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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수림 Jan 24. 2021

살은 부엌에서 빼고, 헬스장에서는 건강을 챙겨라!

운동으로 살을 뺄 수 없는 이유

  연초에 가장 북적이는 곳, 바로 헬스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헬스장으로 향하는 분들 중에는 '올해에는 꼭 살을 빼리라'라고 다짐하며 운동을 시작하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살 빼기는 식단이 80%, 운동이 20%', 심지어 '다이어트는 식단:운동= 9:1' 이라고도 하지만, 아직 많은 분들이 운동만이 건강하게 다이어트를 하는 길, 혹은 요요가 오지 않게 하는 길이라는 통념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보다 훨씬 오랫동안 살이 찌는 이유가 '칼로리를 섭취하는 것에 비해 칼로리를 소모하는 양이 적어서'라고 들어왔기 때문이죠. '에너지 균형이 중요하다', '기초 대사량을 늘려야 한다', '살이 찌는 것은 당신이 게을러서이다'라는 말들도 모두 같은 개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런 말을 들어왔죠.


  얼마 전 유튜브 동영상을 보다가 우연히 2020년에 방영된 SBS 스페셜 '끼니 외란'을 보게 되었습니다. 신년특집으로 건강과 관련하여 기획된 것이었는데, 특히 '운동의 역설'에 대한 내용이 굉장히 흥미로워서 전체 영상을 다시 찾아보고, 거기에 언급된 연구의 원문도 찾아보았답니다. 비록 1년 전 다큐멘터리이기는 하더라도 아직까지 이런 내용을 모르는 채로 매일 퇴근 후 헬스장으로 다시 출근하거나, 밤낮으로 하루에 2시간씩 걸으면서 살을 빼기 위하여 시간을 보내는 분들이라면 꼭 알아야 하는 사실이기에 제가 다시 칼럼으로 내용을 소개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주의: 내용이 다소 반갑고도 충격적일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인가요?


식이조절 VS 운동, 누가 더 많이 뺄까?


   식이조절만 하고 운동은 하지 않거나, 운동만 하고 식이조절을 하지 않으면, 누가 살을 더 많이 뺄 수 있을까요? 답을 이미 어렴풋이 예상하실 테지만, 결과를 실제로 눈으로 보면 더욱 실감 납니다. 



  이 다큐멘터리 제작진은 두 커플을 대상으로 운동군과 식이군으로 나누어 실험을 했습니다. 같은 양의 칼로리를 소모하거나 줄이기 위해 운동군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칼로리 외에 운동으로 칼로리를 더 소모하게 하였고, 식이군은 운동은 하지 않은 채로 식단에서 칼로리를 그만큼 줄이도록 했죠.



  운동군은 정해진 칼로리를 소모하기 위해서 일상생활에서도 계단으로 오르거나 덜 앉아있는 등 활동량을 늘리도록 노력했고, 하루에 몇 시간씩 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반면에 식이군은 운동을 하지 않아도 돼서 시간을 아낄 수 있었지만, 식탁 위에서는 운동군이 부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운동군보다 식이군이 훨씬 더 많은 체중을 감량했습니다. 또 운동군이었던 한지원 씨는 운동을 하면 체중이 내려갔다가, 식사를 하면 다시 체중이 올라가고, 운동을 하면 다시 체중이 내려가지만 어느 정도 선에서는 더 내려가지 않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걸까요?



  '운동의 역설 The Exercise Paradox(2017, Scientific American)'의 저자 허먼폰처 교수는 에너지 소비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체적으로 더 활발하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활동량이 적은 사람들보다 칼로리를 더 소비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죠. 어떻게 이런 황당한 말이 다 있을까요? 어찌 된 것인지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허먼폰처 교수팀은 하자족과 생활하면서 하자족의 에너지 소비량을 측정했습니다. 허먼폰처 교수팀이 사용한 방식은 이중표식 수법(Doubly labeled water method)이라고 해서 에너지 소비량을 측정하는 방법들 중 가장 정확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자족은 철저히 육체적인 활동으로 살아가는 부족입니다. 매일 아침 여자들은 야생 베리나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수렵 채집하러 집을 나서고 이들 중 몇몇은 심지어 아기를 등에 업은 채로 갑니다. 이들은 야생 감자와 같은 먹을 수 있는 덩이줄기 식물을 얻기 위해 몇 시간이나 땅을 파기도 하죠. 그동안 남자들은 활과 화살을 가지고 사냥을 하러 나섭니다. 기린처럼 큰 동물을 사냥을 할 때에는 하루에 몇 백 칼로리나 소모하기도 합니다. 사냥감이 없을 때에도 야생 꿀을 얻기 위하여 12미터가 넘는 나무를 손도끼로 베기도 합니다. 아이들도 결코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집에서 1.6km가 넘는 곳에서 물을 길어 오니까요. 



  이 정도의 생존을 위한 활동이라면, 이들의 칼로리 소모량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보다 훨씬 많아야 상식적인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허먼폰처 교수팀의 측정 결과 하자족의 남자들은 하루에 2,600 칼로리를 태우고, 하자족의 여자들은 1,900칼로리를 소모하는 것으로 나타났던 것이죠. 숫자가 꽤 친숙하죠? 이 칼로리 양은 미국이나 유럽의 성인들이 하루에 태우는 칼로리 양과 같았습니다. 허먼폰처 교수팀은 이 데이터를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분석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몸의 크기, 지방 비율, 나이, 그리고 성별, 이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에도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믿기시나요? 어떻게 하자족의 하루 칼로리 소비량과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의 하루 칼로리 소비량이 같을 수가 있는 것일까요?


그들과 우리는 같은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습니다.


  사실 허먼폰처 교수팀의 하자족에 대한 연구가 에너지 소비량과 관련하여 이런 결과를 보인 첫 연구는 아닙니다. 1980년대, 그리고 1990년대에서부터 공중 보건이나 영양과 관련한 통념(소위 '에너지 균형'이 중요하다고 하는)에 도전하는 경험적 데이터들이 있어왔으나 무시되었던 것뿐이죠. 과테말라의 전통적인 농경사회 농부들의 에너지 소비량을, 허먼폰처 교수팀의 하자족 연구와 마찬가지로 이중표식 수법으로 측정한 연구에서도, 농부들과 도시 거주자들의 에너지 소비량이 차이가 없음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비단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허먼폰처 교수는 실험실이나 동물원에 갇혀 있는 원숭이와 같은 영장류들이 야생에서 살아가는 영장류들과 비교했을 때, 이 두 군의 활동량에는 큰 차이가 있지만 매일 똑같은 양의 칼로리를 소비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이 야생에서 살아가는 동물보다 허리둘레가 더 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한 것일까요? 하자족 사람들은 쉴 때 더 푹 쉬거나 행동을 할 때 칼로리를 덜 소모하는 비법을 가진 것일까요? 그러나 아무리 행동하는 방식을 바꾸더라도 그 활동량의 차이를 극복하고 매일 소비하는 에너지 양이 같게 맞출 수는 없다고 합니다. 다른 흥미로운 가능성은, 몸이 추가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서 일상적인 작업을 할 때의 칼로리 소비를 줄이는 방식으로 에너지를 더 쓸 수 있게 예비량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헬스장에 매일 한 시간씩 운동을 하러 간다면, 몸이 다른 집안일을 할 때 쓰는 에너지 소비량을 줄여서 운동을 할 때 그 나머지 에너지를 쓸 수 있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운동을 하여 활동량을 늘리면 처음에는 체중이 빠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곧 몸은 이에 적응해서(살 길을 찾아서), 운동을 하더라도 하루 동안 소비하는 전체 에너지 양을 이전과 똑같게 만들도록 몸을 적응시켜 버리고 체중도 다시 돌아와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운동으로 체중을 감량하려면 몸이 적응을 할 때마다 점점 더 운동량을 늘려서 에너지 소비량을 늘려야 하는데, 야속하게도 몸은 또 거기에 적응해 버리고 맙니다. 즉, 여러분이 아무리 열심히 운동량을 늘리고 활동량을 늘리더라도 결과적으로 내가 하루 동안 소비하는 에너지 양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운동으로 다이어트를 하려고 하면, 아무리 멀리 달아나려고 해도 자꾸만 제자리로 돌아와 버리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죠. 배신감이 들지 않으시나요?


아무리 운동량을 늘려도 하루 에너지 소비량은 제자리 걸음이라는 사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실험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320명의 폐경 이후의 여성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일주일에 5번씩 에어로빅을 하게 했고, 다른 그룹은 운동을 하지 않게 하였습니다. 두 그룹 모두 식단은 원래대로 먹도록 했는데, 1년 뒤에 두 그룹의 체중을 다시 재어보니 운동을 한 그룹이 운동을 하지 않은 그룹에 비해 평균적으로 2kg의 체지방을 감량했다고 합니다. 운동을 하기로 한 그룹은 원래 일주일에 5일간 운동을 해야 했지만, 실제로는 일주일에 3.6일 운동하고 시간으로 계산하면 일주일 동안 178.5분을 운동하였다고 합니다. 이 결과로 계산을 해보면 1kg을 감량하기 위해서는 77시간 동안 운동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식이군이었던 문성근씨는 5일만에 음식 조절만으로 2kg을 감량했습니다.


  놀랍지 않으신가요? 식단만 조절해도 5일 동안 2kg을 빼는 사람이 있는데, 운동으로 빼려면 77시간을 해야 한다니?! 이제 여러분은 운동을 하는데도 살이 빠지지 않아서 '내가 열심히 하지 않은 건가?'라고  자책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원래 그런 것이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운동이 전혀 필요가 없고 쓸모없는 행위라는 뜻은 절대로 아닙니다. 운동이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하고, 혈당 조절 능력을 높이며, 스트레스를 줄여준다는 것은 이미 많은 연구 결과들로 입증된 사실이죠. 다만, '운동'으로 '살을 빼려고 하는 것'은 결코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치 찬물 마시고 냉돌방에서 땀을 내려는 것과 같은 것이죠.



  그런데 잠깐! "그럼 스마트 밴드나 워치에 표시되는, 내가 운동하면서 소모했다고 표시되는 칼로리는 뭐죠?"라고 의문을 가지실 수 있을 것입니다. 허먼폰처 교수가 다른 팀과 함께 300명 이상의 참가자들에게 스마트 밴드를 착용하게 하고 1주일 동안 매일의 육체적 활동량을 측정하면서, 동시에 이중표식 수법으로도 에너지 소비량을 측정했더니, 스마트 밴드가 추적한 활동량은 실제 에너지 대사량과 연관성이 굉장히 낮았다고 합니다.  


저는 스마트 워치를 칼로리 소비량이 아닌 운동을 한 시간을 기록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실험에서 또 흥미로웠던 것은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 TV만 보는, 활동량이 적고 게으른 사람들의 에너지 소비량이 주중에 운동을 하거나 계단을 오르는 등 적당히 활동하는 사람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200칼로리 밖에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가장 열심히 활동하고 운동을 한 사람들은 에너지 소비량이 높은 수준에서 고정되어 적당하게 활동하는 사람들과 매일 똑같은 칼로리를 소모했다고 합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과한 활동과 운동은 정체기를 앞당기는데 일조했다는 것입니다.(이 사실을 들으면 매일 이를 악물고 운동한 분들이 억울할 듯합니다) 



  사실 많은 분들이 '식단 조절할래요? 운동할래요?'라고 들었을 때 운동을 선택합니다. 그분들도 운동을 할 때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을 당연히 알고 있지만, 먹는 것을 참고 식단을 조절하는 것이 더 어려워 보이기 때문에 식단 조절보다는 운동을 선택한 것일 겁니다. 혹은 그동안 여러 매체에서 운동을 해야 살이 빠진다고 들어왔기 때문일 수도 있죠. 당장 운동화를 신고 달리러 나가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개인 트레이닝을 받는 것보다,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도시락을 싸는 것이 더 신경 쓰이거나 귀찮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살을 빼고 싶다면, 헬스장을 등록하기 전에 신선한 자연식품들로 장을 봐야 하고, 3시간을 걸으러 나가기 전에 내가 먹을 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이어트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운동과 식이조절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살은 부엌에서 빼고, 건강을 위하여 '적당히' 운동하고 활동하는 것이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유일한 길이랍니다. 



* 본 글은 아래 내용들을 참고, 인용했습니다.

SBS 스페셜 '끼니 외란'

The Exercise Paradox, Herman Pontzer

Exercise vs Dieting: Which Is More Important for Weight Loss?, Dick Talens


이 글이 좋으셨다면, 아래 글도 추천드립니다.

https://brunch.co.kr/@srsynn/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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