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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수림 Nov 02. 2021

뼈말라족은 지금 위험합니다

다이어트는 마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살찌는 것은 게으르고 한심한 일이야.


  이것은 고등학생 때 제가 좋아하던 친구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저보다 성적도 좋고 똑 부러지는 성격을 가져 평소에 멋있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한 말이라 당시 저에겐 저 말이 굉장히 영향력이 컸습니다. 게다가 그 친구는 저보다 키는 더 크면서도 체중은 더 적게 나갈 정도로 깡 말랐었기 때문에 작고 통통한 나를 겨냥한 말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살이 찌는 것을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고, 체형과 성격을 연관 지어 생각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어떤 사람들은 그리고 이렇게 가까운 친구가 체중으로 사람을 판단한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었고 혼란스러웠죠. 


출처: https://youtu.be/lGh2l1DvYV8


  그래서 얼마 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송된 <나비약과 뼈말라족>에 대한 내용이 저에게 더 크게 다가왔을지 모릅니다. 특히 한창 미래를 꿈꿔야 할 10대 청소년들이 거식증을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안타까웠습니다. 그 시기에는 또래 친구들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는지를 저도 경험했기 때문에 그들 중 많은 수가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격으로 자신도 모르게 위험한 길로 가고 있을 사실이 염려되기도 하였죠. 또 청소년들에게는 어른들의 한마디 한마디, 그리고 대중매체가 보여주는 것들이 마치 이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질 것도 알고 있기에 저도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제가 행여나 거기에 일조하지는 않았을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뼈말라족이 하나의 유행어처럼 사용하고 있는 용어, '프로아나(pro-ana)'는 거식증(Anorexia)을 찬성한다(pro)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거식증(신경성 식욕부진증 Anorexia nervosa)은 신체에 대한 잘못된 인식 장애로 인하여 식사를 제한하거나 거부하여 체중이 지나치게 감소하는 신경정신과적 '질환'입니다. 어떤 병에 걸리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보기 드문 경우입니다. 그래서 프로아나족, 뼈말라족이 '거식증을 앓고 싶어요', '거식증을 찬성합니다'라고 외치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 저 행동과 말이 어떤 뜻인지 알고 있는 것인지 의문을 품게 되죠. 특히 청소년기에 생기는 거식증은 앞으로 남은 평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왜 거식증은 질환인가?


  거식증이라고도 부르는 신경성 식욕부진증은 초기 사춘기(13세~18세)에 시작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중 90% 정도가 여성입니다. 대개 '마른 여성이 더 아름답다'라는 사회적 통념과 관련이 많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 외에도 고통스러운 생활 사건에 의해 처음 발병하기도 합니다.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이야기가 대표적인 예죠. 특히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경우에 발병하기 쉽기 때문에 청소년기 여성이 거식증이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최근 국내 거식증 유병률이 점점 높아지면서 10대 여성 못지않게 20대 여성에서도 거식증을 가지고 있는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강박적인 성향, 완벽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도 신경성 식욕부진증이 생길 가능성이 보다 높은 경향이 있습니다. 

  

  신경성 식욕부진증이 생기면 체중이 증가하는 것에 대한 강박적인 혐오감으로 인하여 식사를 거부하거나 식사량을 극도로 제한합니다. 체중 조절을 위하여 격한 운동을 하기도 하죠. 그리고 식사 시간에 음식을 먹지 않고 감추어 두거나 일부러 천천히 식사를 해서 몰래 음식을 남기기도 합니다. 탄수화물이나 지방이 많은 음식을 골라내고 먹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런 행동은 체중이 정상 수준에 이르러도 멈추지 않습니다. 오히려 체중이 정상 수준인 것조차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리고 목표하는 저체중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언제든지 다시 살이 찔 수 있다는 사실에 항상 극심한 두려움에 떨며 지냅니다. 그래서 음식을 먹고 난 뒤에 일부러 구토를 하거나 설사약을 복용해서 먹은 것을 다 배설해내려고 하기도 합니다.



  거식증을 앓는 사람들의 건강 상태는 사실상 기아 상태인 극빈국의 아이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여성의 경우 점점 월경이 없어지고 변비나 복통이 생깁니다. 추위를 잘 타게 되면서 무기력해지고 저혈압, 저체온증, 피부 건조증이 생길 수 있죠. 구토를 자주 하면 저 칼륨 혈증이 생기기도 하고 구강이나 식도, 위장에 상처가 생기고 대사장애가 생길 수 있습니다. 갑상선 기능에 이상이 생기기도 하고 기초대사량이 떨어지기도 하죠. 특히 청소년기의 거식증은 성장 발달 저해를 가져옵니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것은 거식증을 앓는 사람의 10명 중 1명 꼴로 기아나 자살, 전해질 불균형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프로아나'를 하나의 생활 방식으로 봐달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만들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동이나 생각을 '라이프 스타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정말 '프로아나'가 하나의 생활 방식에 불과하다면 내가 그 생활 방식을 바꾸려고 마음먹었을 때 어려움 없이 쉽게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신경성 식욕부진증의 위험성과 심각성을 깨닫고 뒤늦게라도 고치려고 필사적으로 애를 써봤지만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 해외 유명 스타들의 안타까운 사례들을 보았을 때, 프로아나를 생활 방식으로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거식증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 위해 'No-anorexia(거식증을 반대)' 캠페인을 한, 그렇지만 결국 28세의 나이에 사망에 이른 프랑스 모델 이사벨 카로(Isabelle Caro)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거나 그녀의 앙상한 뼈만 남은 몸의 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내가 먹고 싶어질 때 다시 먹으면 괜찮아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신경성 식욕부진증, 즉 거식증은  마치 약물 중독처럼 한번 빠져들면 다시 헤어 나오기 무척 힘듭니다. 그래서 신경성 식욕부진증으로 진단받은 경우에는 입원 치료를 하기도 합니다. 또 정신적 치료와 신체적 치료가 병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인지행동치료와 약물치료를 하고 필요한 경우 가족치료를 하기도 합니다. 


  많은 것을 꿈꾸고 경험해야 하는 청소년들이 거식증으로 인해 평생 고통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아와 아름다움, 자신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다이어트나 체중 조절은 마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과체중, 비만인 경우 '건강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체중이 어떻든, 어떤 외모를 가졌든 당신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아름답고, 사랑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들과 주변 어른들, 그리고 사회적인 통념이 반드시 변화해야 합니다. 특히 청소년기에는 주변 사람들의 한 마디 한마디에 큰 영향을 받고 대중 매체에서 보이는 것들도 걸러내는 것 없이 받아들입니다. 바비 인형처럼 똑같이 생긴 여자 아이돌들과 배우들을 놓고 예쁘다고 찬사를 보내면서 청소년들에게는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매우 모순적이고 효과를 보장할 수도 없습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마르지 않아도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는 적극적인 변화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만일 정신적인 스트레스나 고통스러운 환경 등으로 인하여 거식증이 생겼다면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당장에는 내가 나의 체중을 조절하면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이 느껴질지 몰라도 그것은 나를 괴롭히는 근본적인 문제와는 별개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절대로 식사를 거부하고 마른 몸을 유지하는 것이 스트레스나 현실의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신경성 식욕부진증으로 인하여 몸이 점점 망가질수록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어집니다. 잘못된 판단과 선택들로 인해서 점점 내가 그리는 이상향과 나의 모습 사이에 괴리가 커질 수 있죠. 나중에 이 모든 것을 되돌리고 싶어도 거식증에 발목을 잡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국 행복한 경험들을 할 기회들과 시간들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도 꼭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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