 믿는 예수는 헛것이며, 애당초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날 조롱합니다. 이것은 크리스천인 나만의 조롱이 아니었습니다. 시편의 저자들도 이런 조롱을 당했습니다.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고 비웃으니, 밤낮으로 흘리는 눈물이 나의 음식이 되었구나,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낙심하며 어찌하여 그렇게 괴로워하느냐? 너의 하나님을 기다려라. 이제 내가,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을 또다시 찬양하련다(시편 42:3-5). 사도 바울도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고 다시 순례길에 나섭니다.
내가 제주도 방문에서 항상 들리는 곳이 하나있습니다. 바로 성이시돌 순례길입니다. 늦은 나이에 제주도에서 잠시 성이시돌 순례길을 걸어봅니다. 아니 순례길하면 우리는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제주도에 순례길이 있다는 사실은 그렇게 제주도를 많이 방문했지만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성 이시돌(Isidore)은 스페인 마드리드 출생의 농부이며 가톨릭 성인(축일, 5월 15일)인 농부의 이시도르(라틴어 Isidorus)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그곳에 가면 2000년 전 예수의 공생애를 다룬 조형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날의 조각상은 너무 끔찍해 오래 머물 수가 없었습니다. 살아계신 예수를 십자가 위에 누인 채 대못을 그의 손바닥 위에 대고 박고 있는 장면입니다. 조각상의 얼굴에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처절한 고통을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한 병사가 오열을 참지 못하고 예수께로 다가서려는 한 여인을 저지하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2000년전 그 현장에 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평소 잔인한 장면을 보지 못해 아마 기절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십자가 처형(2021)
그렇지만 예수께서 두 죄수들 사이에서 십자가 처형 장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전 주님은 두 죄수와 함께 골고다 언덕 위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습니다. 성경은 이 장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다른 죄수 두 사람도 사형을 받으러 예수와 함께 끌려갔다. 골고다라는 곳에 이르러, 병사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두 죄수도 하나는 그분 오른쪽에, 다른 하나는 왼쪽에 못 박았다. 예수께서 기도하셨다. "아버지, 이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중략) 예수의 머리 위에는 <이 사람은 유대인의 왕>라고 쓴 팻말이 붙어 있었다. 함께 달린 죄수 가운데 한 사람도 그분을 저주했다. "너는 대단한 메시아가 아니냐! 너를 구원해 보아라! 우리를 구원해 보라고!" 그러나 다른 죄수가 그의 말을 막았다. "너는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이분은 너와 똑같은 일을 당하고 있다. 우리야 처벌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이분은 그렇지 않다. 이분은 이런 처벌을 받을 만한 일을 하신 적이 없다." 그러고 나서 그가 말했다. "예수님,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그렇게 하겠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어느덧 정오가 되었다. 온 땅이 어두워졌고, 그 어둠은 이후 세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성전의 휘장 한가운데가 찢겨졌다. 예수께서 큰소리로 부르짖으셨다. "아버지, 내 생명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그 말을 하시고 예수께서 숨을 거두셨다(누 23:32-46)'
지금 나도 한 죄수처럼 예수님께 날 온전히 맡기고 있는가?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을 믿는 순간 우리는 새 생명을 얻게 됨입니다. 그게 어찌 가능할까요? 어떻게 보면 너무 불공평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죄수로 살았던 사람인데, 한 순간 고백 만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니요? 세속 종교들은 몸과 마음의 깊은 수양이나 착한 일을 많이 하면 낙원에 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 진정 예수의 십자가 옆에 달린 죄수처럼 한 순간 고백 만으로 낙원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 나오는 '작은 믿음'은 비록 세상에서 흔들리는 삶을 살았지만, 자신의 공로가 아닌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나의 고백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그리고 그분은 선물로 다함없는 새 생명을 주십니다'
십자가 처형의 순례길을 뒤로 하고, 방금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아리마대가 고향인 요셉이라는 사람이 예수의 시신을 수습하는 장면에서 ‘예수님이 십자가형을 당하고 이대로 끝나는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냥 역사에 성인으로 태어나셔 돌아가셨구나!’ 그건 그동안 예수께서 세상을 구하기 위해 왕으로 오심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의 시신을 거두는 사람들(2022)
그러나 역사는 반전을 일으킵니다. 그 예수가 3일 만에 부활하신 겁니다. 3일이면 생물학적으로 시신은 부패하기 시작할 시기입니다. 그러나 멀쩡한 몸으로 그 제자 도마에게 나타나 못자국을 확인시키며 손을 내미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만 따라다녔던 제자 베드로 앞에도 오셔 베드로와 식사도 함께 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40일을 제자들과 함께한 뒤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다고 기록해 놓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와 베드로(2022)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늘로 올라갔지만, 성령을 보내셔 제자들에게 자신이 살았던 삶을 제자들에게도 똑같이 살아주길 부탁하셨습니다. 그냥 말로만 부탁하신 것이 아닙니다. 바로 성경에서 오순절 다락방 모인 제자들의 몸속에 성령으로 임하셨습니다. 이것은 한 자연과학자의 이성과 지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이 보내신,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성령의 역사이자 은혜입니다. 이 장면들 하나하나 한지 위에 옮겨질 때마다 오롯이 내 영혼 깊숙이 성령과 은혜로 만저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시는 예수(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