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 장 기쁨의 산

by 박시룡

오늘 나는 기쁨의 산을 오르며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납니다. 존 번연은 목자를 통해 배교자들의 최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전지전능하셔서 범접할 수 없었던 하나님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비결 하나를 발견합니다.



크리스천과 소망은 기쁨의 산에 도달했습니다. 기쁨의 산의 소유주는 목자들이었습니다.

"이 산지는 임마누엘 님의 땅으로 그의 도성이 바라다 보이는 영역 내에 있지요. 그리고 그 양들도 그분의 것입니다. 그분은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셨답니다."

크리스천은 먼저 한 분의 목자에게 물었습니다. '이 길이 천성으로 가는 길입니까?"

"올바로 오셨습니다."

"천성까지는 얼마나 남았나요?"

"어떤 사람들은 너무 멀어 못 가지만, 거기 갈 사람들은 다 갑니다."

목자들은 두 순례자를 데리고 오류라고 불리는 산꼭대기로 안내했습니다. 그 산은 매우 가파른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그곳에는 산산조각 난 사람들의 시체가 밑바닥에 널려 있었습니다.

크리스천은 산산조각 난 사람들의 시체를 보고 또 물었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지요?"

"당신은 몸이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떠드는 후메내오와 빌레도(딤후 2:17-18)의 말을 듣고 오류에 빠졌던 자들에 관해 들어 보지 못했나요?"

"예,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이 산 밑바다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 있는 저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당신들이 보다시피, 저들을 오늘날까지 매장시키지 않은 채 남겨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산 가까이 오거나 기어오르고자 할 때 경고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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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의 꼭대기 (2022)


두 순례자는 목자들의 안내에 따라 지옥으로 가는 샛길로 들어섰습니다. 멀리서 불이 타는 듯한 소음과 고통당하는 자들의 울부짖는 소리와 유황 냄새도 났습니다. "이곳은 지옥으로 가는 샛길인데, 위선자들이 주로 가는 길이지요. 예를 들면 에서처럼 출생 권리를 파는 자들이나 유다처럼 자기 스승을 파는 자들, 알렉산더처럼 복음을 모욕하는 자들, 아나니와와 그 아내 삽비라처럼 거짓말하고 속이는 자가 들어간답니다."


다시 크리스천과 소망은 목자들과 작별하고 자만의 지방으로 들어섰습니다. 어두운 길에서 한 사람이 일곱 가닥의 강한 밧줄에 묶인 채 일곱 귀신에게 끌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귀신들은 그를 예전에 순례자들이 보았던 언덕 옆 문으로 끌고 가고 있었습니다(마 12:24; 잠 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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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귀신 Seven Ghosts(2022)


이를 본 크리스천과 소망은 너무 무서워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습니다. 크리스천은 혹시 귀신들에 끌려가는 사람이 아는 사람인 것 같아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크리스천은 그가 배교 마을에 살았던 변절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치 현장에서 붙잡힌 도둑처럼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기 때문에 그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소망은 그가 지나간 다음에 그의 뒤를 보았는데, 그 사람의 등에는 '음란한 신앙 고백자요 저주받은 배교자'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한 때 예수를 믿다가 사탄의 속임수에 말려 세속의 길로 빠져버린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들의 종말은 어떻게 될지? 존 번연은 오류의 꼭대기에서 시체더미 속에 갇혀있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곳에는 고통을 당하는 울부짖는 소리와 유황냄새도 함께 있었습니다. 일곱 귀신에 끌려가는 모습도 보여주었습니다.


간혹 나는 지옥의 고통에 대한 의식과 두려움 때문에 천국을 열렬히 바라다가도 지옥에 대한 의식과 저주에 대한 두려움이 시들해지면 천국에 대한 열심도 사그라들고 맙니다. 존 번연이 오류의 꼭대기와 일곱 귀신을 보여준 것도 천국을 향한 내 순례길을 멈추어선 안된다는 신호일 것입니다. 다시 천국을 향한 열렬한 심령을 사모하며 시온성을 향한 순례길에 오릅니다. 그곳은 나에게 기쁨의 산이 되었고 앞으로 가야 할 쁄라의 땅이기도 했습니다. 기쁨의 산에서 그동안 미뤄 두었던 동물과 대화를 시도합니다. 호르르~, 호르르~하고 내가 휘파람새 노래를 부르면 휘파람새 수컷 한 마리가 바싹 내게 다가옵니다. 자연과학자로 이것은 소리로만 듣고 나를 자신의 경쟁자로 여기고 있다는 증거지만, 이 생명체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평소 사용하는 자신들의 은밀한 대화의 비밀 하나를 나에게 들키고 만 것입니다. 이렇게 기쁨의 산은 온갖 산새들이 자신들만의 비밀들을 간직한 채 대화를 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동물과 대화

동물행동학자로 살아오면서 동물들도 사람처럼 사랑이 있을까? 말하자면 어미가 새끼에 대한 모성애 같은 것 말이죠.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나는 동물학자이기 때문에 인간들이 느끼는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연구를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제비 한 쌍이 처마 밑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5~6개의 알을 낳았습니다. 어미가 알을 동시에 낳지 않고 하루에 하나씩 혹은 하루 걸러 하나씩 낳기도 합니다. 그러면 새끼들은 첫 번째 알에서 깨어난 새끼가 가장 크고 막내가 가장 작습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벌어진 노란색 입의 크기로 금방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실험을 해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발견됩니다. 어미 새가 먹이를 부리에 가득 물고 와, 가장 크게 벌린 입에 먹이를 다 털어 넣고 다음 먹이사냥을 나갑니다. 그다음 먹이를 물고 와서는 둘째, 셋째 순서로 새끼입에다 넣어줍니다. 아주 규칙적입니다. 방금 먹은 새끼에게 중복해서 넣어주는 법은 없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과연 어미는 새끼들을 다 구분할 수 있을까?'입니다. 그걸 마분지를 입 벌린 모양으로 만들어 노란 광택이 나도록 색칠을 한 후, 하나는 첫째보다 더 큰 게, 다른 하나는 막내 입보다 작게 만들어, 어미 제비가 먹이를 가지고 와, 5마리의 새끼들이 동시에 입을 벌렸을 때 이 가짜 부리를 새끼들의 주둥이 옆에 갖다 대 주는 것입니다. 희한한 일이 벌어집니다. 어미는 자기 새끼들보다 큰 가짜 부리에 먹이를 넣어주지만, 작은 입에는 절대 먹이를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자연에서는 이 5마리의 제비 새끼들이 모두 부화하고 이틀정도 지나고부터, 어미는 먹이를 실어 나르기 시작합니다. 첫날 어미 제비들은 하루에 80회 정도 먹이를 날라다 줍니다. 어미는 가장 큰 입을 벌린 새끼에게 먹이를 주고, 3~5분 정도 지나서 둘째에게 먹이를 줍니다. 이때 첫 째는 먹이가 모이주머니 속에 남아 있기 때문에 아직 덜 배가 고파, 입을 크게 벌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어미가 먹이를 가져오는 시간이 지체되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만일 20분 정도가 지체됐다고 가정하면, 셋째 차례에 첫째의 입이 다시 가장 크게 벌어져, 셋째, 넷째 그리고 다섯째는 아예 먹을 기회조차 오지 않습니다. 참 매정한 일입니다.


어미가 이것을 알았다면 참 좋을 텐데, 하나님은 이 제비 어미에게 그것을 분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지 않았습니다. 사람처럼 그런 지혜를 가지려면 지금보다 제비의 뇌가 적어도 5-6배는 더 크게 만들어져야 할 겁니다. 그 작은 뇌로는 분별능력을 갖추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요즘처럼 제비들의 먹이터가 농약이나 살충제에 오염돼 벌레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진 현실에서는 다섯 마리가 아닌 2마리 새끼를 길러내는데도 힘겨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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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 둥지의 새끼들과 어미(2018)


결국 하나님은 창조세계의 돌봄을 동물들 스스로에게 맡기지 않고 인간들에게 맡겨졌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보면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물을 다스려라"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에게 지혜를 부여하고, 생물들을 다스리라는 권한을 주었지만, 아직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이해하고 있지 못해 한 자연과학자로서 안타까울 때가 참 많습니다.


자연과학자로 연구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느낄 때가 많습니다. 물론 자연은 아름다움을 넘어 신비로울 때도 참 많습니다. 연구하면 할수록 미지의 신비로움이 존재하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과학자들이 이런 자연의 신비로움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 신비로움을 밝히려는 노력은 또 다른 환희와 희열을 가져옵니다. 동물행동학의 아버지라 불린 콘라드 로렌츠(Konrad Lorenz)는 동물들의 소리와 행동을 연구하여 노벨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책 '솔로몬의 반지'는 국내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성경의 구약에 나오는 솔로몬왕은 반지를 끼고 동물들과 대화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성경에는 솔로몬왕이 하나님께 재물이나 권력을 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지혜를 달라고 요구한 왕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성경에도 나오는 솔로몬왕의 재판은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두 여인이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솔로몬왕이 모성을 이용해 친 어머니를 가려낸 명재판입니다.


나는 오늘 이 기쁨의 산에서 딸아이로부터 10주가 돼 가는 초음파 태아 동영상을 받았습니다. 딸아이는 자신의 몸속에서 움직이는 태아를 보니 너무 신기했던 모양입니다. 나도 너무 신기했습니다. 머리와 몸통 그리고 움직이는 팔과 손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심장의 고동 소리도 들렸습니다. 나는 딸아이의 카톡으로 '하나님의 솜씨가 작동 중!'이란 축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태아를 만들어가는 것, 누구의 솜씨인가?

분명 그 태아는 핵융합의 과정을 거친 하나의 세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세포 속에는 인간이면 모두 들어있는 46개의 염색체가 있습니다. 물론 이 염색체 내에는 태아를 만드는 유전자 정보가 들어가 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얘기하면 이중나선 모양의 염기 서열들입니다. 마치 실에 꿴 구슬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세포는 분열을 거듭하여 머리, 뇌, 팔, 다리, 그리고 장기들을 만듭니다. 하나의 세포가 어떻게 이것을 가능하게 할까요? 바로 세포가 분화되면서 각 세포들은 자신의 임무대로 어떤 세포는 머리만, 또 어떤 세포는 팔만, 그리고 다른 세포는 다리만 만듭니다. 참 신기하지 않나요? 그 세포들은 46개의 염색체로 똑같은 유전자가 들어 있는데! 팔을 만드는 세포는 팔만 만들도록 유전자가 작동(프로그래밍)하고, 손세포는 손을 만드는 특정 부위의 유전자만 작동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것을 지시할까요? 오늘날의 과학은 그것이 유전자 정보에 의해 명령을 받아 저절로 만들어진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컴퓨터에 비유하면, 정보를 프로그래밍 한 사람이 있기에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태아의 유전자 정보를 프로그래밍 한 분은 분명 존재하고 계십니다.


더욱 신기한 일은 그 세포들이 서로 소통하고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심장을 만드는 세포와 소장을 만드는 세포는 서로 의사소통을 합니다. 어떤 시점에서 심장을 만드는 세포는 "나는 심장을 만들 테니, 너는 소장을 만들어라" 반대로 소장의 세포는 "나는 소장만 만들 테니, 너는 심장을 만들어!" 만일 이런 소통이 작동되지 않으면 심장이 두 개씩 만들 수도 있고, 또 소장만 두세 개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과학자들은 이미 세포막을 통해 물질교환이 일어나는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그 물질은 다시 핵 속에 들어있는 조절 유전자에 작용하여 작동 유전자로 하여금 손과 발, 그리고 장기를 만들도록 명령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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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 한태 보낸 메시지(2024)


엄마의 배속에서 태아는 10개월 동안 무려 수십조 세포들의 분열과정에서 세포 간 협업을 거듭합니다. 그 협업의 총지휘자는 누구일까요? 마치 이 우주가 빙백에 의해 비롯되어 은하계에 수많은 별들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현대 과학에서 '이 우주는 중력상수에서 약한 핵력과 관련된 다양한 상수들이 천억 분의 일만큼의 오차도 없이 마치 인간이 나타날 줄 알고 기다린 것처럼 만들어졌다'라고 <신의 언어 The Language of God>를 쓴 저자 프렌시스 콜린스(Francis Collins)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 우주가 한 치 오차도 없이 만들어진 것처럼, 지금 내 딸아이의 몸속에서도 태아가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음을 봅니다. 이미 내게 꿈에서나 상상하고 짐작하고 구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밖에서 나를 강요하시지 않고 우리 몸 안에서 깊고 온유하게 활동하시는 그분의 영을 통해 일을 해 나가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과 소통

하나님은 크리스천들과 직접 소통하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과 직접 대화하는 장면들이 참 많이 나옵니다. 시편은 모두 다윗을 포함한 시편 저자들의 하나님과 대화록입니다. 나는 여태까지 나의 일방적 기도가 하나님과 대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성경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하나님과 소통하는 장면을 보면 상황은 전혀 다릅니다. 뒤에는 애굽 군대가 추격해 오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는 절박한 순간, 모세는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주여, 어찌하면 좋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백성들을 인도하려 하니 앞에 홍해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제게 길을 열어주십시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즉시 대답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출 14장 15~18절)


내가 오늘 산을 오르며 그런 소통이 가능하다는 비밀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과 대화를 할 수 있는 비밀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아담 한 사람의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단절된 삶을 연결시켜 준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로마서 저자 바울은 '예수께서 죽으셨을 때 그분은 자신과 더불어 죄를 끌어내리셨고, 다시 살아나셨을 때 그분은 하나님을 우리에게 내려오시게 하셨다'적고 있습니다. 바울은 다시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모국어로 말씀하시며, 우리는 그 말씀을 한 마디로 놓치지 않습니다'(메시지 성경, 롬 6:11).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받은 이 부활 생명의 삶은 결코 소심하거나 무거운 삶이 아니고, 기대 넘치는 모험의 삶, 어린아이처럼 늘 하나님께 "다음은 또 뭐죠, 아빠?"라고 묻는 삶이라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 산에 오르며 하나님과 끊임없는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나의 일방적 기도가 아닌, 그분의 음성을 듣고 또 묻는 시간이었습니다. "아, 지금까지 왜 내가 이런 하나님을 몰랐을까?" 나도 너무 의아해했습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원인이 내 죄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또 그분이 그 죄를 몽땅 가져가심으로 나는 다시 하나님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생명들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영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기쁨의 산에서 그것이 내 영혼에 전해져 옴을 느낍니다. 박쥐가 인간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초음파를 내 그 반향음을 듣고 삶을 살아가듯, 내가 간구하는 소리도 하나님 음성의 주파수에 맞추어 다시 듣고 시온 성을 향해 달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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