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점짜리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저와 함께 다이어트를 하는 분들은 처음에 저를 이상한 한의사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먹으면 칼로리가 너무 높은 것 같은데요, 선생님?"
"걱정 마시고 드세요. 칼로리는 생각하지 마세요."
"이것만 먹어도 배고픈 것 참을 수 있어서 이만큼만 먹었어요."
"아니에요, 참지 마시고 더 드셔야 해요. 적당히 배부른 느낌이 들 때까지는 식사를 하셔야 합니다."
"저 오늘 케이크가 너무 먹고 싶은데 한번 참아 볼게요!"
"괜찮아요. 드시고 싶을 땐 드시도록 하세요."
이게 제가 매일 저희 환자분들과 나누는 대화거든요.
다이어트를 할 때 하루 동안 섭취할 총 칼로리 양을 정하고 그것을 끼니와 간식 수로 나눠서 그 칼로리에 맞게 각 식단을 짜는 것은 매우 흔한 풍경입니다. 그리고 한동안 친구였던 햄버거, 피자, 빵 등의 칼로리가 높은 음식들은 갑자기 절대 먹으면 안 되는 금단의 음식이 되고는 합니다. 물론 식단을 조절하는 것은 다이어트와 체중 감량을 위해서, 그리고 호르몬의 저항성을 깨기 위해서 꼭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극도의 절제'를 필요로 하는 식단 계획은 오히려 지속 가능한 다이어트를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칼로리를 하나하나 다 계산해서 식단을 완벽하게 짜고, 유혹에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100점 만점짜리 다이어트를 하면 당연히 다이어트도 성공적이어야겠죠. 그런데 그렇게 하려고 애를 쓸수록 장기적인 다이어트와 다이어트 이후에 체중을 유지하는 것에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믿기 어려우신가요? 지금부터 그 이유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유 1.
우선 첫 번째 이유는, 칼로리를 제한해서는 체중을 감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지?"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이미 들어본 적이 있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예전에는 살이 찌는 이유를 소모하는 칼로리 양보다 섭취하는 칼로리 양이 많아서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살을 빼기 위해서는 반대로 소모하는 칼로리의 양을 늘리고 섭취하는 칼로리 양을 줄이면 된다는 것이 거의 정설이나 다름없었죠.
그렇지만 그 칼로리 계산 이론이 다이어트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 또한 이미 오래전에 밝혀졌습니다. 우리 몸은 섭취하는 에너지의 양을 줄이면, 그 에너지만으로도 살 수 있게 적응을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먹는 양을 줄이고 운동을 열심히 하면 체중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체중이 원래대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죠. 어떤 연구에서는 운동으로 뺄 수 있는 체중의 양이 1kg밖에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기도 했습니다.
https://brunch.co.kr/@srsynn/72
이유 2.
100점짜리 다이어트(?)가 실패하기 쉬운 두 번째 이유는, 우리의 의지력은 믿을 것이 못 되기 때문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성적인 자제력은 생존을 위한 본능에 대항했을 때 이기기 어렵습니다. 물론 자기 통제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사람마다 차이가 큽니다. 스스로 절제를 아주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항상 100점 만점짜리 생활을 하는 사람이 극히 드문 것도 사실이고요. 1994학년 이래 역대 수능 만점자가 232명밖에 되지 않는 것을 보면 '만점'을 받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식사량을 줄이고 음식의 칼로리 양을 줄여서 배고픈 것을 견뎌가며 식단 조절을 하면 내 몸은 그에 맞서서 내 몸을 보존하기 위해 배고픔을 더 자주, 강하게 느끼게 만듭니다. 그동안 부족하게 먹었던 것을 만회하기 위하여 더 많은 음식을, 그리고 고칼로리, 고당도의 음식을 먹게 조종하죠. 극 중에서 맡은 역할 때문에 극도의 식단 관리를 했던 배우들이나 중요한 경기 때문에 체중 관리를 했던 운동선수들이 그 기간이 끝나고 나면 이성적으로 통제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폭식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다이어트를 하는 일반인 중에서도 평소에 식단 관리를 엄격하게 하다가도 한 번씩 정신을 놓고 과자나 케이크, 치킨과 같은 음식을 마구 먹어버리다가 배가 불러온 이후에야 본인이 그렇게 먹은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모두 내 몸을 지키고자 하는 생존 본능에서 생겨나는 것이랍니다. 특히 배고픔을 참는 다이어트를 반복할수록 이런 일들이 점점 잦아지거나 그 강도가 세지게 되죠. 일종의 기근을 경험한 몸은 또다시 이런 굶주리게 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더욱더 에너지를 저장해두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결국 다이어트를 하는 내내, 그리고 다이어트가 끝난 이후에도 항상 생존 본능에 정면으로 맞서서 싸워야 하는 몸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때마다 자기 자신이 본능 앞에서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를 느끼고 좌절하게 되죠.
이유 3.
매 번 무게를 재고 칼로리를 계산하면서 식사를 하는 다이어트가 성공하기 어려운 세 번째 이유는, 이런 식사 방식이 정상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리를 할 때 음식을 맛있게 만들기 위하여 레시피 북을 보고 재료의 양을 계량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음식을 먹을 때 매번 내가 얼마나 먹을지 그 음식의 칼로리를 계산하는 것은 정상적인 식사 방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적당량을 먹으면 포만감을 느끼고 식사를 멈추게 만드는 포만 중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식사를 하면 배가 부르다고 느낄 때 자연스럽게 식사를 마치게 되고, 그 신호를 무시한 채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불쾌감이 생깁니다. 그리고 다음 끼니에 배가 덜 고프다고 느끼게 되죠. 반대로 전 식사 시간에 적게 먹었다면 다음 끼니에는 더 빨리 배가 고파져서 식사를 서두르게 되거나 더 많이 먹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는 매번 신경을 쓰지 않더라도 항상 적당량을 섭취하고 소화, 대사 시킬 수 있게 자체적으로 조절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훌륭한 조절 기능을 사용하지 않고 매번 머리로 계산한 양만큼만 섭취하려고 하면 점점 스스로 포만감을 느끼며 식사하는 법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많이 먹은 것 같으면 자책하고, 칼로리를 계산하지 않으면 불안감에 휩싸이는 강박증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렇게 열심히 칼로리를 따지고 계산하더라도 실제 섭취하게 되는 칼로리 양은 정작 다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음식의 칼로리는 주재료의 종류에 따라서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요리 방법에 따라서도 달라지기 때문이죠. 그리고 애초에 식품에 표기되어 있는 칼로리 양이 실제와 다른 경우도 허다하거든요.
지속 가능한 다이어트를 위한 조건
조건 1. 칼로리 계산을 하지 마세요.
그래서 지속 가능한 다이어트를 위해서는 우선 칼로리를 계산하는 방식을 버려야 합니다. 괜히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거든요. 음식의 무게를 재고 계산기를 두드릴 시간을 아껴서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 그리고 실제로 식사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현명합니다. 식사는 연료 공급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내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삶의 큰 일부분입니다. 그러니 나 자신을 위해서 신선하고 건강한 식재료들로 음식을 준비하고, 음식을 먹는 동안 색과 맛, 향, 식감 등을 충분히 느끼고 즐겨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내 몸이 자연스럽게 식사를 마쳐야 하는 때를 알려줄 것입니다.
혈당 조절에 문제가 있거나 호르몬의 이상 등으로 포만감을 적절하게 느끼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포만 중추를 계속 작동시키려 노력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 번 씹어 먹고 식사 시간을 충분히 여유롭게 둬서 포만감을 느껴보려고 시도하면 점차 억지로 음식 양을 제한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식욕이 조절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충분히 식사를 했다는 느낌을 스스로 받아야, 돌아서서 또 배가 고프거나 금방 다른 음식이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게 됩니다. 우리 몸은 부족하다고 느낄 때, 더 채우려고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조건 2. 100점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그리고 100점 만점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65점도 좋고 70점은 더 훌륭합니다. 케이크가 너무 먹고 싶은 날에는 한 조각 맛있게 먹고, 다음 식사를 할 때 신선한 야채와 질 좋은 단백질, 지방, 곡물을 곁들인 건강한 식사를 하면 됩니다. 라면이 너무 먹고 싶을 때에는 집에 있는 버섯, 파, 숙주나물, 브로콜리도 같이 썰어 넣어서 끓이면 100점짜리 식사는 아니더라도 50점 이상은 됩니다. 큰 흐름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한 번씩 한눈을 팔더라도 결국에는 내가 목표한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평생 할 수 있는 건강한 습관을 만드는 것입니다. 건강한 습관은 자연스럽게 건강한 체중 감량으로 이어지죠. 누구나 석가모니나 예수처럼 완벽하게 살 수는 없지만, 충분히 착한 사람, 좋은 사람으로는 살 수 있잖아요? 너무 기준을 높게 설정하면 실천 가능성이 떨어지고, 실패했다고 느껴질 때마다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실천 가능한 몇 가지 사항들을 정해두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에 의미를 두면 나 스스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면서 다이어트를 할 수 있습니다.
거의 매일 음주를 하다시피 했다면 주 3회 이하로 음주 횟수 줄이기, 배달 음식은 요일을 정해서 그날만 먹기, 평일 아침에는 신선한 과채 주스 만들어 먹기,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이용하기 등 한 두 달 바짝 참으면서 하고 말아 버리는 것이 아닌, 평생 습관으로 만들 수 있는 목표들을 세워 보세요. SNS에서 보이는 연예인 다이어트 식단처럼 드라마틱해 보이지는 않아도 이런 건강한 습관은 어제보다 오늘, 그리고 오늘보다 내일 나를 더 건강하게 만들어 주고 가벼워지게 만들어 줄 것이랍니다.
조건 3.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세요.
한 번씩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음식을 먹었다고 해서 스스로를 너무 몰아세우지 마세요. 물론 매일 그렇게 해서는 목표하는 종착지에 도달할 수 없겠지만, 열 번 중 일곱 번 잘하고 두세 번 조금 덜 도움 되는 것을 먹었다고 해서 그 음식이 독극물이 아닌 이상 아주 큰일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대신에 그 음식이 나와 잘 맞지 않아서 복통이나 설사, 두통 등을 일으킨다면 그 불편한 감각에 집중해 보세요. 그러면 그 음식을 먹고 싶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먹을 기회가 생기더라도 이전처럼 맛있게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건강해지려고 하는 다이어트인데, 다이어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오랫동안 지속하기도 어렵지만 건강해지기도 어렵습니다. 다이어트를 할 생각만 해도 내일이 오는 것이 너무 싫고 나 자신이 싫어진다면 다이어트가 왜 나에게 스트레스가 되는지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사실 더 좋은 모습으로 변화하려는 마음을 먹는 것부터가 이미 훌륭한 일이랍니다. 그리고 항상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껴줘야 지속 가능한, 평생 가는 다이어트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